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례 당진수필사무국장

전명례 당진수필사무국장
전명례 당진수필사무국장

[당진신문=전명례 당진수필사무국장]

낯선 번호가 찍힌 폰이 줄기차게 울린다. 망설이다가 전화기를 열었다. 낯선 목소리가 한껏 반가움을 머금고 내 이름을 부른다. ‘나야 윤자 왜 맨 뒤에 앉았던 키다리 윤자 생각나지.’ 그 말을 듣고 있는 잠깐의 순간에 모래시계가 엎어진 듯 내 기억은 한꺼번에 뭉떵 떠올랐다.

하고 싶은 말들이 궁금한 이야기가 지나간 세월의 겹만큼 많았다. 그중 가슴 저리는 것은 은사님의 소천 소식이었다. 오랫동안 병석에 계셨고 간간이 지네들은 문병도 갔었는데 그분이 무심한 나를 찾으셨단다. 죄스러움으로 가슴이 무너졌다.

늘 반들거리는 지휘봉을 한손에 들고 다니셨던 그분이 아주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 남대문 선생님, 은퇴 하시고 대전으로 이사하셨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다. 대단하지도 않은 날들을 대단한 듯 사느라 마음으로만 그리워하고 찾아가 뵐 생각은 안하고 살았으니 이 죄스러움을 어찌할까.

그 선생님의 별명은 지휘봉이었다. 그 분의 지휘봉은 무언가 모르게 공포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고 웃는 모습도 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인지 별반 우리에게 인기도 없었다. 봉 선생이 그분의 별명이었는데 남대문으로 바뀌게 된 것은 그 일이 있은 다음 부터였다.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교실 문이 드르륵 열리며 그분이 한 손에 지휘봉을 들고 근엄한 표정으로 들어오셨다. 그 모습을 재빠르게 스캔하는 내 눈에 버클 아래 바지 지퍼가 열려 있는 모양이 들어왔다. 선생님 남대문 열렸다. 고 바쁘게 쪽지를 써서 뒤로 넘기고 태연하게  앉아있는 동안 선생님은 수업을 진행하셨다.
 
수런거리는 소리 기침하는 듯 하며 웃음을 참는 소리들. 이미 우리는 수업은 뒷전이었다. 열심히 칠판에 판서를 하시던 선생님이 묘한 분위기를 감지하신 듯 뒤로 돌아서실 때 운수 나쁜 선이가 쪽지를 뒤로 넘기다 선생님 눈에 걸렸다.

“너 일어서. 그거 뭐야. 서서 읽어”

겁에 질린 선이가 일어섰다. 얼굴이 발개진 그녀는 울상이 된 채 발을 동동 거리며 우리들을 바라보다가 선생님을 바라보다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선생님은 지휘봉을 든 손으로 다른 손의 손바닥을 탁탁 두드리며 선이 앞으로 근엄하게 걸어 오셨다.

“안 읽어. 어서 큰 소리로 읽어”

노여움을 머금은 목소리는 잔득 긴장하고 있는 우리들을 더욱 겁나게 했다. 선생님이 선이 손에서 쪽지를 빼앗아서 읽으셨다. 숨이 막히는 긴장의 순간을 참을 수 없어서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선생님이 교탁 앞에 서서 우리들을 마주보고 계신동안 우리에게 아니 쪽지의 주인공인 나에게 어떤 벌인가 내려질 것을 미리 예상하며 고개를 숙임막 하고 있는데 그분이 말씀하셨다. 

“이놈들아 여기는 남대문이 아니고 중앙청이야 뭐나 알고 쪽지를 돌려도 돌려야지”

그일 후로 그분의 별명은 남대문이 되었다. 누가 남대문 선생님이라 하면 뒤이어서 중앙청이라고 말하고는 눈물 나게 웃었던 그때가 여과 없이 생생하다. 청청하고 해맑았던 그 추억의 중심에는 가장 선명하게 그 분이 계신다.  그 때 부터 우리들은 선생님을 기꺼워하고 좋아하게 되었던 듯싶다. 언제나 그리운 선생님이신데 소천 하셨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있자니 죄스러운 마음 한가득 이다.

매 달 십오일에 동창모임을 수년째 하고 있다며 다음 달에는 얼굴 좀 보자고 다그치는 윤자에게 그러마고 약속했다. 이미 늦었지만 그 동안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던 동창생 모임을 이제라도 나가 봐야겠다. 나를 찾아내느라고 여러 날을 고생했다는 동창생들이 고맙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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