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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쓰는 지명유래
김추윤 박사
회해포(懷海浦)와 풍해포(豊海浦)
2017. 08. 06 by 당진신문

편집자주
당진신문은 창간 28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당진 향토문화의 뿌리 찾기에 일생을 받쳐온  당진 출신 김추윤 박사의 <새로 쓰는 당진의 지명유래> 난을 신설하여 장기 연재하고자 한다.
김추윤 박사는 그동안 <당진의 지명유래> <당진의 옛지도> <삽교천의 역사문화> <당진의 사찰> <조선환여승람 당진편> 등 당진관련 책을 여러 권 저술하여 내포학의 체계를 세우는데 견인차 역할을 한 당진의 중견 향토학자이다. 현재 신한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과 중앙도서관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본지의 창간에 참여한 이래 현재까지 편집위원으로 있으며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의 내포 연구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글: 김추윤 박사 (지리학박사, 신한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 당진향토문화연구소장)

 

삽교천변 신평, 우강에는 고려시대  인천항과 같은 큰 포구가 있었다
신평 운정리에는 거이미포-회해포가, 우강 송산리에는 송곶포-풍해포가

인간이 하천으로부터 받은 가장 위대한 선물은 문명의 탄생이다. 즉 하천은 문명을 낳는 산실이다. 하천에서 탄생된 문명은 다시 하천이라는 젖줄에서 성장하고 발전해 왔다. 하천은 예부터 수운교통로로 편리하게 이용되었고, 고려, 조선시대에는 조운에 의한 세곡의 운송에 큰 역할을 하여왔다. 충청도 지역에서 하천수계로 통할 수 있는 곳은 금강을 중심으로 한 공주-부여-부강까지 이어지는 금강문화권 수계와  삽교천을 중심으로 신평-우강-합덕-고덕 구만포까지 이어지는 내포문화권 수계가 가장 핵심이었다.
 내포지방의 범위는 시대와 학자의 견해에 따라 다양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중환이 『택리지(擇里志)』에서 언급한 삽교천 이서(以西) 가야산 앞뒤에 있는  10개 고을을 말한다. 이 지역은 금북정맥(차령산맥)의 줄기에 가로막혀 충청남도의 남부 내륙지방과 격리되었다. 이중환(1690-1756)은 그의 저서 『택리지』에서 내포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충청도지역에서 내포가 최상의 지역이고, 가야산 앞뒤의 10개 고을을 내포라고 한다”라고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즉 그 당시의 행정구역으로 당진, 면천, 덕산, 해미, 서산, 태안, 결성, 홍주, 대흥, 보령 등지를 말한 것 같다. 조선 천주교구에서는 홍주(洪州;홍성)를 중심으로 그 위쪽을 상부내포(上部內浦), 그 아래쪽을 하부내포(下部內浦)로 구분하기도 한다.
 내포지방은 남쪽이 차령산맥으로 막히고, 북쪽으로는 아산만과 삽교천을 통하여 황해로 열려 있기에, 일찍부터 금강문화권과는 별도로, 이 열린 북쪽으로 서해-삽교천을 통하여 고려의 수도 개경이나 조선의 한양 통하는 창(窓)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삽교천변은 고려시대 이래로 조선시대까지 홍주, 천안,  덕산, 면천, 아산의 월경지가 집중 분포하여 내포지방의 문화통로 역할을 하던 곳으로, 이질적인 여러 문화가 융·복합하여 이루어졌지만, 삽교천, 역천 수로 주변의 포구를 매개로  개경이나 한양을 드나들던 조운선에 의한 아산만 물길을  타고 들어온 포구문화와 외세와의 접촉문화라는 나름대로 독특한 역사문화적 성격을 형성하였다.
삽교천을 옛날에는 상류지역인 홍주지역에서는 금마천(金馬川), 중류지역인 예산지역에서는  신교천(薪橋川), 덕산에서는 선화천(宣花川), 사읍교천(沙邑橋川), 최하류인 면천(현 당진시 우강면 일대)에서는 범천(犯川), 범근천(犯斤川), 버그내 등으로 불렀다. 하나의 하천을 두고 상류에서 하류까지 지역에 따라서 하천지명이 다르게 불리는 것은 다른 하천에서도 흔한 현상이다. 삽교천에는 고려시대에 이미 60 포(浦)에 해당되는 신평의 회해포(懷海浦)와 합덕(우강)의 풍해포(豊海浦) 및 이밖에 예산의 장포가  있어서 중요한 조운수로 역할을 했으며, 이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범근내포-공세포로 이어지면서 전기를 맞게 된다.
삽교천 연변은 예부터 주변에 곡창지대가 넓게 펼쳐져있고 수상, 해상교통이 편리하여 세곡의 운송을 위한 조운의 출발지로서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부터 포구가 발달해 있었다. 강변에는 수운창(水運倉)을, 해변에는 해창(海倉)을 두었다.

 

 

조선의 조운체계는 고려의 조운체계에 기초하였으며, 고려시대에 유용하게 이용되었던 포구와 항로는 조선시대까지 거의 그대로 계승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사에 의하면, 서해 아산만에는  고려에 12조창이 시행되기 이전에 조세운송시스템인 60포 중에 풍해포, 회해포, 이섭포, 편섭포 등이 조운과 관련하여 포구로서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포들은 성종·현종대를 거치면서 군현제가 정비되고 중앙의 지방통제가 보다 강력해지자, 정종대에 이르러 호족 지배하에 운영되던 기존의 포를 대신해서 국가 주도의 통양창이, 석두창, 영풍창 등 12조창(漕倉)이 설립되어 조운의 중심지로 자리잡게 되었고, 개경 이북에는 안란창을 두었다.
고려에 12조창이 시행되기 이전에 조세운송시스템인 60포 중에 서해안 아산만과 삽교천 연변에는 상류(지류인 무한천 상류)에 이섭포(利涉浦), 삽교천의 중간에 풍해포(豊海浦), 삽교천 최하류 아산만과 만나는 곳에 회해포(懷海浦)가 연속적으로 시스템적으로 입지하여 주변 일대의 군현 조세미를 수납하는데 중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고려말 공양왕시에는 장포(獐浦)라는 포구에 당성을 쌓고 서울로 조운한 사실이 있다. 그리고 장포는 이섭포와 풍해포의 중간인 무한천과 삽교천이 만나는 꼭지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즉 아산만 일대에는 범근내 천변에 회해포와 풍해포, 진위천과 둔포천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편섭포, 당진 북부에 위치한 당진포 등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신평에 거이미포(居伊彌浦)라고 불렸던 회해포(懷海浦)가, 우강에는 송곶포로 불리던 풍해포 포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해포는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 부근에 있던 것으로 추측한다. 필자는 운정리에 있던 공세포(貢稅浦)로 추정한다. 공세포는 현재 삽교천 국민관광지가 조성되면서 흔적도 없이 교란되었지만, 마을에서는 조선 초기에 공세창이 있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공세포는 삽교천의 최 하류 아산만 초입에 위치하여 군사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며, 마주보는 대안의 아산지방으로 건너다니던 포구였다. 회해포는 바로 지근에 백제성인 신평현성(新平縣城)의 유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예부터 중심 포구 역할을 하던 곳으로 추측된다.
이 지역에는  공세창(貢稅倉), 구창(舊倉) 등의 화석지명으로 남아있는데, 이런 것들이 조운과 관련이 있다고 추측되며, 고역(古驛)이라는 지명은 고려시대의 역원(驛院)이 있기에 붙여진 지명이라고 전해진다. 고려 60포 중의 하나인 해풍의 풍해포(豊海浦)는 홍주의 월경지였던 우강면 송산리 승곶이로 추측된다. ‘승곶이’는 본래 ‘송곶’이었으며, 조선후기까지도 조운선이 정박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고려사』에는 풍해포가 해풍군(海豊郡)에 있으며 전에 송곶포(松串浦)라고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종 11년에 개정된 읍호에 따르면 홍성의 별호가 해풍(海豊)이었으며, 풍해포의 옛 이름도 송곶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승곶이’ 마을에 사는 촌로들한테 물어보면, 이곳에 옛날에 큰 포구가 있었다고 전해온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당진은 내포의 젖줄이라는 충남에서 2번째로 큰 하천인 삽교천의 넓은 충적 평야지를 끼고 아산만에 깊숙이 들어와서 임해지역에 위치하여 지리적으로 독특한 위치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해로와 수로가 편리하고 곡창지대를 이루어 소금, 해산물, 곡물, 물 등이 풍부하여 구석기 시대이래로 일찍부터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이 최근의 발굴조사에서 밝혀지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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