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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

3.1혁명 현장을 지휘했던 면천면 출신 배재고보 학생 고희준Ⅱ

2018. 07. 16 by 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당진신문=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일제는 3.1혁명에 가담한 고희준을 조사하여 그 결과를 신문조서로 남겼다. 일제가 고희준을 조사하여 밝혀낸 활동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3월1일의 행적인데 고희준은 3월1일 파고다 공원에는 가지 않았지만 오전 오후 두차례에 걸쳐 “오전 10시·11시경 종로통의 종각 부근에서 50명 가량의 사람이 만세를 부르고 있었으므로 이에 가담하여 만세를 불렀고”, 오후2·3시에 광화문 앞에서 4·500명의 군중을 만나 가담하여 서대문 밖에서 불란서 영사관 앞을 지나 서소문정에서 대한문 앞으로 행진하였다“고 진술하였다. 3월2일에는 오후 2시경 “경성부 광화문 광장에서 많은 군중이 만세를 불렀으므로 그 속에 끼어 조선독립만세를 불렀다”고 기록하였다. 그런데 고희준의 3월1일 행적은 여러 가지 정황상 3월2일의 행적을 혼동하여 진술하였거나 신문조서에 기록하는 과정에서 착오로 날짜를 잘못 기재한 것으로 보인다. 고희준의 예심 신문조서에는 3월1일의 행적에 대해서는 적시하고 있지 않고, 3월2일의 행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도 3월1일의 행적은 사실과 다른 것이다.

실제로 사실관계를 살펴보아도 3월1일 경성 시내 만세 시위 상황은 오후 2시에 파고다공원에 인파가 모여들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다음 만세 시위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후 파고다공원에 모였던 군중들이 거리로 나오면서 본격적인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는데 이때부터 일제 당국도 경성시내에서 3.1만세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고희준이 3월1일 오전 10시·11시경 종로통 종각 부근에서 50명 가량의 사람이 만세를 부르고 있어 참여하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고희준의 3월1일 행적은 3월2일의 행적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볼 것이고, 3월2일의 행적에 대해서 조사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오후 2시 시위에 참여했던 것만 인정했기 때문에 일제의 계속된 추궁으로 오전 10시 시위에도 참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신문조서에 기재하는 과정에서 날짜를 잘못 적시한 것으로 보는 것이 보다 더 사실에 부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밖에도 고희준은 3월9일 인쇄물을 돌렸다는 사실도 인정하였는데 “3월8일 저녁 임창준으로부터 남았다고 하는 선언서 10매 및 시민대회의 인쇄물 10매를 받아 3월 9일에 종로통으로 가는 노상에서 통행인에게 배부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체포된 3월23일에는 ”밤 10시경에 극장 단성사 앞 도로에 군중이 약 2·300명 있어 가지고 있던 손수건을 높이 흔들면서 군중을 향하여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도록 지휘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상의 활동 내용은 독립을 염원하는 식민지 청년학생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위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일제에게는 단순 참여자라 해도 만세를 부른 것만 확인되면 크게 처벌하였던 점을 감안하면 고희준이 인정한 활동 내용은 중대한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이러한 일제의 강압적 처벌 방침은 당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체포된 당사자들은 대부분 알고 있었던 사실이고, 고희준도 어떻게든 자신의 혐의를 벗어나거나 최소한으로 축소하려 노력하였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3월23일 단성사 앞에서 손수건으로 시위를 지휘했던 이유를 묻는 검사에게 “본심이 아니라 음주의 결과로 본다”고 한 것이 그 사례이다.  

하지만 고희준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조사가 진행될수록 고희준에게 중대한 범죄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 그리하여 경찰조사 과정에서는 밝혀지지 않았던 3월2일 오전 시위에 참여하였던 사실이 검찰 조서에는 기록되어 있다. 또한 고희준이 체포되었던 3월23일 단성사 앞 시위도 경찰과 검찰 조서에서 기록된 2~3백명의 참여 인원도 예심 조서에서는 3~4백명 참여로 규모를 확대하여 기술하였다. 말 그대로 뻥튀기하듯이 혐의를 부풀렸던 것이다. 이렇게 고희준의 혐의 내용을 확대했던 것은 어떻게든 강력한 처벌을 받도록하여 다시는 독립운동에 나설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일제 당국의 의도를 엿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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