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신문=이선우 작가] <남자라면 핑크> 연작이 시작된 첫 단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들여다보기’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강의는 <여성의 눈으로 세상보기>였다. 여성가족부에서 후원하고 당진어울림여성회에서 진행 중인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 강의는 한국양성평등진흥원 조은영 선생님이 맡아주셨다.

두 번에 걸쳐 진행된 강의의 시작은 성(性)에 담긴 세 가지 뜻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했다. 신체적으로 타고난 성(sex)과 사회·문화적으로 길러진 성(gender), 성적 지향을 가리키는 섹슈얼리티(sexuality)가 그것이다. 이 중 남녀의 생물학적 성별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하는 섹스(sex)는 성기 중심의 개념이다. 하지만 이 개념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간성인도 그 중 하나다. 세계적인 패션모델 한느 가비 오딜르,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우승자 캐스터 세메냐, 유도 선수 에디낸시 실바. 이들은 모두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 간성인이다. 간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편견과 혐오 속에서 살거나 남성 혹은 여성의 성기 성형 수술을 강요받기도 한다. 최근 독일, 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출생증명서에 제3의 성을 기재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간성(間性·intersex) 성별을 지닌 사람이 의학적 견해에만 근거해 사회적 차별을 받아선 안 된다” - 2012년 2월 독일 국가윤리위원회가 독일 정부에게 전했다는 이 권고는 그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 전 당진에서 젠더폭력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된 사건이 있었다. 정확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었지만 과연 이 사건에 ‘젠더’라는 말이 붙는 게 적절한지를 두고 지인들과 설왕설래 했다. 여기서 말하는 젠더(gender)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성의 개념이다. 이는 생물학적인 성을 기반으로 사회적으로 학습된 행동과 태도, 사고 등에 의해 구별되는 성을 말한다. 남자는 이래야 돼, 여자는 이래야 돼 하는 성별고정관념은 이 젠더 개념과 직결된다.  다시 말해 ‘남자답게’와 ‘여자답게’는 남성중심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사회적으로 덧씌워놓은 것에 불과하다. 딸에게는 “여자애 방이 이렇게 지저분하면 되겠냐” 말하고, 아들에게는 “사내자식이 찔찔 짜서 뭣에 쓰냐”고 말하지만 그게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기 힘든 사회구조와 인식. 여성과 남성, 딱 둘로 구분하고 그 구분에 따른 역할이 자연스럽다고 믿는, 이 광범위한 인식에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강사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강사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물고기가 물에 젖어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지만  위계와 불평등을 불러일으키는 성별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는 부단한 훈련과 노력이 필요함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모든 인류는 천부인권을 가졌지만 단 하나 여성은 예외다. 그러므로 교육시킬 필요가 없고 정치에 참여시켜서도 안 된다... 여성들은 그들 자신을 위한 교육이 아닌 남성에게 매력적인 여자가 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아야 하고, 남성이 쉬고자 할 때는 언제나 유혹적인 요염한 노예가 되어야 한다.’ 프랑스혁명을 잉태시킨 사상가 루소가 남긴 발언을 전해 들으면서는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너무 옛날 얘기 아니냐고? 불과 14년 밖에 안 된 우리 이야기도 있다. 1956년 시작해 2005년에서야 호주제 폐지를 이끌어낸 우리나라의 가족법 개정운동, 여성이 포함되는 인간의 기본권에 관한 지난한 투쟁이었다. 여성에게만 적용되던 ‘재혼금지기간(혼인관계를 종료한 날부터 6개월 이내에는 재혼금지)’이 있었고 그것이 불과 이십여 년 전까지도 유효했다는 강사님의 이야기에 여기저기 탄식이 터져 나왔다. 호주제는 폐지 됐지만 교정해야 할 불평등은 여전히 널려있고 가부장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에 분노하고 공감한다. 그 누구도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냐고 되묻지 않는다.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는, 보려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사회적 약자가 바로 당신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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