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선 세한대학교 경찰소방대학장

[당진신문=정용선 세한대학교 경찰소방대학장]

IMF 이후 ‘경제위기’라는 말이 만성화되기는 했지만, 요즘 들어 느끼는 ‘경제위기’의 중압감은 이전과 사뭇 다르다. 자영업자들의 주름살은 펴질 줄 모르고, 각종 지표도 희망보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2017년 순이익률이 마이너스인 제조업은 금융위기 이후 최대치인 22.8%를 기록했다. 10곳 중 2곳 이상이 이익을 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특히 소규모 개인 사업자가 대다수인 숙박ㆍ음식점업은 무려 47.4%가 적자였다. 손해 보면서 장사한다는 말이 뼈저리게 다가온다.

17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은 실업률도 우울하긴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이 배가 불러 좋은 일자리만 찾으려 한다고 치부할 수도 없는 지경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20년 넘은 동네 김밥 집 까지 문 닫게 만들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10년 연속 무역 흑자, 사상 최대 수출액 등의 화려한 실적은 8천 원짜리 찌개를 파는 동네 사장님에겐 그저 남의 동네 이야기일 뿐이다. 그나마 믿고 의지하던 반도체 산업마저 지난 해 4/4분기 이후 이익이 급감하면서 혹독한 시련을 경고하는 알람이 곳곳에서 울려댄다.

설상가상으로 새해 벽두부터 서민주택 공시가격 10% 인상 등 부동산 보유세 폭탄, 소득없고 집 한 채 뿐인 은퇴자도 건강보험료 20% 이상 인상, 3년 만에 보험료 3배 껑충, 후시딘 11~15%·쌍화탕 15% 등 일반약 공급가 줄줄이 인상 등 물가 인상 소식도 줄을 잇는다. 중산층과 서민들은 앞으로 살아갈 일에 한숨 밖에 나오지 않는다.

우리 경제의 이 같은 객관지표보다 더욱 큰 걱정은 경제에 대한 자신감과 흥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30대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800조 원을 넘었음에도 투자를 주저한다. 주식시장은 연초부터 불안한 흐름세를 이어가며 언제 뇌관이 터질지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일성으로 경제를 외쳤지만 위축된 심리에 자극을 주기엔 역부족인 것 같다. 그럴 법도 하다. 논쟁을 넘어 정쟁으로 치닫고 있는 최저임금과 소득주도성장 문제를 놓고 국민들이 기운을 내길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 아닌가.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은 지난 2일 KBS 토론회에서 “지금의 경제위기론은 보수진영의 이익동맹에서 비롯된 오염된 보도”라고 일축했다. 이제는 경제 위기가 맞느냐, 아니냐의 다툼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젖소가 건강해야 품질 좋은 우유를 생산할 수 있다. 지금은 젖소가 부실해진 이유를 두고 네 탓 공방을 하기보다 힘세고 활기 넘치는 젖소를 기를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해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실천이 안 되고 있을 뿐 전문가들이 제시해 온 대안들이 수없이 많다. 노동의 유연성 확보, 미래 먹거리나 첨단산업 분야에 대한 정부 규제의 과감한 철폐, 기업투자 유인, 적극적 시장 개방 등을 통한 경제 체질 개선이 그것이다. 어려울수록 원칙과 원론적인 접근이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뉴질랜드가 좋은 본보기이자 성공적인 모범 사례다. 1960년대까지 세계 3대 복지국가 반열에 오르며 호황을 누렸던 뉴질랜드는 1970년대 들어 오일쇼크와 영국의 무역특혜 축소로 국가부도 직전에 몰렸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노동, 농업, 금융 등 전방위적인 개혁정책이 시행되었다. 노동자들의 노조가입 의무화 규정을 폐지하여 노동의 유연성을 높이고, 과감한 외국자본 유치와 시장 개방을 통해 산업의 자생력을 높였다.

반발도 컸지만 뚝심 있게 밀어붙인 개혁의 효과는 긍정적이었다. 노조 가입을 자율화하면서 중앙집권적이고 경직됐던 노조 운영방식이 각 사업체별 개별 노조활동 위주로 변모했다. 농민들은 각종 보조금 축소로 ‘뉴질랜드 산업의 근간이 무너질 수 있다’고 성토했지만, 당초 10% 가량이 농업을 포기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실제로는 1%만이 타 업종으로 전환했다.

농업 분야의 경쟁력이 강화된 것은 당연하다. 관세율 인하에서 시작된 과감한 시장 개방은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체질 개선의 발판이 되었다.

뉴질랜드의 사례는 단기 처방과 선심성 정책으로는 근본적인 경제 활성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금 모으기로 역경을 이겨낸 과거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 폭풍우로 폐허가 되기 전에 먹구름이 짙게 드리운 지금 행동에 나서야 한다. 위정자들 말마따나 경제가 위기상황이면 어떻고, 위기가 아니면 어떤가.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개혁과 체질개선이 필요하고 더는 시기를 늦출 수 없다는 점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불필요한 논쟁에 역량을 소모할 여유가 없다.

뉴질랜드는 30년이 넘는 개혁추진 과정에서 수차례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개혁 기조가 꾸준히 유지되었다. 정권 교체기마다 지난 정부의 흠을 들추고 성과를 깎아내리는 우리 현실에 비춰보면 부럽고 샘까지 난다. 갈 길을 정확히 알면서도 이익집단에 휘둘려 정부의 손발이 묶이고, 국회는 표를 잃을까 노심초사하는 현실이 답답하다.

일자리가 없어 고민하는 청년들과 하루 매출을 보며 한숨짓는 자영업자를 보듬어줄 곳이 없다. 이제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고민할 시점이다. 정치적 적폐보다 경제 적폐를 해소하는 데 정치권이 힘을 합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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