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2008베이징패럴림픽에서 동메달을 수상함으로써 7회 연속 메달수상 기록을 달성한 ‘역도선수 정금종’(44, 당진 송악면 고대리)씨.


그런 영광을 얻기까지 그가 흘렸을 땀과 눈물이 보이는 듯 하다. 이제 역도선수에 마침표를 찍는다는 정금종씨. 7년 전 당진으로 내려오면서 장애인을 위한 작은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기자는 역도선수로서가 아닌 인간적 내면을 엿보고자 지난 24일 충남지체장애인협회 당진군지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이미 수차례 방송과 언론 등에서 보도된 바 있어, 그에 관련된 일반적인 내용은 다소 생략하기로 한다).
손하경 기자 sarang418@hanmail.net

▲ 베이징패럴림픽 동메달 리스트 정금종 (역도선수)
힘든 유년기를 희망으로 ‘인생대역전!’

보통의 사람들이 역도선수라면 쉽게 다가가기에 부담감이 있을 수도 있다. 거기에 장애인이라는 그릇된 고정관념이 덧붙여진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푸근한 인상과 편한 이웃집 아저씨와도 같은 인품의 그를 직접 만나보면 그런 관념이 금방 사라질 것이다.


그는 지체 1급의 장애인 역도선수이다. 그러나 그는 장애인이란 말을 뺀 순수한 ‘역도선수’라 불려지고 싶었다.
지금껏 ‘장애인’이라는 꼬리표는 늘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녔고, 그것이 그에게는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하고 극복해야 할 이유였고 목표였다.


겨우 두 돌을 넘긴 세 살배기 어린시절, 감기로 인한 고열로 소아마비 증상이 왔으나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변변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
그리하여 얻은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생활할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부모님까지 일찍 여의고 그야말로 고립무원이 되어, 이루 말할 수 없는 쓸쓸함과 힘겨운 유년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좌절감을 극복하고 희망과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7살 무렵, 처음 삼육재활원이란 시설에 맡겨지게 됐어요. 15년간 그곳에 있으면서 다양한 체육프로그램과 교육 등을 함께 받았지요. 그때 처음으로 운동을 접하게 됐고, 점점 흥미도 느꼈어요. 그런 와중에 선생님의 권유로 역도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지요.

저는 어린시절 어두운 환경으로 상당히 내성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고집도 셌고요(웃음). 하지만 운동을 하면서 성격이 밝아지고 긍정적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설에서 운동을 접하게 됐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의 훌륭한 역도선수로 거듭날 수 있었다. 또한 그 곳에서 다양한 직업교육도 받았다.


“직업교육도 받았는데 그 곳에서 금·은세공을 배웠어요. 또 시계수리도 해봤고요. 몸이 조금 불편할 뿐이지, 못할 게 없죠. 그러나 비장애인들은 그렇게 안보더군요. 무엇을 하든 ‘장애인인데 제대로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더욱 열심히 해서 뭔가 보여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보물 1호 ‘여우와 토끼들’

▲ 아내는 그에게 가정이라는 울타리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을 선물했다. (단란한 정금종 선수의 가족사진).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그 곳에서 역도에만 전념해왔다. 그러면서 틈틈이 정신지체장애인 시설에 봉사를 다니며 ‘다솜공동체’라는 장애인을 위한 작은쉼터를 마련하게 됐다.
서울에서 시작한 것이 7년 전 당진으로 내려오면서 송악면 고대리 등 3곳으로 확장, 운영하고 있으며 그 곳에서 다양한 재활과 체육프로그램을 통해 장애인의 사회적응을 돕고 그들에게 꿈을 안겨주고 있다.


그러던 중 지인을 통해 지금의 아내(42, 최영숙)를 만났고, 2년의 연애 끝에 96년도에 결혼을 하였다. 고아로 자라다시피 했던 그에게 아내는 처음으로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선물해 준 사람이다. 그의 아내는 두 딸을 돌보면서도 바쁜 틈을 내어 그와 함께 장애인을 위한 복지사업을 거들고 있다.


“남편을 처음 알게된 건 88년도였어요.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했지요. 남편을 만날 당시 술·담배를 전혀 하지 않더라고요. 그런 모습과 순수하고 건실한 모습이 보기좋았고, 결혼을 결심하게 됐지요”라며 남편에 대한 애정을 내비치며 잠시 옛 추억에 잠기는 듯했다.

장애인 후배들에게 영원한 스승 ‘정금종’

1984년 뉴욕패럴림픽을 시작으로 2008년 베이징패럴림픽에서 동메달을 차지해 패럴림픽 역도사상 최초 7회 연속 메달 달성에 성공한 정금종 선수. 오랜 세월 그가 닦아온 인고의 노력이 가져다 준 값진 영광의 결실이다.


이제 역도선수로서의 마침표를 찍어 더 이상 올림픽 무대에서 볼 수 없게 된 그. 앞으로 후배들을 돕고 싶다는 그가 마지막 올림픽에서 획득한 동메달의 기억은 다른 이들에게 아쉬움으로 길이 남겨질 것이다.


“30년 가까이 역도를 해오면서 이런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주위 분들의 도움이 컸던 때문입니다. 역도는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끈기가 필요해요. 특히 체중조절 하기가 힘들더군요. 단식, 사우나, 운동 등을 해서 체중조절을 했었지요. 이제 저의 모든 것을 후배들에게 나눠주며 더욱 힘쓰고 싶습니다.

흔히 장애인들을 ‘불쌍한 존재, 도움이 필요한 불우이웃’ 정도로 여깁니다. 장애인들 역시 폐쇄적인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아 부정적인 사고를 갖고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도움만 받는 존재가 아니라고 단호히 말하고 싶습니다. 오히려 장애인들은 도움을 받는 것보다는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어하며, 저 또한 그렇습니다”

“장애인들은 독립된 체육시설공간을 원합니다”

그는 서울시 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을 맡아 몸이 둘이라도 바쁜 일정 때문에 당진에 있는 가족을 자주 볼 수 없는 미안한 마음을 내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가 장애인 체육행사 활성화에 쏟는 열의는 식을 줄을 모른다.


“장애인들에게 운동을 통해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주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그나마 인식이 많이 좋아진 편이지만, 장애인들이 운동을 한다는 것은 무시 당하기 일쑤였지요.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무슨 운동을 하냐’는 비난을 받아야 하고, 열악한 체육시설로 마음놓고 연습할 공간도 없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연습에 임할 수 있는 독립된 체육시설공간이 필요합니다. 장애인들이 마음만 먹으면 못 할 스포츠는 없습니다. 다만 시선이 문제이지요. 앞으로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스포츠 종목을 개발해 후배들에게 가르치고 싶습니다”


그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들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전에 멋모르고 패러글라이딩을 해본적이 있어요. 한번으로 끝났지만(웃음). 앞으로 번지점프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불혹의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만큼 스포츠에 대한 그의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싸인까지 받는 영광을 얻은 그와의 인터뷰는 참으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 정금종 선수의 든든한 후원자인 김평호 회장과 임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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