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대덕산에 아직은 이른 봄꽃 대신, 울긋불긋 사람 꽃이 소나무 숲 사잇길마다 피었습니다.

8일 오전 간만에 미세먼지 걷힌 하늘은 더욱 푸르고, 당진 시내가 선명하게 내려다보이는 대덕산에 지인들과 함께 오르는 길, 삼삼오오 산을 찾은 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오고 가며 눈인사를, 때로는 기꺼이 소리 내어 인사 나누며 정을 나눕니다.

푸르디 푸른 하늘을 향해 지조 있게 치솟은 소나무들이 경쟁하듯 이뤄놓은 우거진 숲길을 따라 걷노라면 스멀스멀 밀려드는 감격에 겨워 그저 헛웃음이 절로 납니다.

솔잎 폭신하게 깔린 흙길을 걷다보면 땅의 기운을 온 몸으로 받아 없던 기운도 냉큼 솟아나고, 소나무들은 피톤치드를 뿜어대며 자꾸만 우리에게 반갑다 말을 걸어오면 “흐미! 상큼한 거!” 구수한 사투리로 화답하며 킁킁대고 심호흡을 해댑니다.

“어, 여기 땅이 촉촉하게 젖었네요!”

겨우내 얼었던 땅이 난리법석 떨며 봄소식 전하는 햇살의 성화에 못 이겨 그만 녹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중간 중간 놓인 나무벤치는 쉬어가는 사람마다 잘 닦아놓아 먼지 한 점 없고, 겨우내 멈추었던 운동기구들이 가끔이라도 다녀갔을 청설모 대신, 사람 싣고 삐걱삐걱 소리 내어 제 할 일 하고 있습니다.

겨우내 뻣뻣해지고 두꺼워진 종아리를 턱 하니 걸쳐 올려놓고 쭉쭉 늘리기도 하고, 두둑해진 뱃살도 옆구리 살도 함께 날려버릴 기세로 허리를 심히 빙글빙글 돌려대는가 하면, 두 다리 가랑이 찢어질 듯 앞뒤로 엇갈려 굴려대는 사람들도, 운동기구들도 저러다 함께 몸살이 나겠습니다.

그나저나 겨울에 부족할 수 있는 먹이를 땅속에 묻고 바위 틈새에 감추어 놓는 습성이 있다더니 청설모 녀석 도통 자취를 감춘걸 보면 아직 땅 속 먹이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등산이라는 이름은 왠지 거창하게 느껴지는 이곳 대덕산은 오르락 내리락 지루하지 않게, 남녀노소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정겨운 길이 이어집니다.

“무릎이 아파서 등산은 꿈도 못 꾸는데 나 같은 사람한테는 이곳이 적격이에요.”

아미산 가자니까 단호하게 거절하더니 대덕산 가자니 냉큼 따라나선 한명숙 씨(58세)의 말입니다. 이곳에서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는 이유입니다.

맞벌이 하는 아들내외 손자들 돌봐주려 충남 아산에서 당진으로 석 달 전에 이사 왔다는 노영순(65세) 씨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참 좋은 산을 알게 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면서 “일주일에 꼭 두세 번 이곳을 찾고 있다.”고 나란히 벤치에 걸터앉아 물마시며 말해줍니다.

“산에 오니까 그리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고 힐링이 돼요.”

녹록지 않은 직장생활에 몸도 마음도 상처투성이였던 오 모(47세) 씨는 오늘 하루 휴가를 내어 산에 오길 참 잘했다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터놓으며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70세는 족히 되어 보이는 어르신이 40세도 안돼 보이는 젊은 아낙 손을 잡고 끌다시피 하며 올라오고 있습니다.

“오늘 처음 나 따라 온 우리동네 사람인디유, 힘들어 함시롱 빨리 못 걸으니께 답답해도 워칙허겄슈. 함께 왔으니께 보조 맞춰 걸어야제.”

늘 산에 다닌다는 그 어르신의 얼굴에 건강미와 함께 넘쳐나는 자신감이 참 보기 좋습니다.

돌아나오는 길, 시골마을 어느 집 굴뚝에서 피어나는 볏짚 태우는 향이 정겨웁고, 빛 잘 들어 우뚝 자란 마늘밭이 대견하고, 산 그늘져 못 자라 싹 여린 마늘밭 보노라면 주인 인 냥 이내 안타까워지기도 합니다.

산은, 처음 만난 사람도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마냥 너 나 없이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게 하는 마법을 가졌습니다.

산은, 찾는 사람에게 어김없이 아픈 곳 어루만져주고 건강을 되찾아주는 우리 동네 의사선생님 같습니다.

산은, 딱딱한 시멘트, 아스팔트길 대신 폭신한 솔잎 융단을 깔아놓아 벌러덩 누워도 좋을 아늑한 우리집 침대 같습니다.

산은, 언제 어느날 가겠다 약속조차 없이 불쑥 찾아가도 변함없이 반갑게 맞아주는 오랜 내 고향친구같습니다.

산은, 받으려는 마음 1도 없이 자꾸만 주기만 하는 우리 친정어머니 같습니다.

우리가 자꾸만 산을 찾는 이유, 찾아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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