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이주여성 ‘판티피’씨 가족



근래에 들어서 다문화가정의 수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의 경우 뿐 아니라, 세계화의 추세인 듯하다. 글로벌화의 물결이 ‘어느 분야나 어느 곳이나’를 가리지 않고 지구촌 곳곳에 밀어닥치고 있다.


민족간의 교류 또는 융합이 바야흐로 “세계는 하나”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단일민족이라는 단어를 고어사전에서나 찾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이제는, 다문화가정하면 이주여성을 먼저 생각하고 우리 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정략적으로 들어온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부터 바로잡아야 할 때이다. 특히 동남아의 여성들이 대부분인 이들을 돈주고 사온다는 그릇된 인식은 하루속히 불식시켜야 할 우리의 부끄러운 오만과 편견일 뿐이다.

오늘날 소위 선진국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와 ‘대한민국 다문화가정’의 일원이 되고 있는 남자들의 숫자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번 특집에서는 우리사회의 아직 덜 성숙된 차별인식과 냉대 혹은 조소 속에서도 꿋꿋이 우리문화를 익혀가며 사랑을 꽃피우고 행복을 가꿔가는 다문화가정을 두루 찾아 나서기로 했다. 이국에서 가꾸는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과 행복이야기를 독자들께 전하기 위해.
신동원 기자 habibi20@naver.com




기자는 먼저 신평면 금천리를 찾아가서 이 특집을 시작하려 한다.
작게 나있는 길을 따라 들어가 조용하고 한적한, 그야말로 TV에서나 나올듯한 전형적인 농촌마을 금천리에는 판티피(26)씨가 살고 있다.

2년 전 한성범(36)씨와 결혼하여 열심히 한국문화를 배우고 익히며 열심히 한국인이 되어가고 있는 판티피씨는 행복한 가정의 여느 한국인 주부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한국 속의 당진, 그 속에서 꽃피우고 가꾸는 판티피씨와 한성범씨의 사랑과 행복 속으로 들어가 보자.


# 한국말 너무 어려워요.

“결혼을 베트남에서 했어요. 결혼 후 한 달 동안 베트남에 있었습니다”
베트남 롱안꾼이 고향인 판티피씨는 현지에서 결혼 후 한 달 동안은 베트남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때 남편 한성범씨에게 한국말을 조금 배웠다.


한 달이 지나고 한국에 들어와 한성범씨 고향인 당진에 오게 됐고 2년 1개월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동안 한국말을 배워서인지 판티피씨의 한국어 구사능력은 의사소통에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능숙했다.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한국어 교육을 받은 지 3달이 되간다는 판티피씨, 중급반에서 배울 정도로 실력이 좋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말이 어렵다고 털어놓는다.
“한국말 너무 어려워요. 발음도 어렵고 문법도 어려워요. 제일 어려운건 뜻은 비슷한데 말이 틀린 게 많아요. ‘피곤하다’, ‘힘들다’ 이런 것이 좀…”
그래서인지 처음엔 말이 안 통해 부부싸움 아닌 부부싸움도 가끔 했다고 한다.


“제가 말하면 오빠가 못 알아듣고, 오빠가 말한걸 제가 이해 못해서 처음엔 조금 다투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말 잘 통해서 안 싸워요”
지금은 안 싸운다며 환하게 웃는 판티피씨와 한성범씨. 역시 사랑 앞에서 언어차이는 문제가 되지 않나보다.


# 베트남은 밥그릇 들고 먹는데…

판티피씨가 한국에 와서 제일먼저 닥친 문제는 문화차이였다.
어떤 점이 제일 힘들었냐는 질문에 판티피씨가 주저 없이 말한 것은 ‘밥먹을 때’였다.


“베트남에서는 밥 먹을 때 밥그릇을 들고 먹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밥그릇을 그냥 놓고 먹어요”
어른들 앞에서 밥그릇을 들고 먹으면 버릇없게 보이는 우리나라에서 그것이 걱정이었나 보다.
“또 베트남은 젓가락만 사용하는데 한국은 젓가락과 숟가락 모두 사용해요. 국은 큰 그릇에 담아 숟가락 하나를 사용해 모두 먹는데 한국은 한 사람당 하나씩 각자 주잖아요”


서로 다른 문화차이 앞에서 각자 숟가락을 사용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신기해 보였을 것이 당연하다.
우리나라 사람도 양식이 처음 들어왔을 때 접시에 담긴 고기를 칼로 썰어먹는 것이 내심 신기하지 않았을까?


# 날씨도 좋고 음식도 좋고 사람은 더 좋아요.

“한국에 와서 좋은점이요? 다 좋아요. 한국말을 배워서 좋고요. 날씨도 너무 좋아요. 음식도 좋고요 사람도 좋아요. 그중에서 남편이랑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제일 좋아요”


판티피씨는 인터뷰 내내 남편자랑이 떠나지 않는다. 남편을 보는 입가에는 시종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기자가 질투가 날 정도로…
마침 음식얘기가 나와 기자는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물었다.


“베트남 사람은 돼지고기 많이 먹어요. 그래서 한국와서 갈비 제일 좋아요. 불고기도 좋아요” 가끔 남편이 회사를 쉬는 날이면 판티피씨는 월남쌈 같은 베트남 음식을 해먹는다고 한다. 판티피씨에게 베트남 음식 중에 어떤 음식이 제일 자신 있냐는 질문에 한성범씨가 “다 못하는데…”라며 농담을 던진다.


“음식을 해도 혼자만 먹어요. 제 입맛이랑 가족 입맛이랑 많이 틀려요”
그 정도로 음식 입맛이 많이 틀릴까? 해서 물어보니 한성범씨는 입에 맞는 것은 맞는데 안 맞는 것은 정말 안 맞는단다. 역시 사람 입맛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닌가보다.


그래서 기자는 한국 사람도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베트남 음식이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부엌에 가서 뭔가를 가지고 나왔는데 뭐냐고 물으니 반세오 가루란다. 판티피씨 어머니가 베트남에서 올 때 사온 것이라는데 한국으로 말하면 쌀가루라고 설명한다.


이것으로 ‘반세오’라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데 베트남 부침개라고 하는 것이 제일 쉬울 듯하다. 이렇듯 판티피씨는 음식으로나마 고향을 느끼며 향수를 달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자는 화제를 돌려 여행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에버랜드도 다녀왔다고 자랑을 한다. 여행을 자주 가냐고 물으니 아직은 익숙지 않은 지명을 여기저기 대며 설명한다.


“바다도 가봤어요. 산도 가봤어요. 음…그리고, 오빠 거기 어디죠? 아! 마곡사도 다녀왔어요. 난지도 해수욕장도 가봤고요”
제법 많은 곳을 다녀왔다 싶어 한국에서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남편이랑 가족이랑 함께면 어디든 다 가보고 싶어요”
판티피씨는 한국에 와서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같은 동네에 베트남 사람이 3명이나 있고, 동네 사람들과 건강가정지원센터의 친구들도 많다.


이제 판티피씨는 베트남 사람이기보다 한국 사람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 멀리 있어서 가족들이 그립습니다.

베트남에 있는 판티피씨의 가족은 아빠, 엄마, 여동생, 남동생 둘 이렇게 총 5명이다.
24살의 공부중인 여동생, 22살과 19살의 남동생, 그리고 아버지.
그리고 놀랍게도 때마침 판티피씨의 어머니인 미웬티벤(48)씨가 시댁에 와있었다.
미웬티벤씨에게 멀리 딸을 시집보내고 어땠냐고 물었다.


“이렇게 와서 남편이랑 가족이랑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마음도 편하고 좋아요. 그런데 처음에 시집보낼 때는 마음이 아프고 걱정도 많았어요(판티피씨 통역)”
멀리 타국에 딸을 보낸 어머니의 마음은 다 똑같을 것이다.
고향에 있는 동생들과 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다는 판티피씨.


가족들과 이별 후 한국에 와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산다는 것이 아무래도 결혼 당시의 스물넷 아가씨에겐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기자는 고향에 편지를 보내주기로 했다.
며칠 뒤 다시 올 테니 편지를 써 놓으라고 당부했다. 그랬더니 핑크빛 편지지에 예쁘게 편지를 써놓았는데 비록 알아볼 수 없는 타국의 언어였지만 고향의 가족을 생각하며 한자 한자 썼을 판티피씨를 생각하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


# 마지막으로…

아직 우리 주위에는 우리가 모르는 이주 여성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우리가 특별하게 바라봐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친구처럼 평범하고 차별 없이 대해주길 바랄 뿐이다.
“친구 중에는 행복한 사람도 있고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어요.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 너무 좋아요. 며느리 외국사람 있으면 멀리서 왔는데 잘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판티피씨의 작은 소망이다. 자기와 같은 처지의 여성들이 모두 행복하게 사랑받으며 살기를 희망한다. 지금이라도 주위를 둘러보자. 멀리 고향을 떠나 이국 문화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주여성들이 있다면 우리 모두 따뜻한 관심으로 대해주는건 어떨까.


※ 당진뉴스는 판티피씨의 편지와 사진을 고향 베트남으로 발송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사람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당진뉴스가 되기 위해 열심히 뛰겠습니다.

또한 인터뷰 중 이주여성들이 국적취득과 관련해 어려움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국적취득 관련 기사를 다음 주 신문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제보를 당부 드립니다.

 

 

 



# 판티피씨가 알려주는 베트남 음식

베트남 남쪽의 전통음식 - 반세오

<재료> 10인분
반세오가루 1kg (반세오 가루가 없으면 쌀을 곱게 갈아 사용해도 좋다)
돼지고기 750g, 새우 1250g, 녹두 250g, 양파 5개
숙주 250g, 쪽파 5뿌리, 물 2000ml

<소스재료>
설탕 4큰술, 레몬즙 1큰술, 까나리액젓 5큰술, 끓인 물 6큰술, 고추, 마늘, 당근, 무 약간

<만들기>
1. 반세오가루(쌀가루) 1kg에 물 2000ml를 넣고 반죽한다.
2. 1번에 다진 쪽파를 넣는다.
3. 돼지고기는 채 썰고 새우는 머리와 꼬리를 제거해 따로 볶는다.
4. 녹두를 갈아서 물에 담갔다가 껍데기를 버리고 찐다.
5. 양파를 둥글게 채 썬다.
6. 달군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반세오 반죽을 넓고 둥글게 편 다음, 그 반죽위에 숙주, 양파, 볶은 돼지고기, 새우, 찐 녹두를 적당히 올린다.
7. 뚜껑을 덮어 2분정도 익힌 다음 반을 접는다.
8. 노릇노릇 해지면 꺼낸다.

<소스만들기>
1. 고추, 당근, 무는 채 썰고 마늘은 다진다.
2. 설탕, 레몬즙, 까나리액젓, 끓인 물을 섞은 다음, 1번을 넣는다.

<반쎄오 더 맛있게 먹기>
월남쌈에 오이, 양배추, 상추, 당근 등 각종 다양한 야채를 반세오와 함께 싸먹으면 맛이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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