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그곳엔 / 질서정연한 침묵이 있다 // 찰나(刹那)의 삶이 아름다웠던 이들의 기억을 간직한 / 이 땅의 소중한 역사가 // 죽어서도 죽지 않은 이들의 / 거대한 침묵이 // 아아 / 어느새 잊혀져버린 // 잊을 수 없는 / 가없는 침묵이” (동작동국립묘지: 국립현충원 옛이름)

 6월 6일은 현충일이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몸 바친 순국선열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6.25전쟁에서 장렬히 산화한 전몰장병, 그리고 세계평화와 국위선양을 위하여 파견된 해외의 전장에서 숨져간 대한민국 아들들의 나라사랑하는 충성심과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날,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여 도맡아 해내고 먼저 가신 이들에게 감사드리는 날이다.
 이날은 반기(半旗)를 게양하고 오전 10시가 되면 사이렌 소리에 맞춰 전 국민이 추모의 묵념을 하는 날이다. 한 때는 이날만은 가무를 금하자 하여 모든 유흥주점이 문을 닫게 한 적도 있었다.
 이날이 되면 또 어김없이 TV는 기념식을 실황 중계하고 이어서 국립현충원의 모습을 실황 방송한다. 이날 비춰지는 현충원의 모습은 평소만큼보다는 덜 외롭게 보여지기도 하지만 왠지 가슴 한 구석에서 싸아하고 밀려오는 무엇이 있다. 이 무엇이 무엇인지는 처음 싸아하고 밀려온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분명하지 않고 단지 그 무엇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아직도 불분명하기는 하지만, 아마도 국외자일 수 없으면서도 국외자의 자세로, 마땅히 있어야할 외경심 없이 무심한 눈길로 건너를 바라보는 외람에 대한 연민과 질책과 분노의 응어리가 아닐까 싶다.
 대학 다닐 때, 우리 군이 월남전에 참전하여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70년 어느 날,동작동하면 국립묘지의 대명사가 되던 시절 그 동작동 국립묘지에를 간 적이 있었다. 무슨 날도, 무슨 연고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우연히 들렀던 그곳, 구석 한편에서 돌을 깎는 굉음과 돌가루가 부셔져 날리며 피워 올리는 뿌연 연기 속에 줄지어 나란히 눕혀져 있던 새로 다듬은 비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심코 지나쳐 묘역으로 올라가다가 부지런히 땅을 고르고 다지고 있는 옆으로 새로이 단장한 묘역에 새로 세워진 묘비들을 보았다. 그것은 월남전에서 전사한 우리 군인들의 묘비였다.
 그랬다. 고르고 있는 땅은 새로운 주인을 맞을 묘역이었고, 깎고 있는 돌은 그들의 비명(碑銘)을 새길 비석들이었다. 그렇게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만큼 새로운 전사자가 밀려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과 희생에 더하여 세계평화를 위해 산화한 그들을 위해. 그래, 산 자가 남아서 할 일이란 단지 장례를 치르는 일이로구나, 그리고 그 죽은 자의 죽음을 이 정도로 기리는 일뿐이로구나 하고 탄식할 밖에.
 병사들의 묘역에서 장교, 장군 묘역으로, 그리고 순국선열들, 고 이승만 전 대통령 등의 묘를 둘러보았다.(박정희 대통령은 살아 있던 시절이었다)
 묘역에는 넓은 터에 긴 이름으로 자리한 이들도, 좁은 공간에 빼곡히 줄지어 선 이들도, 더러는 이름 석 자조차 남기지 못한 이들도, 모두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들 모두는 다만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희생의 삶을 살았고 또 그렇게 산화해 갔느니, 어느 죽음이 더 위대하다 덜 위대하다 논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침묵하고 있었다. 참 질서정연한, 거대한 침묵이었다.
그들은 남은자 산자를 향해 어떤 금언도 또 어떤 경구도 말하지 않았다. ‘나같이 살라’고도 달리 또 어떻게 살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침묵은 천둥소리보다도 더 큰 소리로 웅변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다시 한 번 고쳐 살 수가 있다고 해도 기꺼이 같은 삶을, 같은 죽음을 택하겠노라”고. 그들의 소리는 귀로 들리지 않는 것. 온몸으로 기운으로 심장으로만 들을 수 있는 것. 나는 그저 온몸으로 떨고 있었다. 그때 거기에 서서.
 그들은 우리 국가와 민족의 은인이고 스승이고 표상이며, 바로 우리 국가와 민족을 살리고 지켜낸 의인들이다. 성경 창세기 18장과 19장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만 있으면 멸망을 면할 수 있었으나 결국 이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을 당하였다고 한다.
 우리에게 그들이야말로 역사 속 암흑기의 숱한 누란지위(累卵之危)에서 조국과 민족을 살리고 지켜낸 의인들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땅의 소중한 역사를, 그리고 그것을 지키고 우리에게 물려준 그들을, 그들의 침묵을, 그들의 침묵이 주는 웅변을.
 우리는 우리의 자랑스런 그들 영령들을 항상 존경과 사랑으로 가슴 깊이 간직하고 받들어 추모할 줄 알아야 하겠다. 그것이 우리가 갖춰야할 예의요 도리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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