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검침원 열악한 노동조건 지적에 당진시 “원격검침 도입 고려”
수도검침원 23명 일자리 없어질 위기...당진시 고용안정에는 ‘나몰라라’
이선영 충남도의원 “공공서비스 제공위해 채용.. 공공에서 책임져야”
조상연 당진시의원 “당진시, 안정적인 고용과 노동정책 마련해야”

이선영 충남도의원과 조상연 당진시의원이 지난 9월 27일 당진시 수도검침원들의 노동환경을 체험하기 위해 동반 수도검침 활동을 펼쳤다.
이선영 충남도의원과 조상연 당진시의원이 지난 9월 27일 당진시 수도검침원들의 노동환경을 체험하기 위해 동반 수도검침 활동을 펼쳤다.

[당진신문=배길령 기자] 수도검침원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관련기사: 손 주무르고 허벅지 만져도...말 못하는 수도검침원, 본지 1271호).

현재 당진시 수도검침원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동안 돌아야하는 가구 수는 1인 기준 100가구 이상. 이들은 매달 20일부터 30일이라는 정해진 수도검침기간인 열흘동안 1,300여개의 수도전을 검침해야 한다.

당진시와 개인위탁계약을 맺고 현재 수도검침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들은 총 23명, 하지만 이들의 열악한 노동에 대해서는 4대보험, 연월차휴가, 퇴직금 등 어떠한 권리도 없다.

고용주인 당진시가 이미 이들의 노동을 장악하고 있지만 개인위탁계약으로 법적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다.

본지에서 이러한 당진시 수도검침원의 열악한 실상이 보도 된 후 당진시는 현재 난지도에서 실시하고 있는 원격검침처럼 당진시 전체의 원격검침 도입을 통해 데이터를 받는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하고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진시 수도과 관계자는 “뱀이나 해충을 만나거나 개물림 사고 등 수도검침의 일이 그렇게 위험하고 열악하면 역으로 우리가 이들을 사지로 모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원격검침의 방법을 고려해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원격검침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경기도 부천시는 수도 검침의 신뢰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 예정이었던 '스마트원격수도검침시스템' 구축사업에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행정사무감사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부천시의회 최성운 의원은 “스마트원격수도검침시스템을 도입 할 경우 정보 오류 가능성 등을 비롯해 장기적으로 봤을 때 7년마다 교체해야하고 인력 검침보다 3배비용이 든다”며 “기능적 효율성도 검증되지 못한 현 상황에서 예산을 투입했을 때 검침원들이 직장을 잃는 상황에 놓이는 등 부정적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아르바이트라면서 겸업금지?

당진시는 현재 수도검침원들에 대해 ‘아르바이트(프리랜서)에 불과’하며 ‘계약이 종료되면 딴 일자리를 찾아봐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열악한 환경에서 길게는 8년을 수도검침원으로 일해 온 이들에게 당진시는 특별회계와 효율성을 잣대로 들고 있다. 이들의 인건비를 위해서 “당진시의 세금을 끌어다 넣고 있다”는 시관계자의 설명 어디에도 고용안정을 고민하는 흔적은 볼 수 없었다.

당진시 수도과 관계자는 “수도검침은 매달 열흘 동안만 이루어지고,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서 검침원들이 스스로 정하고 월급이 아닌 수수료를 받는 것”이라며 “수도검침의 일은 아르바이트나 프리랜서와 같은 맥락으로 봐야한다. 때문에 생계의 수단으로의 일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수도검침원이 아르바이트에 불과하다는 당진시의 설명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2016년과 2017년 당진시 수도검침원 모집공고에 따르면 당진시는 수도검침외 겸업을 금지하고 있다. 겸업을 금지하면서도 프리랜서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다.

당진시 공식 모집공고에 있는 겸업금지조항에 대해 당진시 수도과 관계자는 부서협의도 없이 담당 공무원 개인의 실수라며 책임을 돌리는 모습을 보였다.

당진시 수도과 관계자는 “당시 공고는 협의없이 담당자의 개인 의견이 반영 되었을 뿐 당진시의 정식 입장이 아니다. 당시 담당자는 현재 당진시청에서 근무하고 있지 않다”라며 “2018년부터는 그런 공고 내용이 없어졌다. 16년도와 17년도만 실수가 있었던 것이지 겸업을 금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7년째 당진시 수도검침원을 해오고 있는 박은옥 씨는 “맡겨진 수도전 검침으로 검침기간 이상을 근무하는 검침원도 많고 어느 시간 때에 찾아오라는 민원인의 요구대로 따르는 검침원들도 많다. 60세 제한과 겸업금지로 알고 일해 온 수도검침원들에게 수도검침은 당연히 생계”라고 반박했다.

한 수도검침원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목소리에 살가운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근로자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힘든 노동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생계유지 직업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 검침원은 “수도검침원들이 하는 일이 계량기의 숫자만 쓰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밭에 쓰러져 계신 어르신들을 돕고 화재가 난 집을 신고한 적도 있다.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곳을 방문해 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우리의 노동은 인정받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호소했다.

이선영 충남도의원과 조상연 당진시의원이 지난 9월 27일 당진시 수도검침원들의 노동환경을 체험하기 위해 동반 수도검침 활동을 펼쳤다.
이선영 충남도의원과 조상연 당진시의원이 지난 9월 27일 당진시 수도검침원들의 노동환경을 체험하기 위해 동반 수도검침 활동을 펼쳤다.

한편, 지난 9월 27일 충남도의회 이선영 의원(정의당)과 당진시의회 조상연 의원(민주당)은 수도검침원들의 노동현장을 체험하기 위해 동반 수도검침을 나섰다.

동반검침에 나섰던 이선영 의원은 “주민들의 반가움을 받지 않는 검침원들은 대부분 주부들로 민원인들 뿐만 아니라 시청에서도 놀고먹는다는 선심형 식의 반응으로 고충을 알아주는 사람도 권리도 없었다”며 “공공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채용된 인력이라면 공공에서 책임지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조상연 의원은 “공공기관에서 아무런 대책이나 고민 없이 원격검침을 급하게 도입한다거나 또는 원격검침의 효율성으로 불가피하게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근로자에게 고스란히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동은 안 된다”며 “이제는 시청이 시 산하  근로자에 대한 안정적인 고용과 노동정책을 마련하고 어떤 방향으로 노무관리를 해나갈지 답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한편, 현재 당진시 자치행정과는 수도검침원들의 고용문제에 대해 관련부서와 회의를 통해 정부 지침에 따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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