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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쓰는 지명유래
김추윤 박사
팔아산(八娥山)
2017. 11. 06 by 당진신문
▲ 소약산과 명성동 지명이 발견된 망주석

350년전 망주석에는 命聖洞과 蘇約山으로
현재는 明星洞과 八娥山 지명으로 사용

팔아산(八娥山)은 송악읍 가학리 송악중고등학교 뒤족에 위치한 해발 90m 높이의 산이다. 북서쪽으로는 송산면 상거리 북쪽으로는 송산면 명산리 일부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지금은 송악읍에서 등산로를 개설하였고 팔아산(소약산)정상에 팔각정을 건설하여 주민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주변에 체육단련 시설이 잘 갖추어 있어 산책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이곳 정상에서 북쪽 골에 송산면 명산리 멍성골(松山面 明山里 明星洞) 마을이 위치하고 있으며, 송악읍 가학리 쇠학골(松嶽邑 佳鶴里 金鶴谷)과 포장된 4m 농로 도로가 이어지고 있다. 쇠학골은 원래 옛 면천군 승선면 금학리(金鶴里)지역이다. ‘금(金)’자가 ‘쇠금’자이기에 금학리가 쇠학골이 되고 , 점차 쇠학골이 쇠약골, 새악골 등으로 변음된 것이다. 명산리는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페합시 면천군 감천면  명성리(明星里)와 산북리(山北里)에서 각각 한자씩 따서 명산리(明山里)라고 명명했다. 멍성골은 엣 면천군 감천면 명성리(明星里) 지역으로 멍석굴, 명성리 등으로 불렸다.

쇠학골은 쇠약골, 새악골로도 불리는데 멍성골을 경계한 팔아산 (파래산 으로도 부름) 큰 고개 서낭에 돌장승(天下大將軍. 地下女將軍)을 세워 서낭제를 매년 정월 대보름날 오시(午時)에 올리고 있다. 옛날에는 새벽 해뜨기 전에 올렸다.

장승의 어원은 1527년 최세진이 『훈몽자회(訓蒙字會)』(중권 제9장)에서 후를 설명하면서 ‘ㅤ댱승 후’라 기록하였다. 이 ‘ㅤ댱승’이 ‘쟝승→장승’으로 변했다. 장승의 한자어 표기는 장생(長生)이며 조선시대에는 ‘ㅤ댱생’이라 발음했고 ‘ㅤ댱승→쟝승→장승’으로 변했다. 장승을 부르는 명칭에는 장생, 장성, 장싱, 장신, 벅수, 벅슈, 벅시, 후, 수살, 수살막이, 수살목 등이 있다. 명칭으로 보아 장승이 일반적인 용어이며, 한자어로는 장생(長生), 장성(長性), 장신(長神), 장승(張丞) 등으로도 쓰고, 사투리로 장싱이라 부르는 곳도 있다.

벅수라는 말은 경상도 해안 지역과 전라도에서는 장승을 벅수, 벅슈, 벅시 등으로 부른다. 이는 법수(法首) 또는 법슈에서 온 것이 아닌가 추측되지만 확실치 않다. ‘법수’의 의미를 ‘신선’ 또는 ‘선인’으로 보는 이도 있다. 후는 옛 문헌에 장승을 표현한 글자이다. 수살, 수살막이, 수살목 등으로 표현한 것은 장승을 세워서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 살(煞)인 나쁜 재액을 막아 준다고 여기고 붙인 말이다.

일반적으로 장승의 몸체 전면에 세로로 새겨지는 글자에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가장 많다.

장승의 가장 큰 기능은 절이나 마을의 수호신의 역할이다.  마을이나 절에 들어올지도 모르는 나쁜 기운이나 병마, 재액, 호환을 방비하는 동시에 마을의 풍농과 화평, 출타한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지켜주는 것이 장승을 세우는 가장 큰 목적이다. 수살막이 장승으로 대표적인 진도 덕병의 돌장승은 마을 어귀에서 목에 쇠뼈를 달고 살막이를 하고 있다. 절을 지키는 장승은 대개 절 들머리의 길 양쪽에 서서 마주보고 있다.

장승은 수호신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장승의 몸체에 어디까지는 몇 리라고 써서 이정표 구실을 하기도 했다. 이를 노표(路標)장승이라고 부른다. 장승의 또 하나 기능은 풍수적으로 보아 지세가 허한 곳에 세워 지세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이를 풍수에서는 비보적(裨補的) 역할이라고 하는데, 절이나 마을에서 고려하여 세웠다.

이곳 서낭 돌장승 옆에 명성동(命聖洞) 마을명과 소약산(蘇約山) 지명이 새겨진 망주석(望柱石)을 2011년 1월20일 이곳 팔아산 북쪽 능선에 옮겨놓았다. 이 망주석은 팔아산 북쪽 기슭 오좌(午坐)에 지금으로부터 349년 전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후손 현감(縣監) 이유형(李惟亨; 1598년 선조31년~1662년 顯宗3년)의 묘소가 있었는데, 후손들이  2007년 파묘(破墓)해 이장하고 주변에 버려진 망주석(望柱石)과 묻혀있던 상석(床石), 묘표(墓表)에 ‘命聖洞(명성동)’ 마을 이름과 ‘蘇約山(소약산)’의 지명이 표기되어 있었다. 좌측(西) 망주석은 ‘蘇約山’, 우측(東)망주석은 ‘命聖洞’이라 표기되어있다. 즉 약 350년전 돌에 마을 지명인 명성동과 산이름인 소약산 지명이 표기되어있는 것이다.

파묘된 채 방치되어 오랜 세월이 지나면 훼손될 우려가 있어 이곳 서낭 주변에 명산리 마을 주민들이 옮겨다 놓았다. 이것은 향토 지명연구에 굉장히 중요한 실증자료로서 영구히 잘 보존해야한다.

망주석에 표기된 ‘蘇約山’은 팔아산(八娥山)의 옛 지명으로 추측해볼 수 있고, 또 한편 마을 지명인 명성동(明星洞)도  옛 명성동(命聖洞)에서 유래한 것 같다. 한자지명이 다르고 한글지명은 같다. 명산리에 거주하시는 홍사필(洪思弼)은 팔아산 형국(形局)이 목숨 명자(命字) 형국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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