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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위의 내로남불

2018. 02. 05 by 이선우 객원기자

얼마 안 되는 서브작가 월급을 몇 달 아끼고 아껴 고스란히 운전면허학원에 바친 기억이 난다. 나중에 백수가 되면 시골에 내려가 배추장사라도 해야지 싶은 마음에 트럭 면허를 따겠다며 찾아갔던 것 같다. 반클러치를 밟았다 놓으면서 언덕을 올라가는 코스 연습은 지금도 생각날 만큼 떨렸지만 재미도 있었다. 마침 학원 근처에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있었다. 코스 연습이 끝나고 이어진 도로 연수는 연구원 근처 가로수길에서 이루어졌다.

연구원들이 출퇴근 하는 시간 외에는 오가는 차들이 많지 않은 길이었다. 떨리기도 무척이나 떨렸지만 얼마나 신이 났던지 피식피식 웃음이 새는 걸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다 그만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마음과 달리 핸들은 헛돌고 발은 가속페달을 꾸...욱... 가로수도 피했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지만 도로가 아닌 인도에 올라선 부끄러운 트럭의 운전석에 내가 앉아있었다. 다행히 한 번에 면허를 따면서 그때의 기억은 희미해졌다. 

얼마 뒤 강원도 정선에 촬영을 갔다가 운전대를 잡아볼 기회가 생겼다. 촬영팀이 머물던 인근에 영화배우 원모씨의 부모님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참이었다. 카메라맨 둘과 작가 한명을 태우고 호기롭게 운전대를 잡았다. 차 한 대 찾아보기 힘든 시골길이었으니 연수차원에서 같이 가주마 했던 것 같다. 얼마를 갔을까. 차 안에는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차가 다리 난간 코앞에서 극적으로 멈춘 순간이었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어야할 순간에 그 옆의 페달을 밟는 아찔한 실수. 이후 나는 십년 넘게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운전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게 해준 것은 우습게도 부부싸움이다. 차가 필요하니 기사노릇 좀 해달라는 아쉬운 소리를, 미워 죽겠는 남(의)편에게 하기는 싫었다. 당진에서 계속 살려면 운전을 해야겠다! 당진에 내려온 지 3년, 면허 딴 지 11년 만에 결심을 굳혔다. 차창 밖으로 튀어나갈 듯 쿵쾅거리는 심장을 달래면서 1년, 주륵주르륵 흐르는 식은땀 닦으면서 2년, 앞만 보고 달리면서 3년을 보냈다. 깜빡이도 켜지 않고 휙휙 끼어드는 차들 때문에 가슴 쓸어내린 적도 있고, 지나가길 기다렸더니 코앞에서 옆으로 빠져버리는 비매너 운전자들 때문에 불쑥불쑥 욕이 튀어나온 적도 많다. 그런 저런 일들 외에는 나름 무사고 운전 경력이라 자부하며 살아온 나에게 작은 변화가 생겼다. 얼마 전부터 시작한 일 때문이다.     

블랙박스에 찍힌 교통사고 영상을 받아 멘트와 자막을 정리하는 비교적 간단한 작업인데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 뒤따랐다. 사고 순간이나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장면을 편집해 내보내는 관련 방송을 봐도 눈을 질끈 감게 되는데 날 것 그대로 담겨있는 화면을 몇 번이나 돌려봐야 하다니. 일을 시작하고 두어달 정도는 운전대만 잡으면 사고 장면들이 눈앞에 떠올라 괴로웠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익숙해지지는 않지만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운전하는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급하다는 ‘나만의 이유’로 꼬리물기를 하고, 급한 용무라는 ‘나만의 이유’로 운전 중 전화통화까지, 내로남불을 외치는 도로 위 사고유발자, 그게 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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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2018-02-12 07:45:35
이작님글 재미나게 한번에 쭉 읽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