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희 당진어울림여성회 회장

[당진신문]

“같이 살아서 왔다면 마음이 안 아픈데, 혼자오니 슬프고 서운하다”

일제 강제징용에 대해 일본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13년만에 승소확정판결을 받으신 강제징용 피해자 할아버지의 소감입니다. “넷이서 시작했는데 나 혼자만 남았다”라며 눈물을 흘리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깊은 슬픔과 함께 분노가 일었습니다.

900여명의 미국인 피해자들에게도 사과했으며, 3700여명의 중국인 피해자들에겐 전 후 최대의 사죄금을 지급했던 일본의 전범기업은 적게는 10만 여명의 한국 피해자들에게는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엄청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도 뻔뻔할 수 있는 일본의 전범기업에게도 화가 나지만, 그 과정에 피해자들보다도 자신의 처신이 먼저였던 대통령과 그 대통령과 재판거래를 했던 사법부가 있었다고 하니 숨이 턱 막힙니다.
 
거기에 강제징용 피해자 약 20만 명이 손해배상청구의 잠재적 원고가 될 수 있다며 계획적으로 재판을 연기해 소송의 기회마저 박탈했으며, 위안부피해 생존자들의 손해배상소송까지 고작 해외파견법관 자리와 맞바꿨다고 하는 기가 막히는 소식들은 황당함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합니다.

외교적 문제라며 일본의 비위를 맞추던 정부와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재판거래를 일삼았던 사법적폐 무리가 공모를 하는 사이에 조국이 지켜주지 못해 강제로 끌려가 강제노역과 성노예생활을 해야 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님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시고 하나 둘 씩 우리 곁을 떠나고 계십니다.

역사의 아픔을 모질게 혼자 감당하셔야 했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해 드릴 수 있을까요?

지난 일요일인 11월 11일 故 이기정 할머니가 떠나신 지 1년이 되는 때입니다. 할머니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지 1년이란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변한 것이 없습니다.

일본은 사과는 커녕, 박정희 정권 때 맺은 한일협정과 박근혜 정부의 한일합의로 모든 것이 끝났다며 큰소리 치고 있으며, 할머님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받은 돈으로 세워진 화해치유재단 또한 여전히 존재하고, 여전히 매 주 수요일, 평화로에서는 힘겹게 버티고 계신 할머님들의 외침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90세를 훌쩍 넘겨버리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언제까지 버텨주실 수 있을까요?

자신들과 또래였던 나이에 끌려가셨던 할아버지, 할머님들의 아품을 자신들의 아픔으로 느끼고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드리고 싶다는 청소년들을 만날 때 마다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어린 소녀와 소년들을 지켜주지 못했던 조국이었고, 국정농단에 사법농단까지 차마 전해주기 부끄러운 현실이지만, 촛불을 밝혀 변화의 시작을 열었듯이 우리 역사의 아픔들을 기억하고 행동하는 어른이 많아지고 있다고, 너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들이 되겠다고. 그래서 희망이 있다고 말입니다.

故 이기정 할머니 추모 1주기를 맞아 천안 망향의 동산에 잠들어계신 할머님을 뵙고 왔습니다. 할머니가 특히나 예뻐하셨던 청소년 친구들이 당진에서 얼마나 멋지게 활동하고 있는지 이야기도 들려드리고, 예전 추억들도 나눴습니다.

그러면 할머님은 언제나처럼 대답 주시겠죠.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 ”

이제 더 이상 아픈 역사 속 소년, 소녀들이 주름진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작권자 © 당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