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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

당진에서 꽃 핀 3.1혁명!!

2018. 04. 30 by 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당진신문=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이제부터 우리 고장 당진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3.1혁명 때 당진에서 일어난 이야기이다. 과연 3.1혁명 때 우리 당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당진에서 전개된 3.1독립만세 운동은 어디에서 일어났고, 누가 앞장서 이끌었을까? 

지난 3월 10일 열린 면천공립보통학교 만세운동 재현행사
지난 3월 10일 열린 면천공립보통학교 만세운동 재현행사

전국으로 확산된 3.1독립만세 시위가 충남에서 처음 일어난 것은 3월3일 예산과 대전에서였다. 이후 독립만세 시위는 충남 전역에서 벌어지게 되었는데 당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1919년 3월10일에 면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면천읍내에서 독립만세를 부른 것이다. 면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은 독립만세 시위를 계획하면서 가까운 당진공립보통학교와 덕산공립보통학교에도 연락하여 연대시위를 제안하였다. 그러나 당진과 덕산의 학생들이 미온적으로 나오자 면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만 단독으로 독립만세 시위를 벌이게 되었다. 면천공립보통학교 학생 시위는 3.1독립만세 시위 중 충남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학생시위였다.

또한 같은 날 당진면 읍내리에서도 독립만세 시위를 계획하다 사전에 발각되는 일이 발생했다. 당진면 읍내리에서는 3월16일에도 시위가 계획되었는데 이 역시 사전에 발각되어 실행하지는 못하였다. 당진면에서 있었던 시위 계획에 관해서는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 실체적 상황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지만 여러모로 보아 천도교와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진의 3.1혁명은 4월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4월2일 면천과 합덕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벌였다. 합덕에서의 시위는 수백명의 합덕, 우강면민들이 참여하였는데 주재소 헌병과 면장의 적극적인 만류로 해산하였다. 반면 면천에서는 수 백명이 모여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이후 당진에서 일어난 독립만세 시위는 4월 들어 봉화산에 올라 횃불을 들고 만세를 부르는 방식의 봉화시위가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봉화시위는 충청도 지역에서 주로 행해졌던 방식이었는데 당진에서는 4월3일과 4일 순성면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이밖에도 4월4일에 당진군 8개 지역에서 봉화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고, 대호지, 정미, 면천, 우강, 신평, 송악, 송산 등지에서도 봉화시위를 벌였다는 주민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당시 당진에서는 독립에 대한 요구를 자연스럽게 봉화시위를 통해 표출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봉화시위로 전개되던 독립만세 시위는 대호지 면장 이인정이 중심이 된 대규모 독립만세 시위가 천의장터에서 일어나면서 양상이 바뀌었다. 이것이 바로 4월4일 일어난 대호지 천의장터 독립만세 운동이었다. 대호지 천의장터 독립만세 시위가 특별했던 것은 면장을 비롯해서 대호지면 모든 마을에서 주민들이 참여한 독립만세 시위였다는 점이다. 대호지 천의장터 독립만세 시위는 매우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대호지면민은 물론이고 천의장터에 나왔던 장꾼들이 시위에 합류하면서 독립만세를 부르게 되었고, 이를 진압하려던 일제 군경과 충돌하였던 것이다. 이로 인해 대호지와 정미면에서 전개된 독립만세 운동에서는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수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대호지와 정미면에서는 여러 차례 독립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4월8일 대호지면 송전리, 조금리, 정미면 수당리에서는 봉화를 올리고 만세를 불렀다. 특히 송전리에서는 봉화를 올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경계 중이던 군경을 폭행하였다. 이에 대해 일제는 즉각 군경을 출동시켜 봉화시위를 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군경은 참여자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발포하였고, 여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밖에도 당진에서 전개된 3.1독립만세 시위는 4월5일에서 8일 사이에 송악면에서 이어졌다. 4월5일 송악면 소재지이던 기지시리에서 수 백명이 모여 만세를 부르고 시위를 벌인 것이다. 이로 인해 4명이 체포되었다. 송악면에서는 4월13일에 송악면사무소에 불을 지르려는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8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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