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신문 오피니언] 누구나 존엄한 삶을 살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당진신문 오피니언] 누구나 존엄한 삶을 살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
  • 당진신문
  • 승인 2019.02.04 07:00
  • 호수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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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의회 총무위원장 조상연

[당진신문=조상연당진시의회 총무위원장]

나는 결혼 후 몇 년을 제외하고 줄곧 장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쌍둥이를 키우기 벅차하는 아내를 돕기 위해서, 맞벌이를 하는 자식들 때문에, 장모님은 우리 가족과 사셨다. 이제 남은여생도 함께 할 것 같다.

처음엔 장모님이 우리를 먹여 살리셨다. 사실상 우리를 데리고 사신 셈이다. 그러나 세월에 장사 없듯 장모님은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연세가 드시면서는 간을 못 보시므로 주방을 물려주셔야 했고, 체력이 딸려 텃밭농사도 시큰둥해지셨다. 노인 일자리에서 탈락하신 후부터 현저히 삶의 의욕이 낮아지신 것으로 보인다.

요즘은 우리가 장모님을 모시고 산다. 점점 아이가 되어 가시는 장모님을 보면서 그동안 우리가 받았던 보살핌을 돌려받으시려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작년부터 장모님은 주간보호센터에 나가신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가지 않겠다 버티셨다. 장모님은 낯선 곳을 두려워하셨고, 주간보호센터에 가는 것을 생이별로 생각하셨다. 모두 출근한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길을 잃을까 나가지도 못하시고 우두커니 계시는 것이 좋을 리도 만무하였다. 몇 달을 설득하고 달래서 결국 센터에 다니시게 되었는데 ‘노치원’이 따로 없다. 지금은 잘 적응하셔서 아침이면 스스로 차려입고 기다리신다.

하지만 나는 두렵다. 장모님은 계속 상태가 나빠질 것이고, 결국 우리 가족은 버틸 만큼 버티다 생이별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돌봄은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다.

2018년 6월 기준으로 당진의 65세 이상 노인 비율은 이미 대호지 41.9%를 위시해서 고대, 정미, 면천, 순성, 우강이 30%를 넘었고 합덕과 석문 역시 20%를 넘고 있다. 당진 전체는 17.1%로 당진 1, 2, 3동과 송악을 제외하고 당진은 이미 초고령화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노인의 57.6%가 거동이 불편해도 살던 곳에서 여생을 마치고 싶어한다.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시설거주 장애인의 약 57%가 시설 밖에서 거주하고 생활하는 것을 희망하고 있다. 지금처럼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격리하는 시스템은 가족도 본인도 불행한 시스템이다. 우리는 그동안 노인, 장애인 등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느라 삶이 피폐해 지거나, 그들의 의사와는 달리 그들을 격리하여 생이별을 하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 당해왔다. 노인은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과 사느라, 가족은 비용을 대느라 어려웠다. 여기에 더해 죄책감까지 시달려야 했다.
 
커뮤니티 케어라는 개념이 있다. ‘돌봄을 필요로 하는 주민들이 자택이나 그룹홈 등 지역사회에 거주하면서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복지급여와 서비스를 누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며, 자아실현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려는 혁신적인 사회서비스체계’라고 정부는 정의한다.

노인의 주거불안정을 해소하고. 예방차원에서 건강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지원과 의료연계를 한다. 또한 장기요양체계를 적극 활용하며, 각각의 사회보험영역과 공공부조 영역, 종합병원과 보건소 등의 의료영역, 주거영역과 교육영역 등 다양한 직종의 영역들 간의 서비스연계가 가능하도록 각각의 영역이 함께 동참하는 것이다. 가족 간 서로 부담이 되는 관계를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가족 모두가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커뮤니티 케어’다.

정부는 2019년 6월을 기점으로 노인 4개 지자체 등 총 8개의 기초지자체를 대상으로 커뮤니티 케어 시범사업을 운영하고 2022년 후에는 전국적으로 확대한다. 당진시는 전국 260여개의 지자체 중에 4개만 선정하는 노인 커뮤니티 케어 시범사업에 용감히 도전했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이를 위해서 기관 단체가 모여 단체협약(MOU)을 맺는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당진시민들이 걱정을 덜게 됐으면 좋겠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이 말은 이제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누구나 존엄한 삶을 살기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마을은 더 이상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곳이 아니다. 언젠가는 노인이 될 우리 모두의 미래에도 마을이 필요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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