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마음으로 그린 어머니...“한번은 꼭 만나고 싶습니다”
20년간 마음으로 그린 어머니...“한번은 꼭 만나고 싶습니다”
  • 배길령 기자
  • 승인 2019.07.27 06:00
  • 호수 12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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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후 기억 흐려진 유영진 씨의 어머지 찾기 프로젝트
스스로의 사진 한 장, 가족사진, 어머니 사진도 없어
초등학교 졸업 뒤로 어머니 ‘김종순’ 씨와 같이 씨앗장사 하기도
묘금도 유(劉)씨, 아버지는 유백만 씨
자세가 틀어져 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영진 씨는 어머니가 꼭 연락해주기를 기다린다.
자세가 틀어져 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영진 씨는 어머니가 꼭 연락해주기를 기다린다.

“엄마가 보고 싶은데 생각이 잘 안나요...한번 꼭 만나고 싶습니다”

[당진신문=배길령 기자] 유영진 씨가 기억하는 것은 많지 않다. 사고 후에는 기억도 차츰 흐려지고, 튼튼했던 몸도 사고후유증으로 망가져 영진 씨는 두 다리로 걷지 못한다. 어쩌면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 늦었는지도 모르겠다며 그는 좀 더 건강하고 젊었을 때, 부러 찾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어린 유영진(56)씨는 예산군 삽교읍 두리1구라는 동네에서 살았다. 3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는 영진 씨는 지난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어머니를 마음속으로 그려보고 있다.

“보고 싶은데 생각이 잘 안나요. 얼굴은 생각이 납니다. 엄마가 무얼 좋아했는지, 무슨 말을 자주 했는지... 보고 싶다는 마음은 있는데 엄마에 대해서는 생각이 안 나요”

영진 씨 기억속의 어머니는 올해 일흔다섯 정도 되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덕산과 고덕, 예산, 홍성의 장으로 씨앗장사를 다녔다. 영진 씨가 10살의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스스로 다섯 아이를 키워내야 했기 때문에 기억속의 어머니는 아마 먹고 사는 게 가장 힘들었을 거라고 그는 말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한동안은 엄마랑 같이 씨앗장사를 다녔던 거 같아요. 형들이 있었는지 누나가 같이 갔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엄마는 있었어요”

그는 3,4년 전 교통사고로 기억이 드문드문 난다고 했다. 먹고 사는 게 힘들어 어느 날 자신의 의지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서울의 한 봉제공장으로 돈을 벌기위해 떠났고 1997년 IMF때 일을 그만뒀다.

일을 그만 둔 뒤로는 중국집에서 배달을 하거나 서산 팔봉산 어송리 언저리에서 농사를 짓기도 했다. 당진으로 와서는 공사장 현장인부로 일하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그렇게 여기저기를 떠돌았다는 그는 스스로의 사진 한 장도, 가족의 사진도, 어머니의 사진도 없다고 했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다 잃어버렸는지 사진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도 공장 다닐 때 몇 번은 집이랑 연락을 주고받고 왕래도 있었는데, 언제였던가...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언제부턴가 엄마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된 건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영진 씨는 현재 홀로 당진에 거주하고 있다. 위로 형이 둘이고 누나는 몇 해 전 세상을 떠났다. 밑으로 여동생이 하나있었는데 영진 씨는 형제 누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 유일하게 연락을 하고 지냈던 누나가 세상을 떠나면서 영진 씨는 홀로 남겨졌다. 동사무소에서도 나서서 찾아봐주겠다고 떼어본 부모님의 소식은 양친 사망을 알렸지만 어머니의 이름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어머니랑 연락이 안 돼도 형편이 좋지 않으니까 일부러 찾지도 않았어요. 서로한테 짐만 지우는 건 아닌가 싶고... 근데 이제는 어머니가 잘 살고 계신건지... 궁금해요. 그냥 잘 계신지만... 예전의 모습과 지금이 많이 달라졌지만 어머니는 나를 알아볼 수 있을 거에요. 같이 안 살아도 돼요. 그러니까 한번은 꼭 만나고 싶어요...”

유영진 씨가 찾는 어머니의 존함은 김종순이다. 영진 씨는 기억나는 대로 전달하기 위해 애썼다. 스스로를 묘금도 유(劉)씨라고 얘기하며 아버지 존함은 유백만이고 어머니가 부여에서 살고 있다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 소식이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전하는 그의 눈가가 자리를 뜨는 순간까지 촉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