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호 칼럼■



  추석이 바짝 다가왔다. 명절이 다가오면 누구나 조금은 들뜨기 마련이다. 내 마음도 마냥 들떴던 그 시절 그런 기억들로 참 많이 가득하지만, 한구석이 좀 쓸쓸해지기도 한다. 특히 이즈음에 와서는 더욱 그렇다. 나이가 가르친다고, 거창하게 관조까지는 아니더라도 때가 되면 문득 상념에 잠겨보기도 하기는 하는가 보다.
 가야물감야물(加也勿減也勿).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열양세시기(1년 동안의 행사와 풍속을 분류 기술한 책으로 1911년 간행)에 있는 말로서, 풍성한 오곡백과로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추석의 만족함을 뜻한다.
 천고마비의 좋은 절기에. 농사일로 바빴던 일가친척들이 모여 즐겁게 지낸다. 햇곡식과 햇과일이 나와 만물이 풍성하여 먹거리도 넉넉하고 인심도 후하다. 우리의 일상이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이 한가위만큼만 풍요로우면 좋겠다는 소망이 담긴 말이다.
 이제는 보리 고개도 없고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정확한 통계수치는 잊었지만 아직도 점심을 굶는 아이들이 몇 만인지 있다고 읽은 적이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기억이다. 상대적 빈곤일 뿐 절대빈곤은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절대빈곤은 아직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두어야 한다. 강변이 아니다.
 명절이 되면 소외된 곳을 찾는 발길이 줄을 잇는다. 특정한 일이나 목적,이유 따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내내 이렇게 나누는 이들이 적지 않다.
 얼마 전 타계하신 ‘당진의 인간 상록수 김상현 옹’ 이야말로 베풂이 아닌 ‘나눔 미덕’의 진수를 온몸으로 보여주신 분이다. 인간 자존(自存)의 가치를 아는 훌륭한 분이셨다.
 인간됨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함께 살아갈 줄 알아야 비로소 동물이 아닌 인간이라 일컬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가르치신 분이다. 넉넉하지 않지만 콩 반쪽도 나눠야한다는 그 공생공존의 가치관이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가 살아오신 한평생이 그대로 우리가 마땅히 본받고 따라야할 지표요 귀감일시 분명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라 한다. 좀 더 살펴보면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회지도층이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위키백과)
 로마제국 귀족들에게는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뜻의 불문율로, 명예를 중시하는 그들은 이를 실천하기 위해 전쟁에 솔선 참가하여 전사한 수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로마 건국이후 500년간 원로원의 귀족비율이 1/15로 줄어든 것도 계속되는 전쟁에서 귀족들이 많이 희생된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실천사례는 많다. 제1.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의 전사자가 2,000명이었고, 포클랜드 전쟁에는 여왕의 둘째아들이 참전했다.
 6.25동란 때는 미군장성 아들 142명이 참전해 35명이 죽거나 부상당했는데, 당시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의 아들도 참전 전사하였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도 참전했었다. 중국의 마오쩌둥이 6.25동란에 참전하여 전사한 아들소식을 듣고 시신수습을 포기하도록 지시했다는 일화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조때 기근으로 허덕이던 제주도사람을 위해 전재산으로 쌀을 사서 분배한 거상 김만덕, 전 재산을 항일운동에 사용한 최재형, 경주의 최부자 같은 역사적 실천사례가 있다.
경주의 최부자는 12대 만석 집안으로 유명하다.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가훈을 살펴보면 이렇다. ‘과거를 보되 진사이상 하지마라. 재산은 만석이상 모으지 마라. 과객을 후히 대접하라. 반경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파장 기다려 물건 사지 말고 흉년에 땅 사지마라’ 되새기지 않아도 그 함의가 느껴지고도 남는다. 한 번 이룬 부를 놓치지 않고 12대가 이어 유지해온 이유가 보인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검약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옛 로마에서와 같은 태어나는 귀족은 없다. 스스로 노력하여 부를 쌓고 명예를 얻는다. 그리하여 일가를 이루게 된다. 노력의 대가일 뿐 사회로부터 나는 아무런 혜택 입은 것 없다. 그러므로 나보다 못한 사람은, 그의 어리석음과 게으름 때문이니 그의 책임일 뿐이라고 무시하게 된다. 나와는 별개의 사안으로서. 과연 그런가.
 사실은 그 자신이 이 사회로부터의 최고의 수혜자임을 알아야 한다. 사회는 제로섬 게임과 같다. 내가 더 먹는 밥 한 숟갈 때문에 어딘가에서 그 한 숟갈을 덜 먹게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감히 사치하겠다는 욕구가 조금은 줄어들었으면 한다.
 가진 자의 오만을 버리고 가진 자의 겸양이 어떠한가를 보여줄 때이다. 의무로써.
 이 추석에, 풍요 속의 빈곤과 상대적 박탈감을 생각하면서, 한 푼을 가진 것도 가진 것이니까, 우리 스스로가 지금 가진 것만큼의 자부심으로라도 스스로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행해보자.
 양지에 나앉으면 금세 음지를 잊어버리는 조두(鳥頭)가 되어서는 이성적인 인간으로서 부끄러운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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