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민

[당진신문=유형민] 새벽 두시 진통이 시작된 아내가 나를 깨웠다. 지금 병원에 가야할 것 같다고. 전날 진통이 시작되어 병원을 갔었다. 하지만 아직 아기가 나오려면 멀었다는 의사 선생님 소견을 듣고 서산 △△산부인과 주변에 살던 처형 집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이었다. 우리는 잠자던 처형을 깨워서 함께 병원으로 갔다.

도착하자마자 병실로 올라가 진통이 시작된 아내 곁을 지키며 밤을 지샜다. 병실은 다인실이었는데, 어떤 산모는 들어와서 촉진제를 맞고 30분도 안되어 화장실을 찾는다. 간호사가 급이 들어와 아이 머리가 나오기 시작했다며 분만실로 이동했는데 들어 간지 얼마 안 되어 아기를 낳았단다. 그런데 집사람은 진통만 계속할 뿐 기미가 안 보인다.

아침에 연락받고 어머니와 장모님이 오셨다. 새벽부터 밤을 지샜던 나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그만 진통하고 있는 집사람 옆에서 깜빡 잠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병실에 들어선 두 분에게 잠자고 있는 모습을 들켜버렸다. 집사람은 진통중인데 잠을 잤으니 어머님과 장모님 보기가 어찌나 민망하던지, 하지만 어쩌랴 천하장사도 못 드는 것이 눈꺼풀이라는데~~ 하지만 순간의 민망함이 아니라 평생 동안 아내의 면박을 들을 줄은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새벽에 시작된 진통은 오전을 지나 저녁을 향해가고 있었다. 어머니와 장모님은 순산을 해야 산모가 몸이 안 상한다고 조금 힘들더라도 순산하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아내는 많이 지쳐가고 있었다. 오후에 의사선생님이 회진을 오셨다. 순산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던 선생님도 결국은 양수가 부족하니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결국은 수술을 해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간 얼마 후 아기를 낳고 아내가 나왔다.

마취에서 깨어난 아내가 제일 먼저 물었다.

“아기 누구 닮았어”.
“어, 개그맨 한무 닮았어?”

한무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못생겼다는 표현이 아니라 그때는 내 나름 정확한 표현을 한 것이다. 신생아를 처음 본 나는 피부가 쭈글쭈글하고 눈만 튀어나온 아이를 보며 생각난 것이 개그맨 한무였다. 이 또한 살아가면서 아내에게 두고두고 면박을 받는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참 생각 없이 단순한 사람인 것 같다.

딸아이가 커가면서 가끔 엄마에게 물어보곤 했다.

“엄마, 나 태어났을 때 어땠어. 예뻤어, 얘기 좀 해줘 봐”
“아빠가 너 태어나자 마자 보고 연예인 닮았다고 했어. ”
“와, 정말 누가 닮았는데”
“아빠한테 직접 물어봐라”

아내가 그러면 딸아이는 나에게 묻곤 했다.

“아빠 나 누구 닮았었어. 유명한 사람이야”
“있어, 그런 사람 개그맨인데 엄청 유명한 사람이야, 나중에 크면 알거야”
“와, 내가 그런 유명한 개그맨 닮았었어.”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아이가 연예인 한무가 누구인지 알고부터는 딸한테 어찌 그런 막말을 할 수 있느냐며 볼멘소리를 한다.

그렇게 개그맨 한무를 닮았다던 딸아이가 벌써 23살이 되었다. 이제는 미운오리새끼에서 백조로 탈바꿈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숙녀가 되었다. 그리고 아빠가 한무를 닮았다고 말한 것이 놀린 게 아니고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아빠의 단순함을 이해할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아이러니 한 일은 어려서 부터 음악을 좋아하던 딸아이는 대학을 실용음악과로 진학을 해서 보컬을 하고 있다. 노래도 곧 잘하고 작곡도 하고 진짜 연예인이 되려나보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흘러도 첫 아이 출산얘기가 나오면 진통하는데 옆에서 잠자고, 태어난 아이를 한무 닮았다고 하는 아무 생각 없는 나에게 아내의 면박은 여전하다. 아마도 집사람과 함께 하는 날까지는 두고두고 면박거리가 될 것 같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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