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은(나루, 당진수필회원)

박성은(나루, 당진수필회원)
박성은(나루, 당진수필회원)

[당진신문=박성은]

당진에 온지 8년이 지났다. 이사 왔을 때는 수선화가 한창이던 봄이었다. 여기 저기 꽃들이 피어나고 봄을 노래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사람들과의 어울림이 그리웠다. 낯선 곳에서의 생활은 여간 어설픈게 아니었다.

마음 붙일 곳을 찾다가 천변 벚꽃 길을 알게 되었는데 무척 정감이 가는 길이였다. 천변 벚꽃 길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늘어 선 벚나무들의 모습에서 잔잔한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먼 곳으로 시선을 주며 걷고 있노라면 늘어선 벚나무와 제방 옆 초록으로 피어나는 들풀들의 어우러짐이 한 폭의 수채화가 된다.

벚나무 사이에 작은 개울물 흐르고 비라도 오면 흐르는 물소리는 음악처럼 들린다. 물소리는 듣는 기분에 따라 경쾌하기도 하고 속삭이듯 들리기도 한다. 흐르며 벚꽃에게 말 건네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한 곳에서만 있으면 지루할 것 같다고 하며 유유히 흘러간다. 흘러 흘러가는 동안 여기 저기 구경도하며 많은 꽃들과 다른 나무들도 만날 수 있음이 즐겁다고 한다.

벚나무 답하거늘 한 곳에서 오래 있으면서 주변의 풍경들과 아름답게 어울리며 지내는 것도 행복한 일이라 한다. 당진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내게 들려주는 개울물 소리와 벚나무의 속삭임은 인연 따라 찾아온 당진에서의 생활을 유연하게 해주었다.

개울물에는 이따금 천둥오리 가족이 물놀이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서너 마리가 줄지어 놀다가 발자국 소리가 컸는지 푸드득 날아가 버린다. 무엇이 무서워 날아갔을까. 지금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듯 나도 현실을 날아가고픈 마음은 같지 않았을까.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어두워지는 저녁 무렵의 벚꽃 길을 걸으면 그림자처럼 마음에 연정이 쌓인다. 하루를 보내며 아쉬웠던 일들, 아무 생각 없이 마냥 그리워지는 것들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가며 걷는 벚꽃 길은 내게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 해 여름, 오란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장화를 신고, 매화교 까지 한참을 걸었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마음을 두드리는 소리가 멋진 해후를 하는 시간을 갖게 된 소중한 하루였다.

그 날 이후 어떤 일이나 연유가 생기면 벚꽃 길을 걸으며 자신과 대화하는 산책길이 되었다. 당진이란 낯선 도시는 그렇게 마음에 다가왔다. 하루하루 보내는 시간이 한결 다정하게 느껴졌다.

 봄이면 화사한 모습으로 찾아와 가슴 가득 행복함을 심어주고, 희망으로 설레게 하며 삶의 조명을 밝혀주던 벚꽃은 나의 연인이 되었다. 벚꽃의 마음속을 걸어보고 싶었다. 아름답고 화사한 꽃모습에 취해 고달픈 현실을 숨고 싶었다. 벚꽃은 그저 환하게 웃으라고만 한다. 산다는 것은 꽃을 피우는 일이라며, 꽃 피우기 위한 모든 과정은 단지 과정일 뿐, 어여쁜 꽃으로 피어나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라고 속삭인다. 벚꽃 길에 정감이 드는 징검다리를 건너 반대편의 길로 건너 갈 수도 있다.

야트막한 징검다리를 건널 때는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처럼 마음이 순수해지기도 한다. 마음을 건너가는 길은 어떻게 가는 것일까. 정다워 보이는 그대들 모습에서 성역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의 마음속을 걸어서 걸어서 가보았으면...

걸어서도 갈 수 없고, 도달할 수 없는 마음의 갈은 벚꽃 길 위에 흩어진다. 천변의 신선한 바람결에 평온함을 만나고 행복함을 건져내는 일은 늘 나의 몫이거늘 아름답고, 즐겁고, 보람되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벚꽃 길에서 깨닫는다.

오늘도 당진 천변을 걸으며 삶의 유연함을 배우고, 삶의 감정을 고르며 활력을 얻는 치유의 길이 되는 벚꽃 길에서 내일 또 내일의 꿈을 키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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