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미 시인, 수필가

이종미(시인,수필가)
이종미(시인,수필가)

[당진신문=이종미]

남들이 웃을 땐 일단 웃고 보는 거다. 화제의 앞머리를 듣지 못했어도. 다소 내 생각과 달라도. 뒤집어 생각하거나 되돌아보거나 역지사지할 필요 없다. 복잡한 사람 취급받는다. 그냥 들은 양, 같은 양, 아는 양 적당히 웃는 것이 적응이다.

라디오를 들으며 출근하던 길에 진행자의 이야기를 듣다 그만 실소를 터뜨렸다. 미국 뉴욕 캐니지우스 대학 연구진이 962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내용이 웃겼다. 남편이나 고양이대신 반려견과 함께 자는 여성일수록 숙면을 취할 확률이 높아진다나.

내용인 즉 이렇다. 개와 함께 잠드는 여성들은 보다 더 쉽게 잠들 뿐만 아니라 잠들기 직전까지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낀다고 답했다. 반면 고양이 또는 남편과 함께 침대를 공유하는 여성은 개와 함께 잠들 때와 같은 편안함이나 안전함은 느끼기 어렵다는 답변이 많았다.

유인 즉 인간과 개 사이에 공유하는 화학적 반응이 이러한 현상의 원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개는 서로의 눈을 마주볼 때 ‘사랑의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 분비량이 많아지면서 포근하고 친밀감이 들도록 하는 마력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남성에게서도 옥시토신이 생성되지만 여성은 개의 옥시토신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단다.

이뿐 아니다. 개가 사람이나 고양이에 비해 잠든 동안 자신을 더욱 든든하게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여성을 더욱 숙면에 들게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개는 고양이와 사람보다 뒤척임이나 움직임 등이 적어 수면을 덜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 결과와 이유를 이야기 하는 내내 진행자들이 웃기에 나도 그냥 따라 웃었다.

얼마 전 유행했던 찜질방 쉼터에 관한 콩트가 생각난다. 어떤 할 일 없는 사람이 찜질방에 모인 남자들에게 어쩌다 둥지에서 쫓겨났는지 그 이유를 물었다. 30대 남자는 밥 달라고 조르다가, 40대 남자는 반찬이 뭐냐고 묻다가, 50대 남자는 화장하는 아내에게 어디 가냐고 묻다가, 60대 남자는 밖으로 나가는 아내에게 함께 가자는 말 한마디 했다가, 70대 남자는 아침에 눈떴다고, 80대 남자는 그냥 이유도 모른 채 그랬단다.

요즘 좋은 남편 되는 학교가 뜨는가 싶더니 이혼당하지 않는 남자의 생존 전략을 가르쳐주는 센터도 생겼다. 남편들이 해서는 안 되는 3원칙을 가르쳐 주는 곳도 있다. ‘아내를 이기지 않는다. 이길 수 없다. 이기고 싶지 않다.’라는 말에 담긴 내용이 요즘 말로 웃프다. 그냥 웃자고 던진 풍자의 말로 치부하기에는 슬픈 내용이다.

아내는 반드시 남편의 뜻을 따르고 좇아야 한다는 여필종부 (女必從夫).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 허물인 칠거지악. 여자가 따라야 할 세 가지 도리인 삼종지도라는 말을 들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혼일 날을 잡고 맨 처음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받은 신부수업 제 1장 1조 내용이다. 이런 말들은 30년 전에 뿌린 불명예스런 유산임에 틀림없다.

남성중심 사회에서나 소통되었던 시대착오적인 단어들을 양성평등 시대의 구석까지 다 털어 내기에는 아직도 시간이 한참 멀었다. 헌데 보복이라도 하듯 여성들도 똑같은 오명의 굴레를 만들어 보겠다는 건가. 병리적으로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사람은 여성들만 있을까.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다고 치자. 또 남편이 숙면에 방해되는 존재라는 억지도 받아주자. 그렇다고 남편을 개 또는 고양이와 비교한다는 것은 너무 심한 것이 아닐까.

 남편과 아내는 좋을 때든 어려울 때든 함께 세월을 읽어가는 동반자 관계이지 이익과 손해를 따져 묻는 관계가 아닐 터. 같이 늙고 실수하는 존재라는 가르침을 준 천생 연분 부부의 이야기를 담아본다. 노부부가 TV 앞에 앉아 있었다. 아내가 일어나려고 하자 남편이 어디 가냐고 물었다. 아내가 무슨 부탁이 있냐고 묻자 남편이 대답했다. 오는 길에 냉장고에 있는 우유를 갖다 달라고 했다. 만에 하나 잊어버릴지도 모르니까 꼭 암기하라는 당부도 했다. 그러자 부인이 치매라도 걸린 줄 아냐고 핀잔했다. 잠시 후 아내가 접시에 삶은 계란을 그릇에 담아 가지고 들어오자 남편이 말했다.

"고맙소, 그런데 소금은 왜 안 가져왔소?“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시간의 공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이란 숙면의 대상을 구하는 일도 아니다. 결혼은 건강한 남자와 아내가 만나 추억을 조각하는 일이다. 기쁨을 나누고 슬픔을 쪼개다 보면 자연히 행복과 오해와 갈등이 발생하는 것. 병리적인 현상으로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의료서비스의 도움을 받을 일이지 남편보다는 개와의 동침을 권유할 일은 아니다. 결혼은 가장 작은 공화국을 만드는 것. 가정이라는 공화국의 번영을 위해서라면 남편이든 아내든 양보와 이해로 서로에게 힘을 얹어주는 것.

그렇잖아도 혼기를 앞둔 청춘들이 결혼을 필수로 여기지 않아 걱정이 태산인데. 남편보다는 개와 함께 잠드는 것이 쉽다는 설문 결과에 의문의 일패를 당한 남성보다 내 옥시토신이 더 메마르는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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