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신문 오피니언] 허 허 참! 속으며 사는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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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진신문
  • 승인 2019.03.01 07:30
  • 호수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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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새봄에 띄우는 깨달음의 메시지
칼럼니스트 강정의
칼럼니스트 강정의

[당진신문=강정의 칼럼리스트]

지금 생각하는 그 생각을 알아차려라. 무슨 말인가 ?

순간순간 생각하는 것을 자각하며 살아가라는 말이다. 자각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다 한때이고 부질없는 일들에 집착을 하고 산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당신의 생각이 덧없는 줄을 모르고 속고 사는 때가 많다는 말이다.  덧없는 줄 알면 속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다. 보통 우리의 생각은 자신의 업에서 나오는 업상이기에 그 업으로부터 나오는 생각은 자신의 주관적인 것임으로 그 주관적인 생각을 객관화 시키며 살아가라는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은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곤 보통 사람들에게 다 해당된다. 특별한 사람이란 평소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어 있음을 자각하고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깨닫고 사는 사람만이 그러한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자기의 생각은 내가 누구인데라고 생각하는 말라식 즉 오염된 마음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고 그 마음을 객관화된 마음으로 돌려 생활하는 것이 마음을 닦는 수행자들의 일상 생활 모습이다. 수행자들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에 대한 생각들은 모두 내 생각이라는 것에 일단 오염되었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전식득지(轉識得智)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알음알이 즉 식을 지혜로 바꾸어 살아가라는 말이다. 지금 생각은 나 라는 주관이 있어 보고 듣고 느낀 것이기 때문에 그 나 라는 것을 없애고 객관적으로 보고 듣고 느끼라는 말이다. 객관적으로 알아차리라는 말은 곧 진리에 합당한 생각을 하라는 말이다. 자신의 생각을 비우고 진리로운 생각을 하며 살라는 말이기도 하다. 속지 말고 살라는 말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자각하고 그 마음을 돌려 바른 생각 즉 지혜로 살아가라는 말이다. 

나 라는 것이 있어 보고 듣는 것과 내 생각을 비우고 그것을  보고 듣는 것은 전혀 다르다. 내 생각을 비우고 보고 듣고 한다는 말은 집착심을 비우고 보고 들으며 지내라는 말이다. 나 라는 생각이 작용할 때 멋있고 아름다운 것 좋은 것들은 나라는 생각을  비우고  대하면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 자신이 볼 때 내 자식들이 제일 잘 생겼다고 볼 수있지만 나라는 생각을 비우고 볼 때는 그렇지가 않다.  우리가 잘못 보고 듣고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은 보는 대로 보는 것이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체가 없는 것을 있다고 생각하고 한 때인것을 영원하다고 생각하며 사는 게 속으며 사는 삶이다. 모든 것은 다 인연으로 이루어져 한 때 존재하는 것이지 영원한것은 없다. 그렇게 보는게 참모습인  실상을 보는 눈이다. 우리는 무엇을 볼 때  늘 나 라고 하는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본다. 무엇이 실상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잘못 본 것이다. 나를 나 라는 실상으로 본다면 잘못보는 것이란 말이다. 나 라는 나는 순간순간 변하는 나 이지 고정된 나는 없다. 변하기 때문에 나의 실상은 변하는 나 이고 변하기는 변하는데 나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무아라고 한다. 무아인 내가  실제의 나라고 생각하면 좋다. 모든 것들이 다 인연 화합으로 이루어진 이치를 모르면 속으며 살게 된다. 인연이 계속되는 것은 한 때다. 다 한 때의 모습이라는 이치를 모르면 속고 사는 것이 된다.

속지 않고 살려면 있는 그대로를 보고 살아야 한다. 있는 그대로라는 말은 지금은 있는 것처럼 보이나 변하는 성품 때문에 그 고정된 참 모습은 없다는 생각으로 보라는 말이다. 변하는게 참 모습이다. 無常함의 모습이 實相이다. 있는 그대로란 진실의 모습을 말하고 진실의 모습은 곧 실상의 모습인  진리의 모습을 말한다. 진리란 자연의 이치를 말하고 자연의 이치란 모든 것들은 다 덧없고 한때이며 변하는 무상한 법칙을 말한다. 이 찬란한  새봄에 삼라만상 모든 것들이 변함을  보이고 있다 그 변함의 이치가 진리의 모습으로 보면 좋다. 모든 것은 찰라찰라 변하기 때문에 고정된 실체라고 하는 것은 없다라고 보는 게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며 진실을 보는 것이고 그러한 생각을 지혜라고 한다. 바로 말해서 우리 인생이 덧없음을 알고 사는 것이 지혜로 사는 것이며 속지 않고 사는 삶이라고 볼 수가 있다.  그런데 그런 무상하고 허망한 이치를 모르고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것들이 어떤 실체가 있는것처럼 착각하고 거기에 끊임없이  끌려 다니는게 보통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다. 안타까운 마음이 소리가 되어 나오는게 허 허  참이요  속지 말고 살라 라는 말을 전하고 싶지만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속지 말고 살라고 알려 주고 싶은데 무슨 말인지 모를 수도 있고 또 오해를 할 수도 있다. 다행히 바로 아는 사람은 정말 복을 받는 사람이다. 다른 게 복이 아니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은 시원하게 이런 말을 소화한다. 자기가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게 자신의 업을 보는 깨달음이다. 업을 보면 마음을 돌린다. 한 생각 돌리면 그곳에 바로 진리의 세상이 보인다. 덧없는 세상이 보인다  지금 당신의 그 생각을 돌려보라. 허상에서 실상을 보라.  순간에서 영원을 보라. 어리석음을 떠나 지혜란 어떤것인가를 보라. 어둠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온 기분을 맛보아라.  

내 삶 속에 금 은 보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축복이 있음을 한 생각을 바꿈으로 그 곳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이 덧없고 허망함을 보라. 허무주의가 아니다. 실상이 그러한 모습이다. 허망함이 곧 우리의 인생이고 내가 믿어야 할 법이다. 허망함을 믿으면 허망한 인생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저 모든 것 자연의 모습이 그러하듯이 다 그러려니하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변한다. 이제까지 보던 세상이 달리 보인다.

세상이 바뀐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바뀌면 그렇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게 속으며 사는것이요 어리석게 사는 것이다.
아이고 저러니 ! 허 허 참 - 속으며 사는 줄 모른다.
덧없는 게 인생인데 덧 없는 줄 모르며 속고 산다.
諸行이 無常한 진리를 깨달으면 지금과 같이 덧없는 것들에 속으며 살지 않는다. 세상의 근심 걱정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삶을 산다.  속고 사는 줄은 오직 깨달은 사람만이 안다.
진리의 깨달음에서 오는 법열의 즐거움은 다른 즐거움과 다르다.
밖으로 뛰어나가 한바탕 덩실 덩실 춤을 추고 싶을 것이다.
좋다 좋다 좋구나, 바람아 불어라,
비야 내려라,  벌나비 친구들아 나와 함께 춤을 추자. 
삼라 만상 친구들이  함께하니 참 좋다.
모든 것들이 다 한 때라는 공함을 깨달은 진리의 경지에 들어 살면 이 풍진 세상을 만나서 살아도 좋다. 이 좋은 봄날에 ‘나는 깨달았다. 참 좋다, 가 저절로 나오는 새 희망가를 부르며 살아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