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연 당진시의원

조상연 당진시의원
조상연 당진시의원

[당진신문=조상연 시의원]

당진시 주민자치 정책박람회가 지난 23일부터 이틀간 개최됐다. 읍면 단위에서 필요한 사업을 결정하기 위해 주민자치회를 구성하고 그 활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정책을 자랑하는 자리였다.

이런 박람회가 개최됐다는 것은 주민이 스스로 필요한 사업의 우선순위까지 정해서 집행부와 의회에 요구하는 시대임을 웅변한다. 이제 주민들은 주민참여예산제와 결합되어 사업은 물론 사업예산까지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사실 민주주의의 사업결정권은 최종적으로 당진시가 가지고, 관련된 각종 단체와 협의하는 일종의 ‘거버넌스 민주주의’ 단계였다. 하지만 이제는 사업결정권은 당진시가 가지고 있기는 하나 단체가 아닌 개별 시민들의 논의를 통해서 사업을 정하고 예산을 요구하는 단계까지 성숙됐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최종결정권이 당진시 혹은 시의회가 가지고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의제 설정권’ 역시 그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주민자치회와 주민참여예산제가 활발히 작동한다고 하더라도 집행부와 의회가 의제를 쥐고 최종결정권을 남용한다면 시민들은 여전히 의견을 보태는 정도에 머무를 것이다.

우리는 정책결정과정에 주민들의 참여와 토론을 통한 공감과 합의를 실현함으로써 의사결정의 정당성을 높이는 민주주의 형태인 숙의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결정, 거버넌스, 참여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로 진행되지 않는다. 모든 의제를 전체 시민의 의견을 물어서 결정하는 것이 유리한 것도 아니듯이 정무적 판단이라는 행정부 수장의 결정,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결정하는 거버넌스적 결정, 참여를 통한 의제의 설정과 결정, 그리고 숙의 공론장을 통한 결정 등 모든 것은 사안에 따라 다르게 사용된다.

참여민주주의인 여론조사나 투표에 의한 결정은 ‘선호’에 따라 ‘전체의사’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항상 최선의 결정일 수는 없다. 오히려 이익집단의 적극적인 참여로 인해 민의가 왜곡되고 극단주의자들의 매력적인 발언 때문에 포퓰리즘적 결정을 내리기 쉽다. 그러므로 일부 의제에 대해서는 시민들이 직접 의제를 제안하고 숙의(熟議)를 통한 결정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최근 대표적인 숙의 과정으로 ‘신고리 5.6 호기 공론화’와 인근 ‘서산의 폐기물처리장에 관한 공론화’ 등이 있었다. 선호도 조사나 전문가들의 일방적인 결정 그리고 정무적 판단 때문에 빚어지는 지역사회의 갈등을 잠재우고 최소한의 합의를 이룰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주권재민을 실현하면서도 깊은 공부와 상호토론을 통해 전체 참가자들의 합의를 이룸으로써 결정의 내용이 가장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수 있다. 숙의를 통해서 시민 내부의 갈등이 조절되고, 시민들의 책무성이 증진되어 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혹자들은 결정의 신속성과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들이란 이유를 들어서 반대를 하지만 사실 잘못된 결정 또는 동의하지 않는 구성원의 비토로 인해서 실행이 늦어지는 것에 비하면 차라리 충분한 시간을 들인 숙의 결정이 빠른 실행을 담보한다.

숙의제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대의제를 무력화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참여의 결핍으로 이성적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가 없는 대의민주주의 아래에서 이익집단의 영향력 확대로 인해 우리의 민주주의는 근본부터 위협당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의회가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익관계가 극명할 경우에는 결정은 연기되고,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만든다. 이런 경우 더욱더 정치적 결정을 하기 어려워진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시민의 삶은 피폐해지고 피해는 시민들이 감내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와 의회가 해결하기 어려운 도시개발, 환경, 치안, 사회문제들에 대한 결정권을 시민참여기구에 위임하여야 한다. 시민은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결정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당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