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샘 호천웅

솔샘 호천웅
솔샘 호천웅

[당진신문=호천웅]

식당 앞을 지나다가 낯설지 않은 모습을 얼핏 봤다. 저 분이 웬 일로? 내가 잘못 봤나? 식당 안을 다시 들여다봤다. 앞치마를 두르고 일하는 모습은 이웃집 할머니가 분명했다.

어! 교회 권사님이 아닌가? 믿음이 깊고 은혜롭고 자상한 상담으로 인기가 많은 분인데... 이른바 일류학교를 다녔고, 신학교도 졸업했고, 결혼도 잘했고...

그런데 오늘은 영 달리 보인다. 바쁘게 움직이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 아들이나 딸네 식당인가? 잠깐 일을 돕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식당 안은 무척 바빠 보였다. 못 본 척, 지나치는 것이 예의다 싶었으나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다. 몸에 찌든 호기심 탓에 만나기로 했다. 얘기를 나누기로 작심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너무 바쁜 모습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근처 다른 식당에서 혼자 점심을 때우며 시간을 보냈다. 바쁜 시간이 지났다 싶을 때 쯤, 식당으로 들어갔다.

“어머! 집사님, 웬일이세요.”

날 보고 놀라는 권사님에게 “아니 권사님은 웬일이세요?” 라고 되물었다. 그리고 “혹시 아드님이나 따님 식당인가요?” 라고 또 물었다.

할머니, 권사님은 밝은 미소 그대로 말했다. “아니에요 저 여기서 점심시간에 알바하고 있습니다. 한 달이 돼 갑니다.” “권사님은 부자시잖아요. 자녀들도 다 잘 자리 잡으셨구요.” “아니, 집사님도 그것들과 제 알바하고 무슨 상관이예요. 참!”

그리고 할머니는 차분하게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나이도 있고 몸도 전 같지가 않아서 교회 상담일을 그만두기로 했다고 했다. 그러나 뭔가 허전했다. 그러면서 옛날 젊었을 때 들은 어떤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났다. “몸이 아프면 움직이세요. 일을 하세요. 몸으로 때우세요. 봉사하세요.” 그래서 자신을 시험하기로 했고 알바를 하고 있는데 좋다고 했다. 용돈 쓰기도 좀 편해졌고, 교회 헌금도 더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할머니 권사님의 말을 들으면서 역시 멋진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잡지에서 읽은 의학 박사 박 모 교수의 글이 떠올랐다.

[칠순의 박 교수는 구순의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늘 어머니를 시켜먹는다고 했다. 밥 차려 주세요. 청소 좀 하세요. 빨래하세요. 등 등... 구순의 어머니께서 백세를 누리시라는 자신의 효도 방법이라고 했다]

건강하려면 열심히 일하고 운동해야 한다는 교훈을 들려주는 말이다. 할머니는 이어 고3이라는 자신의 손자 얘기도 들려주었다. 머리는 좋은데 맨날 놀기를 좋아한단다. 그 손자의 희망은 편하게 잘 사는 것이라고 했다.

쉽고 편하게 잘 살겠다는 손자가 가난해지고 어려운 삶을 살까봐 걱정이 되지만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시고  바른 생각, 열심히 일하는 생활의 가치를 느끼게 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한다고 하셨다. 할머니 권사의 이야기를 듣고  얼마 전에 TV에서 본 어느 집 얘기가 생각났다.

[어머니가 실수로 오만원 짜리 11장을 파쇄기에 넣고 돌렸다. 아차, 싶어 파쇄기를 세우고 보니 오십 오만원이 종이 조각이 돼 버린 것이었다. 큰일을 냈구나 싶어, 은행을 찾아 하소연하니 칠십인가 팔십 퍼센트를 붙어 오면 현금으로 상환해 주겠다 했다. 파쇄된 돈을 붙이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딸은 한나절 인가 하루를 거들더니 모르겠다고 나가 버렸고 어머니는 어깨에 파스를 붙여가며 며칠을 고생해서 모아붙인 돈 조각들을 은행으로 가져갔더니, 대단하시다며 55만원을 새 돈으로 내주었다고 했다. 딸은 금방 포기했으나 어머니는  끈질긴 노력 끝에  휴지가 될 뻔한 55만원을 찾았던 것이다]

이 두 가지 사례에서 공통적인 문제를 볼 수 있다. 손자나 젊은 딸은 어려운 것은 피하고,  편하고 좋은 것을 좇는 다는 것이다. 게으르고 편하게 돈을 벌고 부자가 되고 편하게 산다는 일은, 가설 자체도 애초부터 생각지 말아야 할 일인데 말이다.

건강도 돈도 모두 열심히 움직이고, 일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철리는 이미 사람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은 일하지 않으면 밥도 먹지 말라고 하셨다. 식당 알바에 나선 할머니 권사님, 정말 멋지십니다. 힘써 열심히 일하고 그 열매를 거두는 사람들이 복 받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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