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호 칼럼■

 

장마의 끝자락 즈음인 8월도 중순으로 접어들던 어느 날, 용현계곡에 가기로 한 날이다. 며칠간 오락가락하던 장마가 이른 아침부터 비를 뿌렸다. 비는 새벽에도 내려서, 빗소리에 잠을 깬 나는 약속된 일정을 염려하기도 했었다.
오전 내내, 이제나저제나 좀 그쳐줄려나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비는 오히려 더 내렸다. 그만 둘 마음이 전혀 없다는 듯 간간이 장대비를 쏟기까지 했다. 비가 그쳐주면 고맙겠지만 그치지 않는다 해도 그만이다. 오는 대로 맞아주자고 맘 편히 먹고 출발했다.
서산시 운산면으로 618번 도로를 타고 고풍저수지를 지나면 바로 용현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선다. 이 길로 조금 더 들어가면 보원사지(普願寺址)를 만나게 되는데, 신라 말에서 고려 초 사이에 있었던 절터라고 한다. 사적 316호로 지정된 이곳에는 건물은 없고 넓은 절터에 보물 5점이 있다. 지난해부터 부여박물관 주관으로 유물조사를 하고 있다.
비가 내려 이곳저곳이 파헤쳐진 채로 작업이 중단된 절터에는 5층석탑(보물 104호)을 비롯한 보물들이 띄엄띄엄 서 있었다. 그들은 천년도 넘었을 시간을 덧입고 서서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비 내리는 발굴현장에는 옛사람은 간 데 없고 도무지 떠날 수 없어 켜켜이 쌓여만 가는 그 옛날의 시간들이 모여앉아 옷자락을 여미고 있다. 무심한 장대비는 그런 사연 따위 알지도 못한 채 그들이 여며 잡은 역사의 틈바구니에다 그저 열심히 빗물만 쏟아 붓고 있다.
산장에 도착했다. 집터가 산의 속살을 그리 깊이 파고들지 않아서 뜰이 넓고 산이 멀다. 계곡에서 뻗어 내린 좁다란 들판의 가장자리로 조그만 개울이 돌돌거리며 산발치를 따라 흐르고 있다. 맑은 날 이 개울에 발을 담그고 소리마당을 펼치려 했던 것인데, 오늘은 틀렸다.
일행은 셋이다. 소리를 하러, 아니 내 입장에서는 소리를 들으러 왔다. 모 단체의 지부장인 지인이 창(唱)배우는 이를 알고 있는데 나도 안면을 익히고 있었다. 배우고 있다하여 초보가 아니고, 사사(師事)하는 스승과 함께 지방의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니 문외한인 내 소견으로 그는 중간수준을 넘어 섰지 않나 싶다.
본채(산장)에서 식사를 하고. 드디어 빗속에 장구를 둘러메고 개울가로 나섰다.
 한쪽 다리를 물속에 담그고 선 방갈로는 들이친 비의 흔적으로 바닥이 얼룩져 있다. 안주가 차려지고 상위에 막걸리 주전자가 올라앉았다. 소리를 하고·듣고 하려면 역시 막걸리가 어울릴 것이다. 우리의 풍류가 그러했을 터이다. 막걸리가 한 순배 돌고, 이윽고 장구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짜증은 내어서 무엇 하나, 성화는 받치어 무엇 하나 ----- 꽃을 찾는 벌 나비는 향기를 좇아 날아들고, 황금 같은 꾀꼬리는 버들사이로 왕래한다 / 니나노 늴리리야 ----”

‘태평가’가 굿거리장단으로 펼쳐졌다. 노래하는 이이는 40 중반을 넘어선 여인이다. 읍내에서 식당을 경영하는데, 참 험난한 세상을 어렵사리 그러나 당당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며, 남은 생도 그렇게 당당하게 사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체구가 작고 여린듯하지만 여장부다. 누군들 세상을 쉽게야 살아왔을까만, 그의 삶의 우여곡절도 만만치가 않아서 책으로 여러 권을 엮고도 남으리란다. 이어서 굿거리장단의 ‘늴리리야’가 펼쳐진다.

“늴리리야 늴리리야 니나노 난실로 내가 돌아간다. 니일 늴리리야. ------ 왜 왔던고 왜 왔던고 울리고 갈 길 왜 왔던고, 니일 늴리리야”

장구를 치는 지인은 장구 괭과리 등 악기뿐 아니라 소리에도 일가견이 있는 분이다. 그가 추임새를 넣으며 함께 어우러져 끌어내는 소리는 내겐 여느 명창의 소리나 진배없이 들린다. 비는 쉽게 멈추지 않는 지조를 한껏 뽐내며 줄기차게 내리고 있다.
‘한강수타령’ ‘오봉산타령’이 이어졌다. 이때 옆 방갈로에서 노래가 너무 좋다며 한 중년부인이 건너왔다. 새 손님을 위해 ‘매화타령’ ‘풍년가’ 등 몇 곡으로 이어진 노래가 끝나고 잠시 쉬는 사이, 방갈로를 나서서 개울을 따라 저만큼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금세 바짓가랑이를 적신 빗줄기가 우산을 두들겨 팬다. 뿌옇게 흐려진 산도 무방비로 마구 얻어맞고만 있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사방에 빗소리뿐이다. 좀 더 아래로 내려 가본다.
그때 장구소리가 울렸다. 순간, 내겐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들려왔다. 꽤 멀리 떨어졌건만 소리도 또렷하고 울림도 크다. 장구소리가 사방에서 떨어지는 무수한 빗방울에 부딪쳐 부서지고 튀어 오르고 다시 부딪쳐 부서지며 공명하고 증폭되어 계곡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산도 함께 공명하여 쩌렁쩌렁 울리고 있다. 빗속에서 장구소리가 이렇게 크게 울린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마침내 그곳에 빗소리는 사라지고 장구소리만 가득하다. 산이 더덩실 춤을 추고 있다.
돌아오니 옆 방갈로에서 왔던 이는 돌아갔고, 노래는 엇모리장단의 ‘강원도아리랑’으로 이어졌다. 이어서 자진모리장단으로 ‘군밤타령’ ‘경복궁타령’을 노래한다.
얼마 전에, 기회가 되면 소리 한 번 들어보자고 하여 마련된 자리다. 두 분은 취미로 소리를 하고 장구를 치는데, 그것이 특기가 되기도 하니 얼마나 좋은가. 더구나 우리의 것이니 더욱 값지지 않은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아야 현대인(?)이라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니 아쉽다.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으니, 원.
주전자를 기울여 사발을 채워서는 두 손으로 들고 천천히 비워냈다. 빗속에서 듣는 창과 장구소리는 색다른 묘미가 있나보다. 다만, 아무리 흥겨운 가락도 어딘가 애절하고 또 서러워지는 건 내 감상태도가 틀린 것인지, 고민해봐야겠다. 지금 뭔가 모르게 약간은 흥분하고, 감동도 받고 있다. 우리 것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다. 이것만으로도 진일보하지 않았는가.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오려는지 모르지만 오늘은, 오늘을 열심히 감상하자. 노래는 ‘창부타령’으로 변한다. 굿거리장단이다.

“아니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임이별 하던사람들 몇몇이나 되느냐 임을잃던 그날밤은 어디가아프고 쓰리더냐 배지나간 바다우에는 파도와 물결만 남아있고 님떠나간 내가슴에는 그무엇을 남겼느냐 장미화꽃이 곱다고해도 꺾구보니 가시로다 사랑이 좋다고해도 남되고보며는 원수로다 / 얼시구 절시구 절시구 지화자좋네 아니나 놀진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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