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신문 오피니언] 그게 아닌데
[당진신문 오피니언] 그게 아닌데
  • 당진신문
  • 승인 2019.09.21 06:00
  • 호수 127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종미 (시인, 수필가)
이종미 (시인, 수필가)
이종미 (시인, 수필가)

[당진신문=이종미]

실로 오랜만에, 그러니까 스무 서너 해 만에, 서로 정들었다 헤어진 지인을 같은 직장에서 다시 만났다. 반가움도 잠시 그의 뜬금없는 질문이 과거 행 초고속열차로 나를 몰아넣었다.

“언니네 큰 딸 아직도 지렁이 잡고 놀아요?”

올해 내 큰딸은 스물아홉 살, 혼기 꽉 찬 아가씨다. 자신이 원하는 직장에 취업했고, 여기 저기 선보자는 이야기가 사방에서 들어온다. 기억을 세탁할 시간도 주지 않고 들이민 첫 질문이니 당황할 수밖에. 뭐라고 대답할지 난감했다.

남편의 취미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민물낚시를 가장 좋아한다.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았어도 총각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수그러들지 않았다. 외롭고 분주했던 나의 삼십대. 창취한 바람이 만들어 놓은 벤치에 앉아 책 읽는 주인공이 되고픈 맘이 허기처럼 달라붙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큰딸을 데리고 낚시터를 둘러보러 간단다. 걱정이 앞섰지만 둘은 기쁜 얼굴로 무사히 돌아왔다. 한 차례 더 다녀오더니 한 달에 한 두 번은 둘이 그렇게 다녀오겠다는 계획을 잡았다.
나에게 책 읽을 시간을 주기위한 남편의 큰 배려였으리라. 몇 달이 지나자 큰딸은 아빠가 낚시가방만 둘러메도 당연히 자신도 가야한다고 떼를 쓸 정도였다.

큰딸이 낚시터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궁금하여 나도 가보겠다고 하자 둘만의 의미심장한 눈빛이 교차한다. 뭔가가 있다. 조용히, 반드시 밝혀내야만 하는 그들의 비밀이 있다. 남편은 참 침착하고 느리고 착한 사람이지만 가끔은 엉뚱한 사고를 잘 치는 사람이기도 하다. 단 한시도 방관하면 안 된다. 큰딸은 그런 아빠를 재미있다며 따라다니다가 큰 부상은 아니지만 수차례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꼬랑지처럼 붙어 다닌다. 하도 붙어 다녀서 그런지 둘은 성격도 비슷하다.

아직 유모차를 벗어나지 못한 작은 딸을 데리고 낚시터에 따라갔다. 결혼 후 두 번째 동행이다. 남편은 평평한 자리에 텐트를 치고 우리 세모녀가 묵을 자리를 잡아준 후 가까운 농수로에 낚시 도구를 펼쳤다. 아무 할 일 없는 나는 무료함을 달랠 겸 작은 딸을 태운 유모차를 끌고 주변을 몇 바퀴 돌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텐트 안에 있는 큰딸은 익숙하게 그림책에 색칠을 하고 가위로 오리고 붙이는 등 나름대로 자신의 시간을 잘 보냈다.

오전 시간은 그럭저럭 지나갔지만 점심을 먹은 후부터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벤치에 앉아 한가롭게 책을 읽는 상상을 수없이 했는데 막상 야외벤치에 앉아 책을 보니 집중이 되지 않았다. 흰 종이 위에 반사되는 햇빛은 눈꺼풀을 천근만근 만들었다. 한글자도 들어오지 않고, 그렇다고 딱히 할 일도 없고. 작은 아이와 자다 깨다를 무한 반복후 수잠을 자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큰딸이 사라졌다. 깜짝 놀라 텐트 밖으로 나가자 아빠 부근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저렇게 둘이서 지내다 오는구나 싶어 대견한 맘 가득한데 주책없는 눈물은 아이를 뿌옇게 흐려 놨다.

그들 곁으로 다가가니 두 사람이 동시에 흠칫하는 눈치다. 반가움이 아닌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들 같다. 이상하다 싶어 발걸음을 재촉하니 아이가 손에 있던 무엇인가를 아주 작은 스타이로폼 상자에 집어넣고 뚜껑을 닫아버린다.

상자는 두 개다. 한 개는 빈 상자로 옆에서 뒹굴었다. 딱 봐도 무슨 상자인지 짐작이 갔지만 설마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손을 가진 내 딸이 그런 걸 만질 리가 있을까 싶어 믿어지지 않았다.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만 징그러워서 차마 손은 못 대고 꼬챙이로 멀찌감치 서서 건드렸다. 큰딸이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와 열어주며 동의를 구한다.

“엄마도 요거 귀엽지, 그치?”

공연히 숨겼다는 듯 아이는 작은 놈들을 꺼내더니 빈 통에 넣는다. 좀 붉고 큰 놈은 앙증맞은 자신의 손바닥에 올려놓고 가위로 자른 후 분류한다. 좀 전까지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플’ 학습지를 할 때 사용하던 안전가위가 지렁이를 자를 때 쓰일 줄이야. 제 나름대로 분류를 마쳤는지 아이는 작은 모종삽을 들고 내가 처음 봤던 자리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붉은 물 질질 흐르는 두엄자리다. 능숙하게 거름을 뒤집더니 그 아래 땅을 파고 지렁이를 잡는다.

야호, 신난다. 엉덩이춤까지 춘다. 그날 이후 아이의 낚시터 동행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었고, 충격 받은 내가 지인에게 속 풀이로 떠들었던 모양이다.

하고 많은 추억 다 놔두고 하필 그런 일을 기억하다니. 지인에게 은근히 서운했다. 업무를 핑계 삼아 되도록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해 다니다 탕비실에서 딱 마주쳤다. 다른 직원과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내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는지 ‘언니도 양반은 아니구먼’ 하면서 한사코 잡아 앉힌다. 설마 하는 눈빛을 보내자 아직 눈인사만 나눈 직원이 한마디 한다.

“아이를 자연에서 키운다는 그 언니 맞죠? 얼마나 자랑하는지 궁금했어요.”

나보다는 완벽해 보이던 후배가, 깍쟁이 같던 그가. 나를 자랑했단다. 자녀교육을 위해서라면 지렁이까지 잡으러 다니는 부모라고 과대포장 한 모양이다. 나는 푸념을 했는데, 그에게 들끓는 속을 뒤집어 보여 창피한 생각뿐이었는데 그는 부러운 맘으로 소화시켰던가 보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나의 교육관이 아니었다네. 내 맘에 들지 않는 우리 집 부녀의 털털한 일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