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시 수도검침원, 당진시와 건당 계약
성추행 당해도 계약 해지될까 말도 못해
불안정한 신분에 4대 보험, 퇴직금, 연차휴가도 배제
고용노동부 “공무직 전환하라”...당진시는 “검토 중”

농촌 지역의 경우 계량기가 수풀에 있다 보니 대부분이 여성으로 이루어진 수도 검침원들에게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농촌 지역의 경우 계량기가 수풀에 있다 보니 대부분이 여성으로 이루어진 수도 검침원들에게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나이가 지긋한 중년 남성이 있는 집에 검침을 갔다가 계량기에 있는 뱀을 보고 놀랐다. 집주인은 나를 달래주겠다면서 엉뚱하게 내 손을 주물렀다. 굉장히 불쾌했고 수치심을 느꼈다. 나뿐만이 아니다. 다른 동료는 허벅지를 만지는 피해를 받기도 했다. 대부분의 검침원들이 이런 불쾌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당진 수도검침원 A씨

[당진신문=최효진 기자] 수도검침원들에게 개물림 사고 위험은 일상이다. 농촌 지역의 경우 계량기가 수풀에 있다 보니 그 속에는 뱀이나 쥐 혹은 지네가 있는 경우도 다반사다.

계량기 근처에 있는 뱀. 계량기 속에 뱀이나 쥐 혹은 지네가 있는 경우도 다반사다.
계량기 근처에 있는 뱀. 계량기 속에 뱀이나 쥐 혹은 지네가 있는 경우도 다반사다.

대부분 여성인 검침원들은 단독으로 다니며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다보니 성추행 위협에도 항상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수도검침원들은 이런 피해를 당했다고 하더라도 말하지 못한다. 민원이 발생하면 그나마 있는 계약이 해지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진시 수도과는 지난 7월 민원이 발생하면 민원인과의 분쟁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수도검침원에게 전가하는 서약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감사법무담당관실에서 서약서를 강요할 수 없다고는 했지만, 대부분의 수도검침원은 이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당진시에서 근무하고 있는 수도검침원들이 불안정한 신분에서 시작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고통 받고 있다.

당진시로부터 업무를 개인 수탁 받아 상하수도 수도검침원(이하 수도검침원)으로 일하는 이는 23명이다. 이들은 상하수도의 계량기 검침업무, 수도계량기 정상 작동 여부, 고지서 교부 및 요금징수 독려, 누수 확인 업무 그리고 당진시의 요구 업무 등 계약서에 명시된 업무만 10가지를 수행한다.

개인사업자가 아닌 수도검침원들은 당진시와는 상가, 공단, 농촌 등으로 지역을 구분해 건당으로 계약을 한다. 이들이 관리하는 당진시 관내 계량기는 약 27,000전이다. 1인당 대략 한달 1,174전의 계량기를 검침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닌 이들은 4대 보험, 퇴직금, 연차휴가에서 배제되어 있어, 업무로 인해 부상을 당해도 특별한 조치를 받을 수도 없다. 오히려 업무를 수행하지 못할 경우 계약 해지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실제로 3년 전 당진시에서 수도검침원으로 일했던 B씨는 수치를 확인하기 위해 계량기 위에 쌓여 있는 물건들을 치우다 허리 디스크가 파열됐다. 한 달 넘게 일을 할 수 없던 B씨는 결국 업무를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수도검침원 C씨 역시 같은 이유로 어깨를 다쳤다. C씨는 다친 어깨 치료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업무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

수도 검침원들은 계량기 위에 쌓여 있는 물건들을 치우다 몸을 다치기도 하지만, 불안정한 신분때문에 치료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업무를 그만 둘 수밖에 없다.
수도 검침원들은 계량기 위에 쌓여 있는 물건들을 치우다 몸을 다치기도 하지만, 불안정한 신분때문에 치료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업무를 그만 둘 수밖에 없다.

수도검침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수면위로 떠오르자 국회는 이미 2015년 국회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당시 민변의 류하경 변호사는 당진시처럼 개인 위탁 계약을 맺고 있던 청주시에 대해 “검침원들이 독자성이나 독립성이 없고, 위탁 계약은 형식적·명목적”이라면서 “개인 위탁 계약은 도급을 위장한 근로계약으로 불법 여지가 있다”라고 비판했다.

즉 개인 위탁을 맡은 수도검침원들이 근로 계약 아래 보호 받아야 할 노동자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합리한 위탁 계약을 맺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런 지적을 받은 청주시는 결국 지난 2018년 수도검침원을 공무직으로 전환했다.

당진시의 수도검침원들 역시 공무직 전환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은옥 수도검침원은 “수도검침원들은 그 동안 아프고 다쳐도 계약 해지의 위험 때문에 침묵해 왔다. 하지만 우리의 업무는 상시·지속적인것으로 당진시가 관리해야 할 직접적 책임이 있다”면서 공무직 전환을 요구했다.

사실 수도검침원이 공무직 전환 대상인 것은 고용노동부의 최근 판단에서도 드러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7월 10일 공문을 통해 ‘비정규직 TF’ 관련 심층 논의 결과를 통보하고 “상하수도 검침은 1단계 전환 대상으로 조정됐으며 지난 2017년 가이드라인에 따라 재검토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대해 당진시에서는 “공문 내용을 파악했다. 주무부서에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실질적 근로 계약임에도 불구하고 개인 위탁 계약에 머물러 있는 수도검침원의 지위가 언제 회복될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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