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샘 호천웅

솔샘 호천웅
솔샘 호천웅

[당진신문=호천웅]

해가 다르게 우거진 집 뒷산에 고사목 한 그루가 삐죽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말라 죽어서 희고 갈색이된 고사목이 초록의 향연에 재를 뿌리는 거 같았다. 보기 흉했다. 잘라 버릴까? 톱만 들고 올라가서 십여분 땀 흘리면 처리가 가능한 일이다.

잠깐 딴 곳, 먼 곳 산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어! 저놈은 매가 아닌가? 잠깐 사이, 집 뒷산의 고사목 꼭대기에 매 한마리가 폼을 재고 앉아 있다. 아주 멋진 모습이다. 작은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는다. 주변을 살펴보는 눈매가 날카로운 것 같다. 작은 매 한 마리가 죽은 고사목의 멋을 살리고 주변 경관을 경이롭게 장식하는 것이었다. 한참을, 그 매가 어디론가 날아 갈때까지 계속 지켜봤다. 그리고 몇 해 전에 남아프리카의 국립공원 크루거에서 봤던 고사목들을 떠올렸다. 띄엄 띄엄 눈길을 끌었던 커다란 고사목들, 그리고 그 고사목 위쪽 끝에 앉아 먹이를 노리던 맹금류들의 모습들... 집 뒤에 사는 작은 매와 아프리카의 사파리에서 본 커다란 맹금류들은 어디가 다르고 무엇이 같은 걸까?

70년대 어느해의 6월 어느날, 양구 지역의 전적지인 피의 능선에 갔었다. 피의 능선에서 젊은 기자가 만난것은 이 모양 저 모양의 많은 고사목들이었다. 고사목, 그들 고사목 꼭대기에서 그 흔한 독수리 한마리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기억에 담지 아니했을뿐 일수도 있다. 기억으로는 오직 적막 만이 취재진들을 맞았었다. 그리고 포탄에 맞은 듯이 옆으로 쓸어져 누운 고사목을 타고 넘었던 기억이 새롭다.

한낱 작은 고사목에 작은 매 한마리가 앉으니 온산에 멋진 낭만이 흘렀고, 아프리카의 고사목들은 맹금류들의 먹이사슬을 만들어 주며 생태계를 살리고 있었다. 한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피의 능선의 저 고사목들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가? 포연의 고통을 겪고 숱한 젊은 이들의 죽음을 지켜본 그 고사목들은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싶어할까?

날아간 집 뒷산의 작은 매는 한번 더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저 고사목을 다시는 찾지 않는 가 보다. 말라 죽은 작은 고사목을 보며 초라한 고사목이 푸른 산의 멋을 살리는 귀한 보물이 될 수도 있다는 꿈같은 생각에 잠긴다.  그 매를 부를 방법도 모르고, 찾아 볼 지혜도 없기에 그 작은 매가 그 고사목을 찾아 주기를 기원할 뿐이다.

집 뒤 산에 왔던 작은 매야! 넌 지금 어디 있느냐? 그리고 고사목들아! 너희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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