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양대파 특허 받은 여성농업인 ‘김도혜’ 씨
[당진] 양대파 특허 받은 여성농업인 ‘김도혜’ 씨
  • 김희봉 객원기자
  • 승인 2019.04.22 13:37
  • 호수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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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도움 없이 자립하려 당진으로 이사
“양대파 특허권 돈벌이 아닌 농민들과 함께 공유”

[당진신문=김희봉 객원기자] 김도혜 씨의 양손에는 양대파 봉지와 양대파 홍보자료집 그리고 자색양파즙 한 상자가 들려져 있었다. 첫 모습을 통해 양대파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23세의 여성농민상을 느낄 수 있었다.

김 씨는 굳이 농장으로 찾아가겠다는 것을 거부하고 농민회 사무실에서 만나자고 했다. 당진에는 아직 농장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임시로 합덕읍에서 살면서 현재 농어촌공사 농지은행에 농지를 신청한 상태지만 경쟁이 치열해서 쉽지 않다고 했다.

굳이 부모님이 계신 예산군 고덕면에 있는 농장을 떠나서 당진에 정착하려는 것은 부모 도움 없이 자립해보겠다는 생각에서란다. 특히 양대파 특허권을 갖고서 지역 농민들과 양대파생산조합을 만들어 혼자가 아닌 함께 천천히 준비해 나가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왜 양대파 농업인가?
예산군 고덕면에서 친환경유기농 농사를 짓던 부모님 곁에서 아들 같은 맏딸로 농사일을 도우면서 부모님의 실패와 성공을 지켜보며 자라왔고 평소에도 엄마와 함께 풀 뽑는 것을 즐겼던 것이 내가 농업을 직업으로 결심한 계기였다. 처음 부모님들은 힘든 농사를 선택하는 것을 극구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내 양대파 계획서를 보여주며 설득한 결과 한국농수산대 채소과에 입학하게된 것이다. 고2때부터 부모님이 재배하던 양파에 대해 연구를 시작해 결국 양대파 특허를 받았다.

●양대파 특허는 어떤 것인가?
한마디로 맛은 달큰한 양파 맛이고 외형은 대파모습인 채소다. 양대파는 교잡종이 아닌 양파종류 가운데 구가 형성된 양파를 5~7쪽으로 분얼시켜 재배하는 것이다. ‘양파 재배방법(제11709774호)개발’ 특허와 ‘양대파 상표권(제40-1234270호)특허를 받았다. 내가 굳이 특허를 낸 것은 독점해 돈을 벌겠다는 것이 아니라 특허를 내지 않고는 양대파의 생산과 유통을 기업자본에게 빼앗겨 결국은 가격 결정권이 생산농민이 아닌 유통기업에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본래 아빠도 씨앗쪽에 관심이 많으셔서 나도 양파를 개량하게 된 것이다.

●양대파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먼저 2개월마다 출하할 수 있고 수량도 5~7쪽으로 불어나 생산원가를 줄일 수 있고 특히 지난 기지시줄다리기축제때 시식행사를 했는데 평소 파종류를 안 먹는 어린아이도 한번 먹어보고 더 달라고 할 정도로 식감이 좋다. 우선 고기요리와 꼬치구이는 물론 전이나 샐러드와 장아찌재료로 특히 각종 요리할 때 양념으로 사용해도 좋다.
독일이나 일본으로 농장체험이나 6차 산업 실습 나갔을 때 잎양파라는 양대파와 비슷한 채소가 있었는데 잘 먹더라. 특히 일본에서는 300g에 7천원인데 한국에서는 1천원만 받아도 수익성이 있어 우리가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양대파는 연중생산이 가능하고 외국에서 선호도가 높아 수출도 계획하고 있다.

●정부나 관련기관에 하고 싶은 말은?
정부와 농협이 청년농민들에게 좀 더 관심 갖고 지원해주길 바란다. 사실 나도 청년 창업농으로서 농지 때문에 농어촌공사를 찾아갔는데 어렵다는 말만 들었다. 특히 청년농민에게 농지는 절실하고 중요하다. 도움을 받으려 농지은행에 신청했는데 잘 안 되는 것 같다.
농협이 농민에게 비 안 올 땐 우산을 건네주다가도 정작 비올 땐 우산을 빼앗아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래서 농협을 개혁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여 작은 농협 같은 조직을 새로 만들고 싶다. 이런 문제해결에 있어서 개인은 어렵지만 단체가 나서서 한다면 가능하리라 보고 열린 마음으로 함께 할 사람들을 구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나는 아직 농부로 살아온 기간이 6개월 밖에 안 된다. 아직은 준비과정이어서 어른들로부터 배울게 많다. 앞으로 어린 농부를 열린 마음으로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혹여나 양대파에 관심 있다면 언제든지 함께했으면 한다. 양대파 재배농가가 예산군에는 서른다섯 농가지만 당진시에는 다섯 농가뿐이다. 앞으로 농가를 더 확보해 출하생산조합이나 작목반을 운영할 것이다. 지금도 대형마트에서 시제품으로 400톤 공급을 요구하고 있지만 거절했다. 앞으로 농민이 완전 가격결정권을 가질 때까지 응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나는 농업인 매니저로 활동하면서 생산농민들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