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Florian Klau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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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신문=이선우 작가] 낯선 것은 익숙하게, 익숙한 것은 낯설게 라는 말이 있다. 익숙하면 혹은 익숙해지면 타성에 젖게 되고 안일해지고 편견이 생긴다. 얼마 전 ‘익숙한 것을 낯설게 들여다보기’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강의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이름 하여 젠더감수성 업그레이드. 사실 젠더감수성이라는 단어는 이전에도 자주 들어왔다. 하지만 그 단어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 건 2017년 여름이다. 성평등 전문 강사의 강의를 통해서였다.

학습된 무력감이 DNA를 타고 유전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생쥐 실험 영상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그 학습된 무력감을 끊어내기 위해 다시 한 번 더 나를 믿고 도전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2년여 동안 제자에게 인분을 먹이고 폭행하는 등 잔혹하고 엽기적인 가혹 행위를 한 일명 인분교수 사건을 예로 들었다. 피해자에게 교수의 악행을 폭로할 수 있는 힘을 줬던 이가 직장 동료도, 친구도, 가족도 아닌 식당의 직원이었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내가 도와줄게요! 끈질기게 손 내밀어주는 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세상을 바라보는 감수성이 얼마나 예민한가에 따라 도움을 줄 수도, 개선해나갈 수도 있으니 그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한다는 부연이 이어졌다.

강사님이 전해준 이야기는 실제 사례들이 대부분이다. 2001년 국가인권위에 ‘살색’이라는 크레파스 색상 이름을 바꿔달라고 요구했던 사람들 이야기도 그 중 하나다. 피부색 차별에 대한 것으로, 헌법에서 정하는 평등권을 침해할 소지가 인정된다는 취지로 ‘연주황’이라 개정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그런데 이 결정에 초중등학생 여섯 명이 지나치게 어려운 한자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린이에 대한 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살구색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탄생하게 됐다. 2004년 진정을 제기한 친구들 중에는 2001년 먼저 인권위의 문을 두드렸던 한 아버지의 딸이 포함되어 있다. 감수성의 대물림이라는 측면에서 소개해주신 내용이다.

또 다른 사례는 영상으로 보았다. 옷을 사러 간 엄마와 딸이 나눈 대화였다. 왜 여자애 옷에는 ‘안녕’이라 써 있고 남자애 옷에는 모험을 떠나라고 쓰여 있냐는 딸의 질문과 그게 이상하냐 되묻는 엄마. 그럼 그게 말이 되냐고 또다시 되묻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한숨 섞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비정상회담과 미녀들의 수다라는 두 프로그램의 작명에 담긴 성별 관념을 짚어주었을 땐 자괴감마저 들었다. 미녀는 수다를 떨고 남자는 회담하는 방송이라니, 그것에 대해 단 한 순간도 이상하다거나 불쾌하다고 느끼지 못한 내 스스로에게 놀랐다. 나름 깨어있는 사고를 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오만함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는 사이 강의는 새로운 젠더 개념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젠더는 생식기의 성이 아닌 사회문화적인 성의 개념이다. 인간의 염색체는 스물 두 개가 같고 단 하나 23번이 달라 남녀가 구분된다. 그런데 이 단 하나의 다른 염색체가 단일 X.Y가 아닌 복합체들이 발견되고 있고 현재까지 발견된 것만 4천개가 넘는다고 한다.(2017년 강의 시점 기준) 특히, 염색체나 생식기로도 성을 구분할 수 없는 간성인이 이천명 중에 한 명 꼴로 태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내가 안다고 믿어왔던 많은 사실은 진정한 사실인가?

쓰다 보니 정작 이번 강의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조차 못했다. ‘남자라면 역시 핑크?!’ 에 대해 연작으로 기사를 내야 하는 상황이 지금 막 생겼고, 그러니 이번 글은 몇 개가 될지 모를 시리즈를 여는 서문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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