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준 당진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유종준 당진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유종준 당진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당진신문=유종준]

대마불사(大馬不死). 바둑에서 ‘큰집은 결국 살길이 생겨 쉽게 죽지 않는다’는 이 용어는 ‘큰 기업은 좀처럼 망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흔히 사용된다. 영어로 ‘Too Big To Fail’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른 나라에서도 통용된다.

바둑용어에서 비롯된 이 사자성어에는 대기업의 경우 덩치가 너무 커서 무너질 경우 경제전체로 위기가 파급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온갖 구제책을 마련해 망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사회적 개념이 깔려 있다.

문제는 이런 기업들이 ‘내 덩치가 너무 커서 자칫 잘못 되더라도 국가에서 구제금융 대상으로 반드시 삼고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 이런 확신을 하게 되면 일단 어디에 투자하든 별 고민 없이 투자할 수 있으므로 리스크에 대한 부담을 가지지 않게 된다. 우리나라의 IMF사태나 미국의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등에도 이러한 ‘대마불사’의 신화가 한 몫을 했다.

대기오염물질을 저감장치를 거치지 않은 채 긴급밸브로 배출한 현대제철에 대해 충청남도가 대기환경보전법 위반으로 조업정지 10일의 행정처분을 하자 당사자뿐만 아니라 철강업계 등에서 함께 반발하고 있는 모양이다.

현대제철은 한국철강협회 등을 통해 충청남도의 조업정지 처분이 미칠 경제적 손실이 막심하다며 행정처분 철회를 요구하는 여론몰이를 진행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일부 언론에서는 제철소가 문 닫게 돼 8천억원의 손실이 발생하게 됐다며 환경단체를 비난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극우성향의 유튜버들은 관련 내용을 공유하며 전국의 환경단체에 악성 민원전화를 걸고 있는 현실이다.

그 동안 현대제철과 포스코 등 고로제철소를 운영하고 있는 기업들이 대기오염물질을 함부로 배출할 수 있었던 것에는 현행 대기환경보전법에 오염물질을 무단 배출했을 경우 처벌이 1, 2차 조업정지, 3차 시설폐쇄로 강력하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큰 역할을 했다. 대기오염물질을 무단으로 배출하더라도 설마 고로를 중단시키겠느냐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맹신하기 때문이다.

대마불사의 신화는 해당 기업의 잘못을 정정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앤다. 만약 조업정지로 인한 사태를 우려해 또 다시 그냥 유야무야 넘어갈 경우 현대제철은 또 다시 대기오염물질 무단 배출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물론 조업정지 10일의 행정처분이 내려지더라도 현대제철에서 행정소송으로 끌고 가 또 다시 법원에서 기업편향적인 판결을 내릴 것이라는 사실은 필자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경종을 울리지 않으면 대기오염물질 배출 전국 1위라는 당진의 불명예스런 타이틀을 벗기는 어려워진다.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브리더를 통한 배출이 불가피하다고 해도 최소한 지켜야 할 것도 현대제철은 지키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정기수리 때마다 브리더를 통해 고로가스를 배출해야 한다면 당연히 배출시설로 신고하고 배출부과금을 물었어야 한다. 지금껏 아무 말 없이 몰래 배출하다가 적발되고 나서 부당하다고 강변하는 것은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또한 충남도의 조업정지 조치에 대해 경제가 망한다고 선동하는데 지금까지 관련 규정을 개정해 달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무슨 생떼인가. 마치 반칙으로 퇴장명령을 받은 선수가 규정이 잘못됐다고 우기는 경우다. 규정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경기 시작 전에 문제를 제기했어야 한다.

법을 위반하고 잘못을 했으면 우선 사과부터 하고 용서를 빈 다음 선처를 구하는 게 순서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여 온 현대제철의 태도는 적반하장에 다름 아니다.

물론 지난 11일 사장 명의로 공식 사과문이 발표됐다. 하지만 지난 4월 현대제철의 대기오염물질 배출 전국 1위로 시작한 이후 2달 만이다.

현대제철은 고로 브리더 문제로 인한 조업정지 처분으로 심각성을 느끼고 사과까지 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하지만 우리 당진시민들에게는 현대제철에서 뿜어져 나오는 각종 오염물질에 대한 깊은 우려는 이미 마음속에 자리 잡은 오래된 진실이다.

이제라도 현대제철은 대기오염물질 저감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수립하고 지역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 길만이 현대제철이 사과의 진정성을 보이는 길이며 지역과 상생하는 길이다. 현대제철의 전향적인 자세 변화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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