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

신태순
신태순

[당진신문=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 신태순이 천도교 중앙총부에서 활동하면서 3.1혁명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확인할 기록은 없다. 다만 그의 석비에 기록된 비문에는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분연히 광복운동에 헌신코자 상경하여 천도교 중앙총본부 서무위원으로 손병희 선생을 도와 1919년 기미독립선언과 만세시위를 음우(陰佑 남 몰래 도움)하시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이 비문대로 신태순이 천도교 중앙총부의 간부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드러내 놓고 3.1혁명에서 활동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3.1혁명에서 겉으로 드러난 모든 것은 손병희를 비롯한 일부 천도교 원로와 간부들이 개입하여 활동하였지 천도교 중앙총부는 박인호가 4대 대도주로 있으면서 공식적으로는 3.1독립선언이나 만세시위에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박인호를 비롯한 천도교가 처음부터 조직적으로 역할 분담을 하여 개입했던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학계의 정설이기도 하다.

따라서 신태순이 천도교 중앙총부의 간부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3.1혁명에 직접 개입하여 활동하지 못했던 것이고, 남몰래 도와주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남몰래 도와주는 역할이란 3.1혁명에 대한 소식을 전하고 사람을 연결해 주는 역할이었을 것인데, 이런 측면에서 보면 1919년 3월10일 당진면에서 준비된 천도교 당진교구 중심의 만세시위 사건에도 신태순이 어떤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당진은 신태순의 고향이었고, 그의 6형제는 모두 동학에서부터 천도교에 이르기까지 당진교구의 교구장을 역임하는 등 당진을 대표하는 유명한 천도교 간부였기 때문이다.

신태순 6형제는 삼남인 신태순과 신태호(申泰鎬), 신태상(申泰相), 신태익(申泰益), 신태철(申泰哲), 신태수(申泰秀) 등으로 3남인 신태순 뿐만 아니라 이들 6형제 모두 독립운동에 기여한 인물들이다. 신태순 6형제의 독립활동으로는 6형제의 재산을 모아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기도 한 것인데 이는 우당 이회영 6형제의 독립운동을 연상케 할 정도이다. 이렇게 독립운동에 대한 신태순 6형제의 성품을 고려할 때, 신태순이 3.1혁명에서 손병희를 도와 남몰래 도와주는 역할을 하였다면, 가장 먼저 고향인 당진의 6형제를 통하여 3.1혁명 소식을 전하고, 당진면에서 만세시위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신태순의 활동은 3.1혁명 이후 보다 더 분명하게 민족운동에 전념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1923년부터는 민립대학 기성회 조직에 가담하여 전국을 순회하며 기금조달에 주력하였다. 이후 1927년에는 천도교 청년동맹 중앙대표 직책을 맡았고, 우리 민족의 단일항일단체인 신간회가 조직되자 경성지회의 총무간사를 맡아 활동하였다. 이후 당진으로 귀향한 뒤에는 신간회 당진지회 설립에도 기여하였다.

당진에서의 활동은 천도교를 중심으로 진행하였는데, 동아일보 1925년 9월7일 기사에 당진청년회에서 ‘나의 관념’이란 주제로 강연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렇게 신태순은 항일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고, 이로 인해 일본 관헌에게 수차례 연행되어 고초를 당하였다. 이렇게 일본경찰의 심한 고문으로 인한 충격은 신태순을 향년 45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게 하였다. 신태순이 고향집에서 영면한 것은 1929년 9월9일의 일이다. 신태순의 장례는 당진 최초의 사회장으로 치러졌는데, 독립운동을 함께한 동지, 전국의 천도교인, 당진군민 등 지방 각급 사회단체에서 참가하여 신태순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그의 죽음을 기리고자 하는 장례식을 통해 보면, 그가 평소에 어떤 삶을 살았던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게 한다. 신태순의 무덤은 고향인 대덕리 토골에 모셔졌다가 이후 당진시 대호지면 출포리 가족묘지로 이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독립운동에 헌신한 신태순의 공적을 기려 1980년에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였고, 1990년에는 건국 훈장 애족장으로 등급을 올려 추서하였는데,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고 볼 것이다.

신태순 선생 묘소 비석
신태순 선생 묘소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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