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Q

당진천 제대로 만나기

2018. 07. 23 by 이선우 객원기자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sbs 물은 생명이다>라는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한 적이 있다. 제목 그대로 물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이야기들이 다뤄졌다. 내가 작업했던 아이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안양천이다.

1960년대 후반 이후 안양천변으로 대규모 산업단지가 조성되었고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하천의 원형을 잃게 되었다. 하천의 일부는 복개되어 도로와 주차장으로 이용되었으며, 홍수를 방지한다는 이유로 직선화시켜버렸다. 생명이 사라진 안양천은 폐수천(1975년, 동아일보)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만신창이였던 그곳이 지금은 버들치와 참게가 살고 수천마리의 철새가 찾아오는 생태하천이 되었다. 십년 넘는 긴 세월 시민과 환경단체, 지자체가 함께 힘을 모아 기적을 이뤄낸 셈이다. 콘크리트 제방을 걷어내고 물을 막아두었던 보를 철거하는 건 기본. 하상 주차장을 없애는 대신 천변 토지를 매입해 제방 위로 주차장을 내기도 했다. 수질 개선을 위해 하천으로 유입되던 모든 오폐수를 차집해 하수처리장에서 재처리하고 연중 물이 흐르도록 하는 등의 노력도 이어졌다. 안양천이 살아야 그 하천을 끼고 생활하는 우리가 살고, 우리들이 발 딛고 있는 지구가 살 수 있다는 깨달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짧은 장마가 지나고 잠시 쉬었던 당진천 생태조사에 나섰다. 당진어울림여성회에 속해있는 숲생태모임인 <산전수전>의 동아리 활동으로 시작된 당진천 생태조사. 2주에 한 번씩 구간별 식생 모니터링이 진행 중이다.

산전수전과 함께 처음 당진천을 마주한 건 지난 3월이다. 복개 구간과 본류가 만나는 지점에서는 어쩔 수 없는 악취들이 풍겼고, 애완견들이 남긴 배변 흔적은 자주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래도 다행인건 물 속 바닥에 민물조개류들이 발견되었고 여러 물고기들이 생존신고를 하듯 눈에 띄었다는 점이다. 벚꽃이 흐드러지던 4월 어느 날에는 당진천의 발원지를 찾아 나서기도 했다. 아미산 어느 산자락으로 굽이굽이 길을 따라 돌고 마을길을 지나 닿은 작은 소류지 앞에 서니 기분이 이상했다. ‘혼자였으면 죽을 때까지도 관심 갖지 않았을 당진천 상류에 이렇게 와보는구나.’ 소류지 이름과 경고 문구가 적혀 있는 안내판 앞에서 관광 나온 여사님들 마냥 기념사진도 한 장 남겼다. 

한바탕 폭우가 휩쓸고 간 당진천은 악취가 남아있었다. 썩어가던 바닥이 뒤집어지면서 극심한 악취를 풍겼지만 물속은 한층 더 깨끗해질 것이다. 천변에는 자세히 살펴야 겨우 구분이 가능한 실잠자리들이 하늘거렸다. 여기저기 도감을 뒤적거리며 이름을 찾느라 바쁜 회원들의 모습에 물빛 생기가 흐른다. 풀잎에 앉아 쉬고 있는 물자라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아이들처럼 신나한다. 수영실력이 서투른 수서곤충들은 직선화된 하천에서는 살 수 없다. 우리나라보다 더 활발히 하천의 직선화를 이뤄낸 일본의 경우 수달은 멸종되었고, 물자라는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당진천에는 수달도 있고 물자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앞으로 어떤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되는 당진천. 생명이 깃들어 사는 풍요로운 하천, 도시의 핏줄 역할을 하는 건강한 하천을 만드는 최고의 조건은 하천에 대한 시민의 관심과 사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