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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크, 작은 씨앗이 큰 결실을 맺다-최예린 기자(계성초5) ●주먹도끼가 궁금해?-송혜주 기자(원당중1) ●말랄라를 아시나요?-이윤태 기자(원당중1) ●지구를 아끼는 환경운동가 대니 서-송주희 기자(원당초4)

[당진신문 아름숲기자단] 포기하지 않는 ‘정의’ 세상을 바꾸다

2019. 11. 09 by 아름숲 기자단

[당진신문=아름숲 기자단]

최예린 기자(계성초5) yerinveronica@naver.com
최예린 기자(계성초5) yerinveronica@naver.com

반크, 작은 씨앗이 큰 결실을 맺다
반크가 왜 겨자씨를 상징하는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됐다. 사이버외교사절단이라 불리는 반크는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하는 단체라는 점에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크는 중.고등학생들로 이루어진 대한민국 공공 외교민간외교단체다. 내부적으로 21세기에 걸맞은 인재 교육을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변화된 우리 청소년과 청년들은 한국 외교의 능동적인 주인공으로 성장하고 있다. 세계인과 우정을 나누며 교류하고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을 바르게 알리는 지구촌변화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다. 반크는 한국 홍보와 국제교류, 글로벌 이슈에 관심 있는 한국인 회원 12만 여명과 한국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한국을 알고 싶어 하는 외국인 회원 3만 여명이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반크는 크게 5가지로 활동영역을 나누고 있다.

첫째, 사이버외교관/월드 체인지 프로젝트는 영어자기소개, 한국소개, 펜팔친구사귀기, 한국홍보 등과 12가지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둘째, 한국 바로 알리기 오류시정 프로젝트(21세기 이순신 프로젝트)는 한국을 넘어 지구촌 시민으로서 세계인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기후 변화, 빈곤, 질병 등과 같은 지구촌 공동이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해결한다. 나는 기후변화운동가 툰 베리 이야기를 신문에서 본 적이 있는데 지금 보니 반크 청소년들이 하는 일도 비슷하다.

셋째, 한국홍보 및 교육자료 제작, 배포 프로젝트(21세기 광개토대왕 프로젝트)는 해외로 출국하거나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및 해외펜팔 등을 통해 한국을 알리는 홍보자료를 제공하고 60억 세계인들에게 21세기 대한민국의 꿈을 전달한다. 이외에도 한국 홍보 및 교육영상 제작 및 배포 프로젝트, 지구촌 촌장 양성 프로젝트 등이 있다.

어른들의 외교와 달리 청소년들이 하는 외교활동이라니, 이렇게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우리나라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접하고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고쳐줄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지고 의미있는 일인가. 나는 반크 회원이 되긴 힘들 것 같다. 대신 조수미처럼 실력 있는 성악가가 되어 우리나라를 노래로 알리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송혜주 기자(원당중1)
송혜주 기자(원당중1)

주먹도끼가 궁금해?
나는 아름숲 기자단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이번 미션 네 가지 중에 이화여고 주먹도끼라는 역사동아리가 마음에 끌렸다. 동아리 이름이 재밌어서 무엇을 하는 동아리 일까?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화여고의 동아리인 ‘주먹도끼’를 조사하고 소개해 보려고 한다.

주먹도끼는 ‘뾰족한 주먹도끼로 잘못된 역사를 찍어버리겠다’라는 의미이다. 이 주먹도끼는 이화여고의 역사 동아리이며, 1,2학년 학생들 위주로 활동이 이루어진다. 이 동아리는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여러 가지 일중에서도 ‘사람’을 바꾸고 싶다고 하신 성환철 선생님께서 담당하고 계신다. 사람을 바꾸기 위해 성환철 선생님이 선택하신 일이 학교라는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정의로운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한다.

주먹도끼에서는 국정 교과서 논란과 세월호 주기가 있을 때 배지를 만들어 배부하는 활동,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활동 등을 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활동에는 소녀상 프로젝트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세계 1억인 서명운동 등이 있다. 소녀상 프로젝트는 주먹도끼 학생들의 목표인 큰 소녀상을 세우는 것이며,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소녀상 모양을 한 배지를 직접 제작하여 기금을 모으기도 하고 전국 각지의 학교에 참여를 권장하는 서명운동을 열기도 했다. 그렇게 약 1년간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결과, 2015년 11월 3일 학생의 날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지면서 프로젝트는 마무리 되었다.

작은소녀상 사진제공=이화여고 주먹도끼
작은소녀상 사진제공=이화여고 주먹도끼

현재 당진에도 비슷한 활동을 하는 당진청소년평화나비 단체가 있다. 소녀상 이전이나 한일협정 문제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내는 청소년들의 모임이다. 2016년 마지막 수요집회 참가, 2017년 봄 세월호 3주기 추모 문화제에 참여했으며,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에 기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지난 11월 2일에는 문예의전당 일원에서 청소년들이 기획하고 준비한 평화나비페스타를 치르기도 했다.

이 기사를 쓰며 나에게 주어진 지금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도 언젠가는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이윤태 기자(원당중1)
이윤태 기자(원당중1)

말랄라를 아시나요?
여러분, 혹시 말랄라라는 사람을 아시나요? 이 사람은 파키스탄의 교육 인권 운동가로 교육을 받지 못 하는 청소년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청소년이 교육을 받지 못 한다는 소리는 듣지도 못 할만큼 대부분 청소년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런 운동가가 나올 만큼의 세계는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 것일까요?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지금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교육을 받지 못 하는 소녀들은 1억 3000만 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세계 문맹률의 67%가 여자라고 하는데요. 이렇게 세계에서 굉장히 많은 여자들이 문맹이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말랄라가 태어난 파키스탄은 세계에서 여성 교육률이 꼴찌를 겨우 면할 정도로 매우 취약합니다. 

그러면 이런 상황 속에서 나타난 말랄라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1997년에 태어난 말랄라는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사람들을 통솔하다 전사한 말랄라이를 생각하며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말랄라가 사는 지역이 탈레반이라는 무장 단체가 점령하게 되고 그때부터 여성은 아예 교육을 받지 못했고, 생활은 억압받았습니다. 이런 생활을 참지 못했던 말랄라는 이것을 일기로 써서 블로그에 올렸고, 전 세계에 탈레반의 행동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탈레반에게 살해당할 수 있는 위기를 무릅쓰고서 실명을 공개한 뒤 방송에 출연도 했는데요. 이를 알게 된 탈레반은 말랄라를 죽이려고 총을 겨누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히 말랄라는 기적적으로 살아납니다. 그리고 그 이후 더욱 적극적으로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탈레반의 만행들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2013년에는 UN에서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 연설을 했고, 2014년에는 노벨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나이에 살해당할 걱정을 무릅쓰고 사람들 앞에 서서 목소리를 낸 말랄라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지금 제가 얼마나 행복하게 청소년기를 보내며 편안하게 공부하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구 반대편 친구들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제2, 제3의 말랄라가 많이 생겨나 세계의 교육 환경이 더욱 나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송주희 기자(원당초 4)
송주희 기자(원당초 4)

지구를 아끼는 환경운동가 대니 서
체육대회 날 미세먼지가 많다고 해서 미리 달리기를 했다. 작년만 해도 달리기를 미리 뛸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얼마나 더 안 좋아 질까 궁금증이 생기던 차에 지금 내 나이 11살 때부터 활동을 한 대니 서라는 환경운동가를 알게 되었다.

대니 서는 11살 때 책과 텔레비전을 통해 환경문제가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 환경운동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12살 생일에 친구들 7명을 설득해서 “지구2000”이라는 환경 단체를 만든 대니 서는 10대에 이미 환경운동가이자 시민운동가로 다양한 활동을 했다. “지구2000”은 2만 6000명이 넘게 가입한 미국 최대의 환경 보호단체로 성장했다. 13살 때 “폐로스제도 고래사냥”을 반대하는 전미국적인 캠페인도 하였고 약 8만평의 역사를 담고 있는 삼림을 구하기 위해 엄청난 대기업과 싸우기도 했다.

모피 반대운동을 벌여 4천여개의 모피상점을 문닫게 만들기도 했다. 사랑의 집짓기 운동, 환경운동, 자선단체들을 위한 모금활동, 가난한 미술학생들을 위한 미술관 무료입장권 기증 운동 등을 했다. 1998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50인>에 선정되고 같은 해에 <슈바이처인간존엄상>을 받았다. 그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스스로 “지구2000”을 없애고 친환경 생활 전문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0년부터는 의식이 있는 스타일을 추구하는 생활 디자이너로 재활용과 환경친화적 주거환경을 위한 사업을 하고 있다.

관심이 실천으로 옮겨가고 노력을 통해 꿈을 이루며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대니 서를 보면서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됐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흙공을 만들어 바다에 던지기도 하고 해안에 떠밀려온 쓰레기와 유리조각도 줍고 지구의 날 15분 불끄기 운동도 해왔다. 하지만 대니 서처럼 “이건 해야만 해!!!”라는 책임감을 갖지 못했다. 우리 모두가 앞으로 50년 후 100년 후를 생각하면서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고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물론 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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