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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

3.1혁명 현장을 지휘했던 면천면 출신 배재고보 학생 고희준Ⅴ

2018. 08. 17 by 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당진신문=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면천에서 이사하여 경성으로 간 고희준은 그 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3.1혁명은 그 영향이 너무도 강렬하여 수많은 청년들에게 독립운동의 길을 걷게 하였다. 고희준 역시 20대 초반에 맞이했던 3.1혁명을 통해 인생을 좌우할 만큼 큰 경험을 하였다. 그러나 고희준이 출감 이후에 독립운동과 관련된 활동을 했다는 사실은 표면적으로 뚜렷하게 드러난 것이 없다. 고희준은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난 이후 결혼을 하였고, 1926년 경성전기주식회사에서 전차 운전원으로 취업하여 근무하였다. 경성전기주식회에 취업한 고희준은 1945년 8월까지 일제강점기 내내 전차 운전원으로 근무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평범한 일상이었다. 이렇게 전차 운전원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동안 독립운동과 관련된 활동을 하였다는 사실은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두 가지 점에서 고희준이 독립운동과 관련한 활동을 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첫 번째 이유는 노동현장에서 전차 운전원으로 생활하였던 점이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민족해방운동의 일환으로 노동운동을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희준이 경성전기주식회사에 근무하면서 노동운동과 관련된 활동을 하였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없다.

두 번째는 특별한 것으로 고희준이 가정을 이루게 되면서 그의 장인이 유명한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이라는 점이다. 이회영은 조선을 대표하는 명문가의 자제였지만 본인뿐만 아니라 여섯 형제들의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독립운동에 뛰어든 인물로 유명하다. 바로 고희준의 처가 이회영의 딸 이규남이다.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이 이회영의 손자이니 고희준은 이종찬의 고모부인 것이다. 이회영 여섯 형제가 만주로 이주하면서 이회영의 딸인 이규남은 국내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전후의 사정을 감안할 때 고희준이 경성에서 독립운동과 관련한 어떤 활동을 했던 것은 아닌지 추정해 볼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를 증명할 증언이나 사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아무튼 고희준은 3.1혁명에 참여하였다가 일제에 검거되었던 경력 때문에 쉽게 취업하기 어려웠던 시대임을 감안하면 일제강점기에 나름대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였던 것은 분명하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까지 해방정국에서 고희준은 특별한 활동을 했던 기록은 없다.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서울에 살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이 나면서 서울에서 벗어나 고향 면천에서 잠시 피난살이를 하였다. 면천에서의 피난살이는 고희준 일가뿐 아니라 처가 식구들까지 모두 함께 하였다고 한다. 면천에서의 피난살이는 9.28 수복 이후 끝났다. 다시 서울로 돌아간 고희준은 1951년 1월 사망하였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이른바 1.4후퇴 도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망 원인은 미군의 폭격 때문이다. 피난길에 오른 고희준 일가는 안양에서 군포에 이르는 동안 수차례에 걸친 미군의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안양에서 몇 차례의 폭격에서는 무사했지만 군포에서 다시 미군 폭격을 받았을 때 고희준은 폭격에 맞아 사망하였고 고희준의 가족들도 다수가 부상을 당하였다고 한다. 고희준이 1897년 생이었으니 활동을 왕성하게 할 50대 중반의 나이에 죽음을 맞은 것이다. 이보다 더 아깝고 허망한 죽음도 없을 것이다. 고희준의 묘소는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아들 고석규의 오랜 노력 끝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을 수 있었다.

이상에서 살펴 본대로 고희준은 3.1혁명에서 배재고보를 대표할 만큼 실천적인 활동을 벌였다. 이러한 실천적 활동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식민지 조국의 자주독립과 해방이었다. 개인의 영달을 위한 노력을 더욱 중시하는 오늘날 본받아야 할 표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그가 보여준 실천적 행동은 생각한 바를 말로써 그치지 않고 몸소 실천하였다는 점에서 귀감이 라 할 수 있다. 고희준은 3.1혁명에 참여한 조선 민중 모두와 함께 3.1정신을 빛낸 인물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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