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호 칼럼■

 새 아침이 밝았다.
 2010년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 것이다.
 금년은 간지(干支) 로는 경인(庚寅)년, 띠로는 호랑이띠의 해이다. 새해가 오면 사람들은 저마다 새로운 결심을 한다.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서이다. 지난해가 저물던 무렵, 새로운 결심을 하기위한 새로운 화두를 만들기 위해서 모두들 안간힘을 썼을 것이고, 더러는 그것을 찾아 거리를 헤매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해마다 거치는 통과의례이기 때문에 안 보고도 다 비디오처럼 펼쳐져 보이는 광경이다.
 새해가 되면 저마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요란한 구호를 내건다. 그리고는 힘찬 출발을 한다. 그 거창한 계획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다 완벽하게 달성할 것을 다짐하며, 벌써 거진 다 달성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고 시퍼렇게 벼린 장검을 빼어 휘두르며 구호를 외친다. 외치는 구호 소리는 자신만만, 우렁차기도 하다. 천하가 다 그 손 안에 들어 있고, 우주의 모든 질서까지도 그 손짓 하나하나에 달려있기라도 하다는 기세다. 날 선 장검이 벼르며 내뿜는 서기(瑞氣)는, 내 가는 길에 “거칠 것 무에냐!”이다. 그 호기 만당에 가득하다.
 그리고는 시간이 가고 또 세월이 조금씩 흐르면서 그것은 왜 그리도 쉽게 무뎌지고 흐물흐물 허물어져 내리는 것이었던지. 그 서릿발 같던 기세는 다 어디로 날아 가버리고 만 것인지, 그 호기는 다 어디에 묻혀버리고 만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어진다. 결국 누구도 그 화려했던 출발을 증명할 아무 방법도 없이, 그저 허무개그의 한 토막을 아주 짧게 감상했을 뿐이라는 자조에 빠져들게 된다.
 이런 결과의 이유는 간단하다. 한마디로 덧셈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계획을 세울 때 보면, 언제나 지난 계획에다 새로운 것을 덧대고 보태고 있지 않은가. 지난 계획에서 부족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따져서 그것을 보충하고 채우기에 급급한 덧셈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그것은 부피가 점점 더 늘어가고 무게가 점점 더 늘어가니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덧셈 뺄셈의 논리는 정치판에서 곧잘 강조되고 있는데, 정치판은 덧셈을 해야 한다고 고집하고, 뺄셈을 부정한다. 정치판에서는 덧셈이 절대 환영을 받고 있다. 그들은 덧셈으로 더불어 사는 상생을 말하고, 함께 어울려 가는 화합을 논한다. 보태는 것 더하는 것을 선(善)으로 여기고, 더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건 일단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로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더해서 손해 볼 것 없다는 생각인 것이다. 더하면 뭐든 윤택해지지 않는가, 라고.
 반면에 뺄셈은 그들에게는 부정을 뜻한다. 그들이 뺄셈을 기피하는 것은, 뭐든 줄어들어서 좋을 게 없다는 단순논리다. 무엇이 되었건 줄어들면 우선 분배의 몫도 줄어드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결국 내 몫이 줄어드니 좋아할 수 없다는 논리다.
 이런 경우는, 군더더기를 떼어버려야 가벼워져서 활동이 용이해지고 활동영역도 넓어진다는 당연한 것, 바로 한 발 앞을 생각하지 않는 근시안에 불과한 것인데도.
 덧셈은 저쪽으로 밀어서, 좋아하는 이들이나 실컷 즐기게 두고, 뺄셈을 해보자.
 우선 내게 있는 물욕을 잘 챙겨서 빼버리자. 몸무게가 조금 가벼워지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모든 욕망도 빼자. 명예도 빼고, 권세도 빼버리자. 거짓을 빼자. 몸이 더 좀 가벼워 질 것이다. 마음도 같이 가벼워져야 한다.
 위선을 빼버리고 술수도 빼자. 허영을 빼고, 사치도 빼버리자. 교만도 챙겨서 빼버려야 한다. 이제, 훨씬 더 가벼워져야 한다. 몸도 마음도 함께 더욱 가벼워져야 한다. 편안해져야 한다. 편안해지는 것은 덤이지만 기본이기도 하다. 아주 편안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뺄셈을 한 것이 아닐 수 있으니 유념할 일이다.
 뺄셈을 하되 절대 빼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제일 먼저 의무다. 어느 경우든, 인간으로서의 책무는 다해야 할 터이니까. 그리고 사랑이다. 연민이다. 고고함이다. 당당함이다. 그리고, 그리고 눈물이다. “더러는 /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生命)이고져”라고 김현승이 노래하는 눈물은 꼭 남겨두어야 한다. 눈물 없는 인간이 인간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임을 증명하는 최후의 수단이고 호소이며, 맨 마지막 증거가 되는 것이 바로 이 눈물이기 때문이다.
 뺄셈을 하되 꼭 챙겨서 갖춰야 할 것도 있다. 심미안(審美眼)이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찬양할 수도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보지 못하고, 그래서 아름다운 것을 보고도 찬양할 줄도 모르는 인생이란 얼마나 황량하고 쓸쓸하고 허무할 것인가.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욕심을 버리자는 것이, 위만 죽어라고 쳐다보지는 말자는 것이, 작은 거인이 되어보자는 것이 사설(私說)만 길어졌다.

 이아침 나는, 가난하지만 부끄럽지 않게, 가난하지만 가장 풍요롭게 사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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