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샘 호천웅

솔샘 호천웅
솔샘 호천웅

[당진신문=호천웅]

시내버스를 탔다. 뒷좌석에서 나누는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들렸다.

“아들네와 나들이 다녀왔어. 시골 길을 달리는 데 갑자기 차안이 어두워지기에 ‘어! 굴이다’했지. 그랬더니 유치원 다니는 손녀가 ‘할머니 굴이 아니고 터널이예요’하는 거야. 머쓱해 앉아 있는데 며느리가 끼어드는 거야. ‘아이구, 우리 윤희 최고다, 그래 굴이 아니고 터널이지’”

옆자리 할머니의 대꾸다. “왜 그랬어. 민망했겠네. 늙은이는 그저  잠자코 있어야 한다니까”

그날 저녁,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그 생각이 났다. 그래서 국어사전을 펼쳤다. 굴과 터널이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 뜻이 그 뜻이었다. 손녀도 맞고 할머니 말도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책꽂이에서 무심코 꺼내 훑어 봤던 권선옥 시인의 <요 사이 나는?>이란 시가 생각났다. 그 시를 다시 읽어 봤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선생님들도 한결같이 말씀하셨다. 작은 이익을 탐하지 말고 양심에 따라 정의의 편에서 행동하라고... 나도 애비가 되어서 자식들에게 말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부귀영화를 버린 분들이 훌륭하다고... 또 나는 선생이 되어 말했다. 진실 되게 살아라. 정의롭게 살아라. 불의를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참 많은 말씀들을 들었고, 또 무수히 많은 말을 해왔다. 그런데, 그런데... 요사이 나는...>

그런데, 그런데 요즘 세대에는 젊은이들만이 최고이고, 숫자 가 많은 계층이 주도하는 여론이 만사를 지배한다. 사람에게 해가 되는 일도 여론이 OK! 하면 그냥 OK가 될 것 같다.
방송에서 늙은이들은 엉뚱한 교통사고를 많이 내고 치매 걸린 사람이 많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자동차 운전은 접고, 내가 치매인가를 걱정하는 늙은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스스로 괄시를 받는 다는 소외감으로 슬퍼지고 나이든 것을 조금은 억울해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젊은이는 용기가 있고 나이가 들면 지혜가 많다고 했는데... 원로들의 말씀도, 늙은이들의 경험도, 젊은이들의 용기도, 나름대로 값진 것일 텐데... 성경 말씀도 그렇고, 선현들의 가르침도 오늘 날에도 받들고 깨달아야 할 말씀들이 많은데... 부지런해야 하고, 서로 존중해야 하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했는데...

요사이 들리는 말들은 투표만 잘하면 선거만 잘하면 다른 건 필요 없다고 하는 것 같이 들릴 때가 많다. 선거만 잘하면 놀아도 잘살고, 잠만 자도 OK!라고 하는 것 같다. 권선옥 시인의 시집을 책꽂이에 도로 꽂는데 현대 창업자 정주영 씨의 책이 꽂혀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엉터리 같은 제목인가? 요즘 사람들은 <인생에는 시련도 없고 실패도 없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옛날 조상들은 게으른 사람은 밥도 먹지 말라고 했는데...

요즘은 투표만 잘하면 놀아도 최고가 되고 장밋빛 세상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게다가 여론을 만들고 조작하려는 무리까지 등장하고 있는 판이니 할 말이 없다. 젊은이들에게 조국의 장래를 위해 일을 하라고 요구하는 지도자는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 이후로 없어진 것 같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이 떠오른다.

“누워서 떡 먹으면 고물이 눈으로 떨어져요” 편한 게 최고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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