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물 시장 한쪽 귀퉁이에 두 평 남짓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한 할머니...
애달픈 눈빛으로 사람들을 쳐다본다.
사람 구경하기 힘들다는 할머니의 말씀처럼 시장길은 썰렁하기만 했다.
할머니의 눈으로, 귀로, 입으로 아련한 ‘시장의 추억’을 떠올려 본다.
손하경 기자 sarang418@hanmail.net




“이래 뵈도 간판 있는 집!”

‘탑동수산’이란 작은 간판을 뒤로 몇 가지 수산물이 놓여져 있다. 수산물이라 해봤자 오징어, 생선, 대하, 어패류가 전부였다.
하지만 여든한살 할머니(한득선. 81)에게는 작지만 소중한 추억이 담겨진 삶의 터전이다.
스물 셋 곱디고운 나이에 시집와 2남 1녀의 자녀를 두고, 할아버지와 함께 시작하게 된 것이 벌써 50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할머니 옆에는 할아버지가 안계셨다.
“작년 구정 전까지만 해도 우리 영감이랑 같이 앉아서 했는데 이젠 나혼자 해” 할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기자의 마음이 짠해진다.


평소 기관지가 안 좋았다던 할아버지는 노환이 겹치면서 여든셋이 되던 해, 그것도 설 아침에 다시 오지 않을 먼 길을 떠나셨다고 한다. 명절 때가 돌아오면 할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더욱 쓸쓸해 진다고 한다.


가난하고 힘겨웠던 시절, 간판도 없이 시작한 장사였지만 얼마 후에 할아버지와 함께 내 걸었던 ‘탑동수산’이란 간판은, 그 시절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이제 할머니에게는 둘도 없이 소중한 보물이 되어있다.
할머니의 말 곳곳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할머니의 유일한 낙(樂)”

이제는 손자·손녀의 재롱을 보며 편히 쉬실 만도 하지만 이곳을 떠나기 싫다고 한다.
“영감 죽고 두 달간은 아들네 있었어. 근데 답답해서 다시 내려왔지.” 할머니는 탑동리에 할아버지와 함께 마련했던 조그만 보금자리가 있다.


혼자 생활하는 것이 쓸쓸할 법도 하지만, 공기좋은 시골에서 잘되든 못되든 이렇게라도 장사하며 사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고 한다. 가끔씩 아들내외와 딸이 김치며 밑반찬을 해놓고 가서 반찬 걱정은 안한다는 할머니.


불편한 다리 때문에 매일 택시를 타고, 하루 6,000원씩을 들이면서까지 장사를 하시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집에서 놀면 몸도 더 아프고, 이렇게라도 움직여야 덜 아프지. 또 여기 나와서 같이 장사하는 사람들끼리 얘기도 하고 좋아. 근디 이제는 친구들도 다 죽고 나 혼자여서...” 할머니 얼굴에는 쓸쓸한 그늘이 드리운다.

“사람이 줄었어요! 다 어디로 갔길래...”

추석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사람 구경하기도 힘들고, 하루 3만원 벌기도 힘들다고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렇진 않았는디 올해는 장사가 더 안돼. 요즘 젊은 사람들이 편하게 마트가서 사지, 이런데서 사려고 하겠어. 앞으로 마트는 자꾸 생겨나고 걱정이여. 나야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여기서 장사하는 젊은 사람들이 걱정이지.”라며 다른 사람들을 더 걱정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곱기만 하다.


사람이 지나가기라도 하면 ‘이것 좀 사라’며 관심을 끌어보려 애를 쓰지만 할머니는 아무관심도 끌지 못하고 그냥 보내기 일쑤다.


아침 9시쯤 나와서 저녁 7시까지 장사를 하신다는 할머니는 하루종일 수산물 손질을 하다 점심때가 되면 자식들이 갖다준 밑반찬을 가져와 점심밥을 드신다. 할아버지가 계셨을 때만 해도 밥을 직접 지어 드셨다고 한다.


평소 다리가 불편했던 할머니를 위해 할아버지는 식사준비를 도맡아 하셨다고 한다.
할머니를 늘 챙기시던 자상하셨던 분이었기에 더욱 생각이 난다고 한다.


“그래도 영감이랑 여기서 장사했을 때가 제일 행복했지... 이제 나 혼자라도 이 자리에서 죽을 때까지 장사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치매나 안걸리면 좋겠는데 걱정이여...”라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그렇게 장사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아침에 해놓았던 밥을 저녁으로 드시고, 텔레비전을 보시며 그제서야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그러다 잠이 들면 어김없이 아침이 찾아올 것이고 또다시 할머니의 일상이 시작되겠지...

“흔히 볼 수 없는 풍경들...”

할머니와 이야기가 끝날 무렵, 대야에 들어 있던 바지락이 물을 뿜어냈다. 마침 가진 돈이 별로 없어 그 만큼만 달라고 했더니 정해진 가격보다 더 담아주신다.
물건을 더 얹어주고, 값을 깎고 하는 풍경들은 아마도 재래시장이 아니면 흔히 접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바쁜 일상으로 현대인들은 ‘빠른 것’, ‘편한 것’을 추구해 오며 언제부터인지 푸근하고 정겨운 그런 추억들을 잊고 사는 것 같다.


가끔은 아이들 손을 잡고 재래시장에 나가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그곳에서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은 분명 무언가 느낄 것이고 배워갈 것이다.


비싼 돈을 들인 교육보다도 우리나라 전통이 깃들어 있는 재래시장에서 산 교육을 시켜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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