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등재된 씨름... 기지시줄다리기와 시너지 냈으면 좋겠어요”

“씨름을 시작하고 2년에 한번은 슬럼프가 왔던 것 같아요. 그 때마다 좋은 사람들이 제 주변에 있었어요. 그 덕분에 슬럼프를 잘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고마운 일입니다”

[당진신문=최효진 기자] 지난 26일 경북안동에서 열린 ‘IBK기업은행 2018년 천하장사씨름대축제’의 마지막 날. 천하장사를 결정하는 최종전에는 장사 타이틀을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만년 유망주’ 박정석 선수가 올라 왔다. 상대는 천하장사까지 지내고 백두장사는 6번에나 오른 강호 정경진 선수.

피말리는 접전 끝에 백두장사 타이틀도 따지 못했던 박정석 선수가 강호 정경진 선수를 3:1로 누르고 천하장사에 올랐다. ‘꽃 피지 못한 유망주’로 이제는 서른 줄에 들어선 박정석 선수가 생애 첫 꽃가마를 타게 된 것이다.

피말리는 접전 끝에 정경진 선수를 3:1로 누르고 포효하고 있는 박정석 선수. 사진제공=대한씨름협회
피말리는 접전 끝에 정경진 선수를 3:1로 누르고 포효하고 있는 박정석 선수. 사진제공=대한씨름협회

당진 시내에서도 한참 들어가야 하는 대호지면 출신인 박정석 선수는 당진중학교 대호지분교 3학년이 되어서야 샅바를 처음 잡았다.

박정석 선수의 아버지인 박철순 씨는 “정석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덩치가 좋고 유연해 운동을 잘했지. 정석이의 형도 마찬가지였어.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에 씨름을 시켜 보려고 당진 시내까지 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해도 싫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조그만 시골의 중학교에서 3학년때 이미 180cm에 83kg이나 되는 좋은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고 운동신경까지 뛰어난 학생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마침 당진 지역 학생 체육에 큰 역할을 해 오던 손계원 선생님이 당진중학교에서 분교인 대호지로 발령을 받았다.

손계원 선생님은 2학년인 박정석 선수가 가을운동회 때 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 박 선수를 설득했고, 결국 3학년부터 직접 당진 시내로 통학을 시켜 가면 씨름을 시작하게 했다.

이번 천하장사 대회를 치루면서 탈구가 된 손목에 지지대를 하고도 ‘이 정도는 가벼운 부상’이라고 말하는 박정석 선수에게 씨름은 그렇게 운명이 됐다. 너무 늦게 시작해 제대로 샅바를 잡는 것도 고등학교에 가서야 제대로 배운 것과 마찬가지라는 박정석 선수는 경남대에 진학 한 이후에도 좋은 감독들 밑에서 씨름을 계속하게 됐다.

이승삼 감독과 모제욱 감독 밑에서 배운 박정석 선수는 2학년이 된 이후부터 대학시절 7개의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좋은 성적이었다. 대학 졸업 후 2010년 태안군청팀에 입단을 하게 된다. 하지만 프로가 된 이후에 꽃가마를 탄 적이 없다. 올 해 천하장사가 되기 전까지는.

트로피에 세레모니를 하고 있는 박정석 선수. 사진제공=대한씨름협회
트로피에 세레모니를 하고 있는 박정석 선수. 사진제공=대한씨름협회

박 선수는 “작년 대회에서는 준결승에서 햄스트링이 터져 버려 4강에서 경기를 포기했어요. 사실 운동을 하면서 크고 작은 부상들은 달고 살게 되죠. 그걸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앞 서 언급한 것처럼 부상이나 슬럼프 때마다 좋은 사람들이 그를 지탱하는 힘이 됐다. 운동을 시작한 이후 거의 모든 경기를 직접 찾아오셨던 아버지. 아버지 박철순 씨는 “대학교 때까지 서울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을 내 손으로 운전하며 다 찾아다녔지. 전국에 안 가본 것이 없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와 달랐다. 어머니는 자식의 경기를 직접 보지 못했다. 박정석 씨의 어머니인 최복녀 씨는 “나는 재방송만 봤어. 생방송은 심장이 떨려서 볼 수가 없었어”라며 자식에 대한 애틋함을 전했다.

또한 초등학교 동창생이었던 부인과 꾸린 가족은 새로운 힘이 됐다. 4살과 2살이 된 두 딸이 박정석 선수에게는 새로운 동력이다.

"기지시줄다리기와 민속씨름이 당진에서 만날 수 있기를"

천하장사에 등극했지만 민족 전통스포츠인 씨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에 대한 목마름 역시 크다. 박 선수는 “씨름을 하는 선수들 모두 민족의 스포츠인 씨름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그 자부심으로 버티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천하장사 등극 후 고향을 찾은 박정석 선수와 아버지 박철순 씨.
천하장사 등극 후 고향을 찾은 박정석 선수와 아버지 박철순 씨.

고향인 당진에 씨름단이 창단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다.

“당진은 씨름을 굉장히 잘 하는 곳입니다. 좋은 씨름 선수를 배출하는 ‘메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어요. 초등학교와 중학교 선수들이 매년 씨름대회에서 메달을 따오죠. 그런데 실업팀이 없어요. 당진에 씨름 실업팀이 창단된다면 좋겠습니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1983년 천하장사 대회가 도입된 이후 총 51회의 천하장사대회가 열렸다. 51회의 대회 중 천하장사에 등극한 선수는 모두 22명뿐이다. 당진은 이제 천하장사를 배출한 고장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당진의 좋은 선수들은 씨름을 계속하려면 타지로 나가게 된다. 당진을 가슴에 달고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박 선수는 “씨름이 유네스코에 등재가 됐습니다. 우리 기지시줄다리기 역시 유네스코에 등재가 된 상황에서 줄다리기와 씨름이 당진에서 만났으면 좋겠어요. 당진을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알리는데 최고의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당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