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신문=배길령 기자] 우리는 참 표현에 서투르다. 남을 칭찬하는 일에 인색하고 타이밍을 놓쳐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입 간지러워 참을 수 없는 착한 당진 사람들의 선행이 보인다. 내 고장 당진에 살고 있는 좋은 분들을 알게 된 이상 지나칠 수 없다. 이에 본지는 입 간지러워 참을 수 없는 착한 당진 사람들의 선행을 칭찬해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올 5월부터 신평면행정복지센터 복지팀으로 쌀 10포대씩을 기부해주고 계세요. 기부해주시는 물품은 공동모금회 후원물품으로 관내수급자 및 저소득층 분들에게 전달되고 있고, 기한 없이 계속 전달하시겠다고 하셔서 최근에는 가장 많이 기부를 해주시는 고마운 분이시죠. 매달 1일에 10포대씩이면 1년만 해도 100포대를 넘으니까요” (신평면행정복지센터 복지팀 송혜수 주무관)

최혜경 씨(56)의 한 달은 쌀(10kg) 5포대를 운정리 이장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또 그녀는 매달 1일 면사무소 복지팀으로 쌀 10포대씩을 전달해 어려운 이웃 가정을 돕고 있다.

올해부터 쌀 전달을 주기적으로 시작한 혜경 씨가 당진에 온지는 9년째다. 원래는 안양에서 살다가 남편과 함께 당진에 터를 잡았다. 안양에 살던 때에도 혜경 씨는 리어카를 끌면서 생활하는 어려운 분들 또는 독거노인, 양로원, 고아원 등에 몰래 쌀을 가져다 놓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분들을 보면 돕고 싶고 그랬거든요. 제가 걷고 있는 길에는 공양미가 늘 있으니까 좋은 일에 쓰였으면 했어요”

혜경 씨가 전달하는 쌀은 공양미다. 사실 그녀는 무속인의 길을 19년째 걸어오고 있지만 평범한 가정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어머니로 살았던 그녀에게 이 길은 피하고 싶은 길이었다.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교회며 절을 다니면서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어요. 어릴 때 집 근처에 군인교회가 있었거든요? 처음에는 나눠주는 별사탕이 좋아서 갔다가 성인이 되어서까지 교회를 다녔어요. 제가 어릴 때 교회를 가니까 아버지는 그저 계속 다니라고만 하셨어요. 아마도 미리 알고 계셨던 거 같아요. 그래서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제가 교회를 계속 다니셨으면 바라셨고요”    

혜경 씨의 아버지는 20년 전, 11년간 병을 앓다가 돌아가셨다. 귀여운 막내딸이 힘든 길을 가길 원치 않으셨던 아버지는 혜경 씨의 보살핌 속에서 세상을 떠났고 무속인이었던 할머니가 남긴 ‘넷째아들의 넷째아이가 물려받는다’는 유언대로 그녀에게 이어졌다.

“아버지는 다리가 썩는 병으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으셨고 또 중풍까지 앓으셨어요. 아버지 가까이 집을 지내면서 대소변이며 목욕, 식사도 제가 챙겼으니까... 저를 조금만 못 봐도 아버지가 울면서 전화가 올 정도였어요. 막내딸이니까 일부러 애교로 뽀뽀도 해드리고, 수염도 깎아드리고 아버지가 남기신 밥을 먹기도 하면서 아버지가 평범하게 행복하셨으면 했거든요”

아버지를 돌보면서 혜경 씨는 몸이 불편하거나 홀로 지내시는 어르신들을 생각하는 일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눌 수 있으면 나누는 것이고 삶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사실 아침에 눈뜬 순간부터 감사할 일뿐이잖아요. 평범한 사람들이 맞이하는 일상의 아침이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이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매일 맞이하는 아침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태어난 그 순간부터 누구나 소중하고 또 귀한존재니까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어려운 분들에게 기운이,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계속 나눌 수 있는 것은 나누려고요”

혜경 씨는 가을이면 어르신들 몸보신용으로 쇠머리를 나눠주고 때때로 마을회관으로 과일, 떡, 고기 등을 나누는 좋은 이웃이다. 고향은 가평이지만 마지막 고향은 당진이라는 혜경 씨. 당진에서 지내는 동안은 어려운 이웃을 위한 쌀 전달은 계속 된다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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