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

대호지면사무소 앞에 세워진 ‘3·1운동순국선열영세추모비’
대호지면사무소 앞에 세워진 ‘3·1운동순국선열영세추모비’

[당진신문=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 대호지 천의장터 독립만세운동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인물은 여럿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대호지면 면장이던 이인정의 역할이 매우 컸다. 면장이 직접 독립만세운동을 하고 나섰기 때문에 대호지면 면민들이 모두 독립만세운동을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인정은 대호지 천의장터 독립만세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할만하다. 실제로 전국에서 전개된 수많은 3.1독립만세운동이 있었지만, 면장이 직접 나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경우는 매우 드물었고, 이러한 점에서 당시에도 주목을 끌기 충분했다.

이인정은 1859년 생으로 1919년 당시 61세의 고령이었다. 이인정은 대호지면 사성리 510번지에 살았는데, 사성리에는 이인정 가문인 전주이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이인정은 1894년 과시에 합격하여 한말 벼슬길에 올랐고, 1897년에는 오늘날 경북 경산시에 속하는 자인군의 군수가 되었다. 『고종실록」에 의하면 이인정은 1898년 7월까지 자인군수로 재직했음이 확인되지만, 1899년 3월8일 『승정원일기」에는 전 자인군수 이인정에 대한 징계를 해제했다는 기사가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인정은 좋지 않은 일에 연루되어 그 이전에 징계를 받았고, 1899년에는 자인군수를 그만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인정에 대한 기록은 1908년 기호흥학회 해미지부 명단에서 확인된다. 기호흥학회는 정영택 등 기호지방 인사들이 1908년 1월 민족자강을 위한 교육계몽운동을 목적으로 창립한 단체로 1908년 7월에는 기호흥학회 해미지회가 설립되었다. 기호흥학회 해미지회는 설립 당시 임원으로 김용학, 윤세영 등과 함께 이인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이인정은 자인군수를 그만 둔 이후 해미군에 속해 있던 대호지에서 애국계몽운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인정이 대호지면장으로 취임한 것은 1914년 4월1일의 일이다. 일제의 지방 행정 개편에 따라 이인정이 초대 면장이 된 것이다. 이인정은 1919년 4월4일 당시에도 여전히 면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일제강점 초기 일제는 강력한 무단정치를 통해 조선인을 통제하였다. 따라서 면장은 일제 통치기구 중 말단 행정기구의 장으로 일제에 협조적이었을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이인정이 대호지 면장으로 대호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한 것은 장남인 이두하와 조카 이대하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1919년 고종의 갑작스런 서거로 대호지 유생들이 인산에 참여하기 위해 경성을 찾게 되었는데, 이때 이두하와 이대하가 함께 한 것이다. 이밖에도 대호지에서는 고종의 인산을 보기 위해 여럿이 함께 했는데, 남주원, 남상돈, 남상락, 남상직, 남계창 등이다. 이들은 대호지에 돌아와 이두하, 이대하 등과 함께 경성에서 본 3.1독립만세운동을 대호지에서 펼치기로 결의하였다.

이에 따라 이인정의 조카인 이대하의 생일을 이용하여 구체적인 논의를 전개하게 되었다. 이 자리에는 이인정, 남주원, 송재만, 남상돈, 이춘응, 남상집, 한운석, 남상락, 남상직, 이대하, 남상은 등 40여명이 참석하였다. 면장인 이인정이 처음부터 이들과 뜻을 같이 했는지, 의도적으로 이인정을 끌어들이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 자리에서 이인정은 총 책임자가 되었다. 이로써 대호지 천의장터 독립만세운동은 대호지면 전체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인정을 비롯한 주동자들은 독립만세운동을 확대하기 위해 인근 주민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4월4일 천의장에 맞추어 대대적인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거사에 필요한 책임부서를 차례로 정하였다. 그리고 4월2일 각리 구장들에게 대호지면 명의의 “도로수선병목정리의 건”이라는 공문을 방송하여 각 마을에서 집집마다 1명씩 대호지면 사무소로 모이게 하였다. 대호지면에서 공문을 통해 전달되는 일이니 만큼 4월4일 당일 8시에는 아침 일찍부터 도로정비를 위해 수많은 면민들이 면사무소로 모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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