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하게 마주하는 죽음... 무섭기보다 마지막을 지켜드릴 수 있어 다행”

[당진신문=배길령 기자] 우리는 참 표현에 서투르다. 남을 칭찬하는 일에 인색하고 타이밍을 놓쳐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입 간지러워 참을 수 없는 착한 당진 사람들의 선행이 보인다. 내 고장 당진에 살고 있는 좋은 분들을 알게 된 이상 지나칠 수 없다. 이에 본지는 입 간지러워 참을 수 없는 착한 당진 사람들의 선행을 칭찬해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이순옥 씨의 하루는 아침 4시 반에 남편과 이른 아침을 챙겨먹으면서 시작한다. 6시가 되면 치매를 앓고 계신 어르신 댁으로 이른 출근을 해 아침을 챙겨드린다. 9시가 되면 또 다른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댁으로 옮겨 집안 곳곳을 살펴드리고 오후 1시부터 5시까지는 뇌경색으로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은영씨네를 방문해 재활운동을 돕는다.

경북 예천이 고향인 이순옥 씨(63)는 18년 전 남편의 고향인 당진으로 와 2004년부터 15년째 요양보호사로 일을 해오고 있다. 순옥 씨가 처음 일을 시작하게 된 건 한 신부님의 말때문이다. 인천에서 살던 시절 그녀는 교회에서 진행하는 봉사활동으로 보육원을 자주 찾았다고 했다.

“신부님이 저를 보고 ‘사람 돌보는 일을 하셔야겠다’ 그러셨어요. 애기들을 깨끗이 씻기고 먹이는 모습을 보니까 잘 하겠다고요. 그래서 정말 그런가하면서 병원에서 처음 간병 일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신부님 말처럼 누군가를 돌보고 도와주는 일이 행복했어요”

누군가의 어려움을 도울 수 있다는 일이 행복했다는 순옥 씨에게는 지금까지 함께해 온 어르신들 중 기억에 오래 남는 두 분이 계신다.

“누워서 생활하시는 할아버지가 계셨어요. 말씀도 못하시고 윙크로만 대답을 하셨어요. 당신이 필요한 게 있으시면 침상을 긁으시고. 매일 할아버지를 몸 굳지 않게 운동시켜드리고 간간히 노래불러드리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해드리고 그러면 항상 할아버지께서 고맙다고 윙크를 두 번하시면서 웃으셨죠”

하루는 순옥 씨가 할아버지를 돌보다가 집에 있던 돈을 훔쳤다는 억울한 누명을 썼다. 할머니로부터 심한 말을 들으면서도 꾹 참고 근무했다던 순옥 씨는 돈을 찾았다는 할머니의 전화에 처음으로 그만 두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번 대상자를 만나면 끝까지 함께하기로 마음을 먹어요. 그게 제가 이 일을 하면서 가진 책임감 같은 거였는데... 그런데 그런 오해를 사는 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더라고요. 그만두고 싶은 마음 꾹 참고 매일 할머니께 돈은 찾으셨냐고 묻고 또 묻고 그랬어요. 할머니께서 돈을 찾았다고 연락 오셨던 날에는 하.... 가슴이 확 무너져 내리면서 그만두겠다고 얘기드렸어요”

하지만 순옥 씨는 그 일이 있은 후에도 계속 해달라는 할머니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할아버지 댁에서 계속 근무했다. 그런 일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할머니는 같은 이유로 순옥 씨를 또 의심하기 시작했고 순옥 씨는 그럴 때마다 할머니의 편에 서서 맞춰주었다. 그녀가 계속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할머니의 치매증상을 그녀가 문득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이 일을 하다보면 몸 불편한 장애인분들이나 치매를 앓고 계신 어르신을 계속 만나니까 알겠더라구요. 그래서 할머니께서 놀라지 않게 설명해드리고 병원을 모시고 갔어요. 지금은 병세가 악화되셔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할머니를 돌봐드리고 있어요”

순옥 씨의 기억 속에 있는 또 다른 어르신은 정치인이였다. 방문할 때마다 정치와 역사에 대해 얘기하며 잘 모르겠다고 답하면 무식하다고 구박을 해 여러 명의 요양보호사가 두 손 두 발을 들었다는 어르신이었다.

“항상 본인은 옳으시고, 저는 무식하다고 그랬어요. 제가 요양보호사로 하는 일은 같이 운동을 해드리는 일인데 매번 운동하고 나면 책 읽기를 좋아하셔서 책을 읽으세요. 몸이 불편하셔서 제가 항상 책장을 넘겨드리고 어르신이 책 이야기를 할 때면 정말 눈을 반짝이면서 신나게 설명하시다가 제가 또 못 알아들으면 구박하고요. 정말 마음이 많이 상해서 울었던 적도 많았어요. 한 달 후에는 그만두자, 그만두자하면서 그렇게 5년을 매일 뵀어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아내분이랑은 아직도 서로 안부 묻고 잘 지내요”

간병인과 요양보호사로 지내면서 숱하게 죽음을 마주한다는 순옥 씨는 자신의 기억 속에 살아계셨던 어르신들을 떠올리면 무섭기보다 마지막을 지켜드릴 수 있어 다행인 기분이라고 했다.

“매일 새벽 1시 반까지 같이 레슬링을 봤던 할머니도 계셨고요. 파키슨 병을 앓고 계신 분도 계셨죠. 치매로 매일 달력에 동그라미 그려가면서 아침 약에는 해를 그리고 저녁 약에는 달을 그려놓고 자신 이름 쓰고, 자식 이름 써가면서 지낸 할머니도 계셨고요. 그런 분들인데 돌아가셨다고 무서울 리가 있어요? 가끔은 좀 더 사셨으면 하는 마음도 들고... 또 아프시다가 편안한 얼굴로 가시면 참 다행이다 싶어요” 

일을 마치고 저녁에 들어가는 길에는 몸이 천근만근 힘들기도 하다는 순옥 씨를 남편은 이해할 수 없다며 못마땅해 한다. 일부러 본인이 힘든 일을 나서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며 그만두라는 남편의 으름장에도 도리어 더 큰소리로 ‘내 자유’라며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똑 부러지게 답해 남편의 입을 다물게 만들라는 순옥 씨.

“사실 몸이 힘들 때도 많아요. 나이도 들어 그런지 예전만큼 힘도 딸리고요. 하지만 아침에 일하러 나올 때는 날개가 달린 듯 날아가는 기분이거든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제 행복이니까, 사무실에서 거절하는 분들이 있으면 그냥 제가 하겠다고 해요. 제 부모라 생각하고 저를 필요로 하면 힘닿는 데까지는 요양보호사로서 열심히 해야죠. 다행히 요양보호사는 정년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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