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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우리는 월경한다

2017. 12. 26 by 이선우 객원기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전에 없던 유난을 떨고 살았다. 잦은 감기에 아토피까지 살짝 있었던 큰아이를 위해 다른 건 몰라도 먹는 것만큼은 유기농이나 친환경 인증을 받은 것들로 먹이려고 노력했다. 바르는 로션이며 목욕용품까지 화학성분이 없는 안전한 제품을 찾아대느라 핸드폰을 들고 살 지경이었다. ‘큰’ 문제없이 어느 정도 자라면서 그런 류의 ‘유난’은 서서히 시들해졌다. 그 사이 조금 더 건강한 체질을 가지고 태어난 둘째는 뭘 입어도, 뭘 먹어도 눈에 띄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열심히 찾아낸 좋다는 기저귀들 대부분이 발진을 동반했다. 딸아이였기 때문에 발진에 더욱 예민했다. 그것만 빼면 엄마의 ‘유난’은 거의 모든 부분에서 사라졌다. 발암 물질이 검출된 일회용 생리대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기 전까지는.  

한창 열일 하던 20대 후반, 생리양이 눈에 띄게 줄고 몇 달간 없이 지나가는 일이 잦아 병원을 찾아갔던 적이 있다. 극심한 생리통은 말할 것도 없고, 흡수력이 너무 좋아 밑이 빠질 지경으로 아프기까지 했던 제품을 쓴 때도 있었다. 생리통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으니 당연하다 여겼고, 문제의 제품은 다른 생리대로 바꾸는 걸로 끝이었다. 찝찝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최근 일회용 생리대에 발암 물질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미 십여 년 전 한 방송사에서 환경호르몬과 생리대의 관계를 파헤친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때보다 덤덤했다. ‘그럴 줄 알았어. 터질 게 터진 건데 너무 늦게 터졌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히려 나를 불편하고 불쾌하게 만든 건 일회용 생리대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들이었다. 문제의 본질은 간데없이 ‘그런 사소한 일로 국가 경제에 피해를 끼치면 되겠냐’는 둥 ‘국회에서 생리대는 좀 적절치 못한 발언’이니 ‘위생대’라 하자고?! 인간의 절반이 달마다 겪는 이 일이 과연 ‘사소’한가? ‘월경’이라고는 못할망정 ‘생리’가 어때서?! 

월경은 더러운 것도, 마법도 아닌 정교한 건강 지표다.

월경 그자체로 여성의 일상이다

생리라는 말은 월경을 이르는 수많은 표현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성공하지 못한 더럽고 실패한’ 혹은 ‘비정상적인 상태’로 치부되어온 월경. 달이 차고 기울 듯 자연스러운 일상이고 중요한 생명활동이지만 여성 스스로도 누가 알까 조심스러운 금기 같은 것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월경은 더러운 것도, 마법도 아닌 정교한 건강 지표다. 시상하부와 뇌하수체, 난소에서 분비되는 여성호르몬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고 이들 중 어느 하나라도 이상이 생기면 주기의 변화로 이어진다. 여성에게 생리대는 끊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생필품이다. 국민의 절반이 40여년을, 개인 평균 1만개 이상을 사용한다. 이를 위해 600만 원 이상의 돈이 들어간다. 그러나 이 일회용 생리대에 대한 정부차원의 안전성 전수조사는 시판 이후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저출산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만든 출산지도에 분홍색 점으로 표시해놓은 ‘월경하는 여성’들이 이 나라 국민의 절반이다. 남성의 가계를 잇고 새로운 노동력을 생산하는 도구쯤으로 여기면서도 정작 월경하는 몸에 대해서, 월경에 필요한 여러 생필품의 안전성에 대해 이토록 무관심 할 수 있을까.

월경은 월경 그자체로 여성의 일상이다. 더러운 것이니 숨겨야 하고 생식기능이 가능해지니 축하받을 어떤 것이 아니다. 나라로부터 안전한 생활을 보장받아야 할 국민이고 기업이 판매하는 물건에 대해 알권리를 갖는 소비자인, 여성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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