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꽃샘추위도 막지 못한 열정의 사람들
[사람향기] 꽃샘추위도 막지 못한 열정의 사람들
  • 전국지역신문협회 충남공동취재팀
  • 승인 2019.03.26 14:31
  • 호수 1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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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정보고등학교 배드민턴 선수들이 훈련에 열중이다.
▲당진정보고등학교 배드민턴 선수들이 훈련에 열중이다.

기승을 부려대는 꽃샘추위 핑계 삼아 뜨끈뜨끈한 이불 속에 콕 박혀 꼼짝 않고 있는데 ‘해미읍성 취재하시라’며 평상시에도 삶에 열정이 넘치는 늦둥이 녀석의 꼬드김이 시작됐습니다.

“취재는 무슨, 이렇게 추운 날 누가 나온다고! 우리 말고 아무도 없을껄!”

나오는 사람은 없어도 이렇게 바람이 부는 날 연을 날리면 손맛이 기막히게 좋을 거라는 늦둥이 녀석의 2단계 꼬드김에 대번 넘어가 투덜대면서도 잘 세탁해 들여놓았던 패딩을 망설임 없이 다시 꺼내 입고 23일 오후 해미읍성 대신 집 앞 당진정보고 운동장을 찾아보았습니다.

식구들 연 날릴 준비를 하는 동안 운동장을 기웃거리는데 저 멀리서 공을 차는 어린이들이 보입니다. 사진이라도 찍을 요량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공을 차다 말고 한 녀석이 말을 걸어옵니다.

“제 꿈이 축구선수가 되는거에요. 아줌마가 한 번 제가 찬 공 막아보실래요?”

“뻥!“ 하고 입과 발이 함께 공을 차는데 손흥민 선수가 온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잘 찹니다.

“어때요? 못 막으시겠지요? 이번에는 아줌마가 차보세요. 제가 막아볼게요.”

“뻥!” 하고 녀석을 따라 흉내 내며 입과 발로 공을 힘껏 찼는데 우연인지 실력인지 공이 들어갔습니다.

“못 막았네요! 아줌마가 잘 찬 것 같지는 않고요, 제가 차는 것은 잘하는데 공을 막는 실력이 좀 모자라서 그래요. 헤헤.”

다짜고짜 처음 만난 아줌마한테 말을 걸어오는 당돌한 녀석에게 몇 살이냐 물으니 아홉 살이라는데 공을 다루는 발놀림, 스킬이 얼마나 현란한지 “넌 꼭 축구를 해라. 네 발놀림을 보니까 훌륭한 선수가 되고도 남겠다.”는 격려의 말이 술술 나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공이 좋아서, 축구가 좋아서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도록 뛰고 또 뛰는 동갑내기 아이들의 열정은 칼바람도 말리지 못했습니다.

저 멀리서는 던져주는 농구공 쫓아다니며 운동장 구석구석을 누비는 누렁이를 따라 주인도 헐떡이며 함께 달립니다. 누렁이가 앞발 뒷발 다 동원해 공 다루는 것을 지켜보니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닙니다. 누렁이의 공놀이를 향한 열정에 주인도 더불어 건강해집니다.

최근에 새 단장을 한 실내체육관을 기웃거려보니 요란한 기압소리가 들려옵니다. 문을 빼꼼이 열고 내다보니 배드민턴 선수들 훈련이 한창입니다.

“내일 서산에서 평가전이 열려요. 그래서 오늘 이곳에서 훈련을 하고 내일 서산으로 이동하려 합니다.”

아산시 용화고등학교 배드민턴 선수라고 자신을 수줍게 소개한 여고생이 이내 훈련에 합류하더니 민첩하게 스트라이크를 날립니다.

한쪽 코트에서는 정보고 유니폼을 입은 남학생 선수들이 지켜보는 내내 입이 쩍 벌어져 다물지 못할 만큼 출중한 실력을 자랑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했으니까 7년 됐어요.”

그럼 그렇지! 하루아침에 된 것 아니고 수 년 동안을 꾸준한 훈련으로 빚어낸 결과물이었습니다. 몇 초의 쉼도 없이 이어지는 훈련에도 힘들어하는 내색 없이 땀을 팔등으로 훔쳐내며 젊은 청년들이 꿈을 향한 열정을 불태웁니다.

실내 체육관을 나와 하늘을 쳐다봅니다. 기막힌 손맛 좀 보겠다고 나온 식구들이 날린 연이 하늘을 훨훨 날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올려다봤지만 연은 온데 간데 없고 허연 구름만 바람에 떠밀려 할 수 없이 흘러갑니다.

바람이 차가운 날 벌개진 손으로 연을 잡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하늘로 올려 보낸 연이 잠깐 날아오르는가 싶었는데 센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날개가 부러져 추락하고 맙니다. 식구들의 열정은 헛수고로 돌아갔지만, 그래도 바람이 지나치게 세게 부는 날은 아마추어에게 커다란 연을 날리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하나 배웠습니다.

‘꿩 대신 닭’ 격으로 죄 없는 공을 뻥뻥 차대는데 맞은편 아홉 살 동갑내기들이 거쳐 간 빈 골대에도 공 차는 가족이 보입니다.

공을 차면서도 옷깃을 자꾸만 여밀 만큼 추운데 언제 왔는지 반바지 차림을 한 아저씨가 그 큰 운동장을 수차례 돌고 또 돕니다. 후루룩 달려 지나가는 바람에 인터뷰 할 틈이 없었지만 곧 열리는 마라톤대회라도 출전하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수 바퀴를 돌고도 숨 찬 기색이 전혀 없는 것을 보니 어떤 대회서라도 1등하겠습니다. 찬바람이 불어대는 날에도 어김없이 운동장에 나와 자신과의 싸움을 하며 훈련하는 이런 열정 있는 분이 1등하면 좋겠습니다.

춥다고 집에만 있었더라면, 축구선수가 꿈이라는 아홉 살 동갑내기 친구들도, 농구공을 잘 다루던 누렁이도, 시합을 하루 앞두고 훈련에 열중이던 혈기 넘치는 청년들도, 자신과의 싸움을 홀로 묵묵히 해내고 있는 반바지 차림 아저씨의 열정도 못 만날 뻔 했습니다. 추우니까 나처럼 모두 웅크리고만 있을 줄 알았는데, 누군가가 웅크리고 있을 동안 누군가는 꿈을 향해 뛰고 달리고 있었습니다.

춥다고 집에서 웅크리고 있었더라면, 이 글도 써내려갈 수 없을 뻔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