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보복 우려...유가족, 국민청원 동참 호소 “강력한 처벌 원해”
유가족 “온몸에 멍,..딸아이가 겪어야 했던 두려움과 고통에 억장 무너져” 절규

“달아나는 딸을 다시 끌고 들어와 마흔세 번을 찔렀다고 하는데.. 어떻게 사람이... 부모가 그 말을 듣고 아이를 보는데 몸 어디에도 성한 데가 없어서...” 

[당진신문=배길령 기자] 불쑥 찾아온 딸의 사고에 아버지는 연신 주먹을 그러쥐고 허벅지를 두드렸다. 유가족이 되어버린 아버지는 딸의 부재에 먹먹한 심정을 그렇게 이겨내고 있었다.

지난 1월 6일 새벽 3시 40분쯤 서울 관악구에서 한 남성이 여성을 흉기로 무참히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벌어진 빌라는 여성의 거주지였으며 두 사람은 약 6개월간 교제 중이었다. 남성은 여성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남성을 만난다고 의심했고, 여성의 집을 찾아가 미리 준비해간 흉기로 잔혹하게 범행을 저질렀다.

데이트 폭력으로 세상을 떠난 생전의 피해자 모습. 아버지는  “밝고 예뻤던 생전의 우리 딸 사진을 써 달라”고 요청했다
데이트 폭력으로 세상을 떠난 생전의 피해자 모습. 아버지는 “밝고 예뻤던 생전의 우리 딸 사진을 써 달라”고 요청했다

소중한 첫 딸아이가 그렇게 가족의 곁을 떠났다. 아직 더 피어나야하는 스물여덟의 딸아이는 처참한 모습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주말이면 집으로 와요. 동생이랑도 사이가 좋았으니까... 뭐 사온다고 그러면서...”

당진에 거주하고 있는 아버지는 더 이상 주말을 기다릴 이유가 없어졌다. 휴대폰 사진 속 딸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환하게 웃고 있지만 이제는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거나 목소리를 들어 볼 수도 없다. 아버지 기억 속의 딸은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 도움 없이도 척척 잘해내는 기특하고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유치원도 가기 전에 한글을 뗐어요.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정말 똑똑하고 착한 딸이었어요. 학교 가서도 똑 부러져서 친구들한테 인기도 많았고, 할 말도 할 줄 아는 활달한 아이라 학생회장도 했었어요. 악기도 잘해서 고등학교 때는 악단 활동도 하고... 또 여행을 무척 좋아했거든요. 해외도 다니고 친구들이랑 사이가 얼마나 좋은지 여행갈 때마다 딸이 빠졌던 적이 없어요. 그렇게 좋아하는 여행을... 부모가 되어서 같이 가보지 못한 게...” 너무 안타깝고 아쉽다며 아버지는 눈시울을 붉혔다.

평범했던 일상이 캄캄한 나락으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상이었던 평범한 가족의 하루가 갑작스럽게 캄캄한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새벽에 울리던 그날의 전화를 가족들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경찰서라고 하는데 딸이 잘못됐다고... 듣고 있으면서도 믿기지가 않아서 막 몸이 덜덜 떨리는데 운전을 도저히 할 수가 없어서 아들과 반반씩 하고 갔어요. 하루쯤인가 뒤에 경찰이 알려준 병원 안치실로 가서 확인하고... 수사진행을 위해서 부검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딸은 교제 중에도 종종 집으로 찾아와 처음과 달리 남자친구가 험한 욕설이 잦고 행동이 난폭해 헤어지고 싶다고 얘기했다. 오래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잘 헤어지면 될 거라고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일이 가족에게 끔찍한 비극으로 닥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아버지는 전한다.

“뉴스에나 나오는 일이지, 내 딸에게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으니까... 그런데 그 놈이 사죄의 말 하나 없이 고개 빳빳이 들고, 밥 먹고 편하게 생활한다고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집에 불법 침입한 것도 모자라 구타를 당해서 온몸에 멍투성이고... 무서워서 도망치는 애를 다시 잡아 방으로 끌고 들어가서 43번이나 찔렀다는데... 딸 얼굴도 겨우 알아볼 정도로 엉망이 됐어요.. 근데 그 놈이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얘기를 경찰한테 들으니까 울화통이 치밀고 속이 갑갑해.. 어떻게 사람이.. 사람이 그런 무서운 짓을 해놓고도 잘못했다는 말 한번을 않는지.. ”

아버지는 딸에게 이처럼 참혹한 짓을 해놓고도 뻔뻔하기 그지없는 가해자의 진술을 경찰에게전해 듣고는 치미는 분노를 어떻게 해소할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일을 그만둘까도 생각했어요, 일을 다니면 뭐하나 싶어서.. 애가 그렇게 됐는데 일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고. 근데 집에 사나흘 가만있으니까 딸아이 생각에 너무 괴로워요, 차라리 바쁘게 일이라도 하고 있으면 생각을 멈출 수 있으니까. 그렇게 애엄마도 일하러 나가버리고 일 하다가도 딸 또래 아이들 뒷모습만 보면 왜 우리 딸이 그렇게 가야만 했는지... 하아..”

아버지는 말을 잇기 어려운 듯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습관처럼 주먹을 꽉 쥐어 봐도 참아내기가 어렵다는 아버지는 밥 때를 놓치기 일쑤고 뜨거운 밥을 뜨는 것조차 힘들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며칠 전 49재를 치른 가족은 딸을 가족들의 선산에 안장시켰다. 딸아이가 쓰던 물건을 일찍 정리해야만 하는 현실이 가족들은 아직도 낯설기만 하다. 집으로 들어서는 아버지의 매일은 지칠 대로 지친 몸을 뉘이다가도 문득 딸아이가 겪어야만 했던 두려움과 고통에 억장이 무너져 내려 쉬이 잠을 청할 수도 없다.

“아들이 보내준 사진을 한 번씩 봐요. 보고 싶으니까. 항상 보고 싶으니까. 제발 그놈 강력하게 벌 받게 해주세요, 우리 딸한테 그렇게 못된 짓을 해놓고 얼마 살고 나오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현재 관악구 데이트폭력 살해사건은 피의자 측의 연기로 3월 22일로 공판이 미뤄진 가운데 청와대국민청원게시판에는 누나의 안타까운 죽음을 알리는 동생의 글이 올랐다. ‘너뿐만 아니라, 너의 친구들까지도 모조리 찾아 죽이겠다’는 제목의 청원으로 “가해자가 치러야할 대가가 결코 가벼워서는 안된다”고 절실하게 호소하고 있는 내용이다. 가족들은 평소 사이코패스 성향이 강한 가해자가 적은형량을 마치고 사회로 나올 경우 일어날 수 있는 보복을 두려워 하고 있었다.

국민청원은 현재 79,129명(3월8일 18시기준)이 참여했으며 청원마감은 이달 21일까지다. 국민청원에 참여하는 모든 분들의 마음이 부디 피해자 유가족에게 큰 힘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같은 비극에 사회구성원들의 관심이 끊이지 않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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