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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쓰는 지명유래
김추윤 교수
혜군(槥郡; 면천 옛지명)
2018. 02. 26 by 당진신문

면천의 옛지명은 혜군(槥郡)이 아니라 추군(橻郡)
橻→槥→構→搆의 전사과정상의 오류

최근에 복원한 면천 읍성 원기루
최근에 복원한 면천 읍성 원기루

삼국사기(三國史記)는 김부식(金富軾)이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1145년(인종 23년)에 펴낸 관찬 사서로 삼국의 건국으로부터 고려로 통일될 때까지 약 천 년동안의 정치적 흥망과 변천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현존하는 국사서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삼국의 사실을 본기 28권, 연표 3권, 잡지 9권, 열전 10권 등 모두 50권으로 나누어 기록해 놓았다. 이 중에서 잡지(雜誌) 3, 4, 5, 6(권 34, 35, 36, 37)은 지리지로서 삼국의 437개의 군현급 이상 행정지명이 변천해 온 과정을 기록해 놓고 있다. 지명을 기록한 양식은 대체 「槥城郡, 本百濟槥郡, 景德王改名, 今因之」식이다.

즉 ‘통일신라의 혜성군이 본래 백제의 혜군인데 경덕왕이 지명을 고쳐 지금까지 인습한다’라는 내용이다. 이중에서 혜군이 늦어도 삼국시대의 어형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차자표기이다. 이 지명표기가 특별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고대자료가 이것 이외에 특별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신라에는 향가 25수가 있어 약간 연구 자료가 있으나 고구려나 백제는 지명과 인명이외에는 그 당시 자료가 거의 없다.

이 당시 지명을 표시한 차자 표기방법은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음독(音讀)은 차자를 한자의 음대로 읽되 한자 자체의 의미를 살린 것이고, 음가(音假)는 차자를 한자의 음으로 읽되 한자 자체의 의미를 무시한 것이고, 훈독(訓讀)은 차자를 한자의 훈으로 읽되 한자 자체의 의미를 살린 것이고, 훈가(訓假)는 차자를 한자의 훈으로 읽되 한자 자체의 원의를 무시한 것이다.

고대 자료로서 유일무이한 삼국사기 지리지는 최근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거듭된 개각에 따라 오각, 탈각이 많고 복각의 경우는 글자 획이 떨어져 나간 부분을 각수가 자의적으로 새겨서 틀린 곳이 많음이 발견되었다. 차자표기는 원칙적으로 중국의 한자를 사용한다. 그러나 차자표기의 오랜 관습에서 특정 한자는 한자 본래의 고유한 음이나 뜻과는 달리 차자표기에서만 쓰이는 특별한 음이나 뜻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삼국사기 지리지의 지명 표기에도 마찬가지이다.

당진지역은 삼한시대에는 마한(馬韓)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였다. 따라서 삼국사기 지리지 권3에 보면 ‘면천은 본래 백제의 혜군(槥郡)인데 경덕왕때 혜성군(槥城郡) 으로 고치고 3현(縣)을 거느렸다. 당진현(唐津縣)은 원래 백제의 벌수지현(伐首只縣)이고, 여읍현(餘邑縣)은 원래 백제의 여촌현(餘村縣)이고 지금의 여미현(餘美縣)이며, 신평현(新平縣)은 원래 백제의 사평현(沙平縣)인데 모두 경덕왕때 고쳤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경덕왕이 혜군을 혜성군으로 고친 이유는 경덕왕이 그 당시 지명개칭을 하면서 지킨 몇 가지 원칙을 알아보면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주지명은 1음절로 하고, 군현명은 2음절로 고쳤다. 따라서 「혜」자 1음절을 「혜성」 2음절로 고쳤던 것이다. 둘째는 개칭 지명은 좋은 의미의 글자를 택하였다. 따라서 「혜」자에다 고대에서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城」자를 추가하여 2음절로 만들었다. 셋째는 개칭 이전의 표기는 한자를 음훈을 빌어 표음 문자식으로 이용하여 표기(채자표기) 하였지만, 개칭지명 표기는 한자를 본성대로 돌려 표의문자식으로 표기하였다. 따라서 「혜」자는 그냥 「혜」자로 표기했다.

그런데 문제는 혜(槥)자가 같은 『삼국사기』지리지 내에서도 구(搆)자로 나오는 등 각각 틀리게 나오는데 있다. 다시 말하면 백제의 『삼국사기』 17권의 구군(搆郡)이, 지리지 권4에는 구군(構郡)으로 나오는데, 지리지 권3에는 혜군(槥郡)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당진의 옛 지명인 이들 지명 사이에는 반드시 어떤 틀린 지명이 있는 것이다. 또 동일지명이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杻로 나타나고, 삼국유사 권1에서는 橻로 나타나고 橻城으로 표기하고 있다. 글자 형으로 볼 때 이들 표기의 원형은 橻자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構(얽을 구)나 槥(적은 관 혜)자는 음이나 훈으로 볼 때 지명표기에 쓰이는 글자가 옛부터 아니었다.

예를 들면 ‘혜’자는 槥車相望(혜거상망)처럼 ‘작은 관을 실은 수레가 서로 잇닿아 있다’는 뜻과 같이 전사자가 많은 때에 사용했다. 또 혜독(槥櫝)하면 「작은 관」을 말한다. 「搆」자는 구사(搆思)처럼 ‘생각을 얽어 놓음’ 즉 ‘「구상」 뜻으로 쓰이고, 또 구해(搆害) 즉 트집을 잡아 해를 끼침’ 등에 쓰이는 글자들이다. 따라서 橻(추)는 槥(혜)로 오사되고 槥(혜)는 다시 搆(구)자로 오사 되었던 것이다. 木(나무목변)은 흔히 흘려 쓰면 곧잘 才자로 변형되는 것이 고대에서는 많았었다.

橻→槥→構→搆의 전사과정상의 오류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첫째 삼국유사에 추자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추자는 원래 중국에 없던 글자이다. 후대에 신자전에 보면 ‘橻:추 郡名 골이름 見地志’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 사실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이 글자가 우리나라의 지명표기에 고유하게 등장하고 있으며 그 음을 ‘추’라고 유추하고 있는 것이다.

신자전에 ‘橻’자를 ‘추’자로 풀이한 것은 세종실록지리지에서 이 지명을 杻郡(추군)이라고 표기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유추된다. ‘杻’자는 「싸리 추」자이다. 鮎貝房之進(1931년)는 俗子考에서 ‘杻’는 ‘橻’자의 약자이며, 이는 신라시대에 형성된 것이나 그 음의 뜻은 알 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보면 면천지방의 옛 지명인 槥郡(혜군)은 잘못된 것이고 橻郡(추군)이 맞을 확률이 높으며 그 음과 뜻은 아직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지명표기를 위해서 따로 조자한 글자임에 틀림없다. 결국 『삼국사기』 권17에 나오는 당진 지명을 나타내는 搆郡(구군)도 틀린 군지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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