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피선된 ‘이 근 배’ 시인



지난 7월 당진 출신 이근배 시인이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피선됐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은 예술창작에 뛰어난 공적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선출되며, 명실공히 대한민국 예술인을 대표하는 자리이다.


이 시인은 그 중 문학분과 회원이 되었는데(현재 문학분과는 21명), 이는 개인적으로도 영예스러운 일이지만, 당진에게도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다.
기자는 2일 문예의 전당 접견실에서 이 시인을 만났다.
유명환 기자 seagull197@naver.com


먼저 미소를 지으며 이번에 자신이 출판한 활판인쇄 시집 ‘사랑 앞에서는 돌도 운다’를 기자에게 건넸다. 그 손길에서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넉넉함이 느껴졌다.
“우리나라는 원래 직지심체요절의 나라인데, 언제부턴가 활판인쇄를 팽개쳐서 이 시집을 인쇄하는데 힘들었다. 특히 이 책은 1000권 한정판으로 한지로 제작된 책이다.

육당 최남선이 최초의 현대시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 한지 100년이 되는 현대시 100주년의 해에 이를 기념하여 활판으로 제작한 것이다. 책 값이 5만원으로 책정돼 판매가 걱정됐는데 교보서적 등에서 개인이 한꺼번에 50권씩 사가는 등 반응이 좋다.” 책에 대한 애착이 이 시인의 말에서 묻어났다. 그러면서도 “시는 부족한데 과대포장된 것 같아 부끄럽다”며 겸손을 보였다.


올 7월에 대한민국예술원회원으로 피선됐는데 이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예전에 이어령씨에게 예술원회원 투표를 부탁했는데 ‘나이 70됐어?’라고 물었다. 예술원 회원 투표에 지원하는 나이가 보통 70세이다. 60년대 등단한 시인으로는 내가 처음이다.

시인 중에서 예술원회원이 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문학분과 중 소설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이가 3명밖에 안돼 소설분야에서 회원을 뽑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예술원회원이 된 것에는 시조시인협회장과 시인협회장을 모두 지낸 경력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시조시인협회장과 시인협회장을 모두 역임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다. 노산 이은상 이후 예술원회원 중 시조시인은 없었다. 먼저 시조시인인 것이 크게 작용했고, 시인협회장을 역임한 것도 크게 작용했다. 시인협회장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인협회장은 전임회장단이 선임하는데, 회장단내 파벌이 심해 각 파벌에 속한 사람들과 두루 인간적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인정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는 전통 시를 짓는 시조시인이라는데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며 그리스 문인협회 회원들과 교류한 에피소드를 말했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 약간 눈시울이 적셔지기도 했다.
“80년대 초 전두환 정권의 후원으로 그리스에 가서 그리스 문인협회 회원들과 교류했다.

그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였는데 우리를 위해 다과를 준비해줬었다. 88 올림픽 전이었기에 당시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은 한국전쟁을 겪은 나라, 신군부가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나라라는 정도였다.

그들은 ‘당신네 나라는 어느 나라 말을 쓰냐?’, ‘당신네 나라는 어떤 문자를 쓰냐?’, ‘당신은 시를 쓴다는데 당신네 나라에는 시가 있냐?’, ‘당신은 당신네 나라 시를 쓰냐?”라는 질문들을 했는데 나는 자랑스런 우리 말과 글과 시조에 대해 말했고, 내가 시조시인인 것이 자랑스러웠다“라고 당시의 소회를 털어 놓았다.


그는 앞으로 활발한 활동을 계획 중이라고 한다. 예술원 문학분과 회원들이 문학분과 활성화에 기여하고 개혁할 것을 주문한다고 한다.


“이어령씨가 '자기들은 늙어서 문학분과에 잘 안 나온다. 당신이 왕성하게 활동해 달라‘고 말했다. 원래 예술원 회장이 김종길씨 차례였는데 문학분과 회원들이 안 나와서 김수용씨가 됐다. 나는 오늘 예술원회원 배지를 일부러 달고 나왔다. 예술원회원으로써 활성화와 개혁을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당진은 문화관련 컨텐츠가 많은데 이를 잘 살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청마 유치환을 두고 거제와 통영은 대법원까지 갔고, 만해 한용운에 대해 홍성은 강원도와 다투는데 당진은 심훈이라는 문화 컨텐츠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필경사는 작가가 받은 인세를 가지고 손수 설계하여 짓고, 상록수 1편을 쓴 중요한 문화 유적이다. 심훈은 세계 식민지 문학사에 유례가 없는 ‘그 날이 오면’이라는 시를 쓴 시인이면서 동시에 소설가이다. 개인적으로 만해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좋은 문화 컨텐츠에 대해 당진은 다른 곳에서 하는 노력의 100분의 1도 하지 않는다. 지금 당진은 경제가 발전하고 있어 문화 컨텐츠를 충분히 활성화 시킬 여력이 있다.”
그는 “당진 문화예술 포럼을 만들어 문화 컨텐츠를 적극 개발해야 한다”고 강력히 말했다.


그는 본적지가 여전히 충남 당진군 송산면 삼월리라며 당진 문화 발전을 위해서도 기여하겠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수구초심이라는 말이 있다. 신성대에서 석좌교수로 있다. 예술원 출신으로써 대학에서 실제로 강의하는 교수는 내가 유일하다. 당진 문화에 참여하고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



이근배 시인은…

1940년 당진에서 태어났다.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여 김동리, 서정주 선생 문하에서 소설, 시를 공부했다.
1960년 첫 시집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를 서정주 선생 서문으로 출간했다.
이 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조 <묘비명>이 당선되는 등 여러 신문의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됐다.


또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달맞이꽃>이 당선되는 등 시인으로써도 두각을 나타냈다.
여러 문예지의 발행인 또는 주간으로 활동했으며, 서울예술대학, 추계예술대학, 중앙대학 등에서 강의했고 현재는 신성대학 석좌교수로 있다.


주요 협회 활동으로는 1994년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장으로 피선됐고, 2002년 4월부터 2004년 4월까지 (사)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2008년 7월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피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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