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루의 맥락 4편 당진지역 독립운동사에 실린 흐릿한 이인정 사진
당나루의 맥락 4편 당진지역 독립운동사에 실린 흐릿한 이인정 사진

[당진신문=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 일제 검찰은 이인정에게 보안법위반, 소요, 출판법위반, 공문서위조행사 등을 적용하여 재판에 넘겼다. 결국 이인정은 10월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언도받았다. 하지만 이인정을 비롯한 대호지·천의장터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주동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항소하여 법정투쟁을 이어갔다. 그 결과 이인정은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으로 감경되었다.

그렇지만 이인정은 경성복심법원의 감형판결에 만족할 수 없어 다시 상고하였다. 이인정은 상고 이유로 “우리의 행위는 조선민족으로서 정의 인도에 기본하여 전개한 의지의 발동으로 범죄에 있지 않다. 그리하여 제1심, 제2심에 있어 받은 바 있는 유죄판결은 부당하므로 복종할 수 없고 위법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상고의 목적이 감형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공개된 재판을 통해 조선민족은 독립해야 하고 독립만세운동은 정당한 의지의 발동이기 때문에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주장으로 일제에 대해 끝까지 법정투쟁을 전개하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법정투쟁은 당시 민족대표 33인을 포함한 수많은 3.1혁명 관련 체포자들과 비교해 봐도 쉽게 볼 수 없었던 당당한 주장이다.

이러한 이인정의 주장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의 부당성을 항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일제가 3.1혁명을 폭력행위로 몰아 처벌하려는 행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제의 합법적 공개재판의 허구성을 규탄함으로써 법정투쟁을 통해 또 다른 형태의 독립운동을 수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제는 1920년 2월7일, 이인정의 정당한 주장에 대해 “원심 적용의 법조에 해당한 것이 명확하며 범죄가 아니라는 주장은 이유가 없음”으로 기각한다는 판에 박힌 판결을 내렸고, 이인정은 1년형이 확정되었다. 이인정이 수감생활을 한 곳은 서대문형무소였다. 서대문형무소의 수감생활은 지옥에 다름 아니었다. 이미 대호지·천의장터 독립만세운동으로 수감되었던 김도일, 박경옥, 이달준은 공주형무소에서 옥중순국하였을 정도로 일제의 고문과 만행은 극에 달해 있었다.

이인정의 수감생활에 대해서 매일신보는 “칠흑같은 우중충한 감옥에서 흰죽과 콩밥으로 단배를 주리면서 그물뜨기와 피나마 만들면서 향촛농으로 늦은 불빛을 모악재의 검은 빛을 시름없이 보내던”이라는 표현으로 보도를 하였다. 이를 통해 62세의 고령이었던 이인정의 징역살이가 어떠했을 것인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인정은 1920년 8월7일 “왕세자 가례의 은사로 인하여 각 육개월로 감형이 되어” 출소하였다. 영친왕 이은이 1920년 4월28일 일본에서 가례를 올리게 된 것을 기념하여 이인정이 6개월을 감형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인정에게 확정된 징역 1년형은 6개월로 감형되었는데도 1년 4개월 동안이나 징역살이를 한 셈이 된다. 이것으로 보아도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합법을 가장하여 얼마나 악랄하게 탄압했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인정이 출옥하던 날 서대문형무소 앞에는 수많은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들었다. 그때의 분위기를 매일신보는 “모두 희희락락한 얼굴로 옥문을 나와서 마침 기다리고 있던 그의 가족과 서로 만나는 과정은 세상에 어찌 이에 지나가는 반김이 있으리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의 눈물을 참지 못하겠더라”고 묘사하였다.

출옥한 이후 이인정은 가산이 기울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제가 독립만세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물적, 인적 피해는 물론 막대한 재판비용을 이인정을 비롯한 주동자들에게 연대책임을 지웠기 때문이다. 특히 조카인 이대하는 징역4년 및 벌금 30원을 언도받아 이인정 가문의 경제적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대호지·천의장터 독립만세운동의 주동자였던 이인정 집안은 경제적으로 몰락하여 가산을 처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1927년 정미면 산성리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이인정은 1934년 75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빌어 먹게 되고, 친일을 하면 누대가 영화를 누린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한 말인 듯해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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