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융진

[당진신문=오융진] 5년 전쯤 어느 날 길옆에 피어난 꽃의 이름이 알고 싶었다. 이를 계기로 풀도감과 나무도감을 구입했다. 범위를 넓혀 발길 닫는 대로 당진을 쏘다녔다. 마섬포구의 갯장구채, 다불산의 찰피나무, 아미산의 꽃며느리밥풀과 박쥐나무, 대난지도의 쥐방울덩굴, 초락도의 짝자레나무, 몽산의 타래난초, 능안생태공원의 흑삼능과 낙지다리, 당진천의 노랑어리연……. 이렇게 당진 곳곳과 푸나무로 인연을 맺었다. 야생화 모임에서 600가지 정도를 구분하면 ‘도사’란 칭호를 붙여준다. 시간과 노력을 집중 투자한 덕에 1,500여 종 구분이 가능해 졌다. 이를 디딤돌 삼아 숲해설가 자격증을 취득했다. 자격증 취득 후 야생화를 관찰하는 습관이 더해졌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 중 하나가 민들레다. 민들레는 토종과 외래종 크게 두 종이다. 토종은 ‘민들레’라 하고 외래종은 ‘서양민들레’라고 부른다, 서양민들레는 민들레보다 생명력이 강하다, 토종은 반드시 자가수분만 한다. 반면 외래종은 환경이 맞으면 타가수분한다. 또 여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자가수분한다. 심지어 겨울에도 외래종은 꽃을 피운다. 여기까지는 생태다.

앞서 수많은 세월동안 관찰자들은 민들레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토종의 자가수분 방식을 보고, 향수에 젖은 일부 한국인들은 ‘일편단심 민들레’라고 추켜세웠다. 토종이건 외래종이건 민들레의 특징 그것도 9개를 발견한 후 ‘구덕초(九德草)’란 별칭을 붙이기도 했다. 식물은 외부의 간섭만 없다면 자신이 지닌 특징을 그대로 발현시킨다. 인간은 그런 식물의 특징을 인간세상으로 끌어들여 덕목으로 승격시켰다. 이런 인식이 인문학적 해석이다.

민들레는 흔히 말하는 한 송이에 수십 개의 작은 꽃들이 모여 핀다. 지난 4월 어느 날 민들레를 살펴보다 도대체 작은 꽃의 모양과 개수가 궁금해졌다. 민들레 관점에서 만행을 저질러야 했다. 민들레 꽃을 따서 반으로 갈라 작은 꽃을 하나씩 떼어냈다. 민들레 작은 꽃은 꽃잎이 한 장이다. 꽃잎 모양이 혀를 닮았다고 해서 설상화(舌狀花)라고 한다. 꽃이 달린 위치로 구분하는 꽃차례로는 두상화(頭狀花)로 분류된다. 비유하자면 사람의 머리털 한 올을 민들레 꽃 하나로 보면 된다. 한 송이 한 송이씩 떼어냈다. 딴에는 정성스럽게 그리고 정확하게 세기 시작했다. 작은 꽃을 세는 셈은 178개로 끝났다.

내친 김에 한 가지 작업을 더 벌였다. 민들레 씨앗에 달린 털이 갓털이다. 육안으로는 헤아리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헤아려보기로 했다. 씨앗이 익어 바람만 불면 날아갈 상태가 된 민들레가 필요했다. 갓털이 떨어지지 않도록 씨 한 톨을 분리했다. 검은 바탕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컴퓨터 화면 위에 띄우고 확대해서 셌다. 겹친 부분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화면상으로는 87개였다. 아, 한 톨에 갓털이 87개! 그렇다면 갓털은 모두 몇 개? 178×87=15,486개.

15,486개의 갓털이 달린 민들에 씨앗 87개는 바람만 불면 어디론가 날려간다. 그러나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온 민들레도 씨앗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 더러는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 바람이 불어도 씨앗이 분리되지 않을 때가 그렇다. 씨앗이 2/3정도만 분리된 민들레를 본 적이 있다. 그곳에는 알락수염노린재가 붙어 있었다.

민들레에 웬 알락수염노린재? 제비꽃의 전략이 떠올랐다. 제비꽃은 씨앗이 영글면 톡 터져 씨앗을 되도록 멀리 보낸다. 이 방법도 부족했는지 씨앗에 개미가 좋아하는 엘라이오솜이란 물질을 묻힌다. 개미가 제비꽃 씨앗을 물고 돌아가 엘라이오솜만 먹고 버린다. 버려진 곳은 제비꽃에게는 새로운 터전이 될 터이다. 같은 이치로 민들레도 알락수염노린재가 좋아하는 물질을 씨앗에 발라 놓은 것은 아닐까하는 상상을 해봤다. 민들레는 미처 분리되지 않은 씨앗을 날려 보내기 위해 알락수염노린재라는 외부의 힘을 빌린 것이다. 애써 만든 씨앗이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기만 하면 성공한 것일까? 정착할 곳은 고사하고 정착여부도 알 수 없다. 민들레가 씨앗의 정착률을 높이는 방법은 없을까? 민들레 씨앗을 유심히 살펴봤다. 씨앗 양옆으로 돌기가 돋았다. 돌기는 씨앗과 직각방향이 아니라 사선방향이다. 돌기의 방향과 기능을 유추해봤다.

씨앗이 갓털의 도움으로 날아가다 떨어지면 돌기는 위를 향하게 된다. 수직으로 씨앗이 떨어졌다고 가정했다. 떨어진 씨앗은 습기로 부풀 것이다. 그러면 부푼 만큼 땅과의 접촉면이 넓어진다. 낮에 습기가 마르면 씨앗의 부피가 줄지만 접촉면은 넓어진 상태 그대로다. 그러면 씨앗은 그 차이만큼 땅에 박힌다. 이와 같은 과정이 반복되면 씨앗은 중력의 원리를 이용해 자연 상태로 파종된다.

어느 정도 땅으로 파고들면 위로 향한 돌기가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돌기의 각도가 중요하다. 비유하자면 이 돌기는 낚시 바늘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돌기가 위로 향했으므로 씨앗은 땅에서 쉽게 이탈되지 못한다. 머리 한 올을 잡고 훑어보라. 미끄러지는 방향으로 머리카락 표면에 난 돌기가 누워 있다. 반대방향으로는 잘 미끄러지지 않는다. 민들레 씨앗 돌기 기능도 이와 같다. 씨앗의 정착률을 높이려는 민들레의 전략이고 진화다.

숲해설가 양성교육에서 모든 생물에게 적용된다는 3대 원칙을 배웠다. 첫째는 자신이 우선 살아남아야하고, 둘째는 자신의 DNA(후손)을 남겨야하며, 셋째는 경제적으로 첫째와 둘째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5감으로 감지하는 인간과는 달리 식물은 더 많은 감각으로 삶을 영위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특수한 화학물질을 만들어 의사소통을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런 인식들을 바탕으로 풀과 나무, 즉 자연이 내게 질문할 수 있고 물론 그 질문에 대답도 가능하다고 여겨지게 됐다.

씨앗이 어디론가 바람에 날려갔다면 그 민들레는 성공한 것이다. 살아남아서 후손을 남겼다. 여러 송이의 꽃에서 모두 씨앗을 만들어냈으니 가용 에너지를 경제적으로 사용한 결과다. 한 송이에서 78개의 작은 꽃을 피워내고 길러낸 78개의 씨앗에 15,486개의 갓털을 붙였다. 인간의 눈에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민들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해냈다. 그래서 신비롭고 경이롭다. 작은 꽃과 그에 해당하는 씨앗, 거기에 달린 갓털의 수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그러나 씨앗의 돌기와 방향이 경이로움의 정점을 찍는다. 엄마 민들레는 자기 품안에서 자라는 자식 씨앗은 별 걱정 없이, 큰 어려움 없이 키워낼 수 있다. 문제는 품안을 떠난 자식의 정착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엄마 민들레는 손 놓고 바라다보고만 있지 않았다. 정착률을 높일 장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이 자식인 씨앗에 장착한 돌기와 그 방향이다. 이 절묘한 장치를 자식에게 입힌 엄마 민들레는 비로소 자식인 씨앗을 품에 안고 갈 바람을 반갑게 맞이할 것이다.

그런 자신의 임무를 마친 민들레가 질문을 던진다. 내가 속한 생태계에서 살아남아 임무를 마친 것처럼 너도 너의 세상에서 그럴 수 있는가, 어려울 때 소통하고 도움을 주는 동료는 있는가, 에너지를 계획대로 경제적으로 사용하고 있는가, 쓸데없는 것에 낭비하는 것은 아닌가, 자식이 너의 품을 떠나 정착할 수 있는 장치는 마련했는가, 그 장치는 적절한가, 자식이 품을 떠날 때 웃을 수 있는가……. 민들레가 질문을 계속할 태세지만 어느 것 하나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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