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신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신기원 신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신기원 신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당진신문=신기원 교수]

정치인들의 막말소동과 뒤이은 유감표명 및 그에 따른 진정성논란을 보면서 ‘인간이란 진심어린 사과를 하기 어려운 존재인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칭찬받기를 좋아하지 비난받기는 두려워 한다. 또한 잘못이 있으면 변명하기에 급급하지 진실을 말하고 사과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인간은 자존심이 강한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용서를 청하는데 두려움이 있다. 더구나 본인이 잘못했다고 고백하면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상을 해야하는 것은 물론 법적 처벌이나 심지어는 지위상실까지 우려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사과란 그저 루저(loser)의 언어라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과연 사과를 하면 불리하기만 할까. 리더는 사과를 안하는 것이 유리하기만 할까.

김호와 정재승은 「쿨하게 사과하라」에서 여러 가지 사례를 들며 사과의 결과가 결코 불리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를테면 미국의 경제잡지 <포춘>은 ‘연봉을 올리고 싶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자신의 실수에 대해 기꺼이 사과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 사과를 기피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보다 돈을 더 잘 번다고 하였다. 또한 ‘부인하고 방어하라’로 요약되는 미국의료사고에 대한 전통적인 전략이 현재 ‘의료사고의 공개와 보상’이라는 ‘피하지 않고 접근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의료계가 신뢰도 회복하고 경제적으로도 이득을 거두었다.

미국의 최고의료기관으로 손꼽히는 미시간대학은 ‘투명한 사건 자료 공개와 의료진의 적극적인 사과’를 통해 소송건수와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보았고 의료사고를 해결하는 시간도 훨씬 짧아졌다고 한다. 심지어 일부 주는 의사의 사과행위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사회를 보면서 우리나라도 법적인 책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환자와 병원 혹은 의사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의료계의 불신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시사받았으면 한다.

한편 대중을 향한 공개적인 사과는 대개 빠른 시일내에 하는 것이 적절하며, 개인적인 사과는 적절히 늦춰진 상태에서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빠른 사과란 성급한 사과가 아니다. 사과란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인식했을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늦은 사과란 단순히 타이밍이 늦춰진 사과가 아니라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상대방이 받은 상처에 대해 충분히 경청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친 다음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치인들의 망언은 타이밍도 적절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망언을 했기 때문에 목적이 충족된 이상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여당과 피해자들이 여론을 통해 자꾸 사과를 하라고 하니까 마지못해 억지로 조건부사과를 하는 등 흉내를 냈다. 이러한 행태는 그들의 일반적인 패턴이다.

사과를 하려면 제대로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과에도 기술이 있고 법칙이 있다. 먼저 용서를 구하고 이왕 사과를 할거면 구차하게 변명을 붙이지 말고 명료하게 하여야 한다. 즉 누가 잘못했는지 주체를 분명히 하여야 하며, 무엇을 사과하는지 잘못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여야 한다. 또한 사과에는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개선의 의지와 재발방지 및 잘못한 부분에 대한 보상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 이처럼 사과에는 유감 표명과 책임 규명 그리고 재발방지 약속과 개선책 제시가 필수적으로 명기되어야 한다.

오늘날 SNS 등 정보통신기기의 발달과 이를 통한 개인미디어화, 시민들의 적극적인 의견 개진과 개인주의의 발달 등으로 세상은 점점 투명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전처럼 구렁이 담넘어가듯 또는 술에 물탄 듯 물에 술탄 듯 사과인지 변명인지 모르게 어물쩡하게 넘어가서는 안된다. 리더도 잘못을 했으면 용기를 내서 분명하게 사과를 하는 것이 좋다. 자기합리화가 능사가 아니다. 이제 사과는 루저(loser)의 언어가 아니라 리더(leader)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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