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신문=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 심훈이 안정옥과 결혼한 것은 그의 나이 30세이던 1930년 12월24일이다. 그가 원하는 대로 자유연애를 통해 결혼을 하였지만 현실의 생활은 만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심훈은 본격적인 집필활동에 전념하여, 1930년에 조선일보에 연재한 『동방의 애인』을 비롯하여 1931년에는 『불사조』를 조선일보에 연재하였다. 하지만 심훈의 작품은 모두 일제의 검열에 걸려 더 이상 연재할 수 없었다. 일제의 입장에서는 심훈의 작품은 수용할 수 없는 불량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이 시기 심훈의 마음은 항일의식으로 충만해 있었다. 심훈의 항일의식이 얼마나 투철던지 경성방송국 조선어 아나운서 모집에 합격하여 방송국에서 문예담당자로 문예물 낭독을 하였는데 ‘황태자 폐하’ 등을 발음할 때 아니꼽고 역겨게 생각하여 우물쭈물 넘기곤 하였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심훈은 3개월 만에 추방당하였다.

심훈이 본격적으로 당진에서 살게 된 것은 1932년부터였다. 안정옥과의 결혼과 장남의 출생으로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생활이 지속되자, 심훈은 임시방편으로 부모와 장조카 심재영이 살고 있는 송악면 부곡리로 낙향하여 본가의 사랑채에서 1년 반 동안 머물렀다.

필경사.
필경사.

심훈의 당진살이는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1934년 4월초에는 장편 『직녀성』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였다. 『직녀성』을 집필하여 받은 원고료로 지은 집이 송악 부곡리의 ‘필경사’이다. ‘필경사’는 심훈이 직접 설계하여 지은 집이다. 필경사에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장조카 심재영이 조직한 부곡리의 ‘공동경작회’ 회원과 어울려 지냈다.

장조카 심재영은 당시 농촌계몽운동을 뜻하는 브나드로 운동을 부곡리에서 전개하고 있었다. 이런 심재영의 활동을 지켜보면서 심훈은 송악 부곡리에서의 생활을 『상록수』라는 장편소설로 작품화하였다. 『상록수』는 1935년 8월 동아일보 창간15주년 특별 공모에서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이때 받은 상금 500원 가운데 100원은 ‘상록학원’ 설립에 기부하였다.

심훈은 『상록수』를 영화로 만들 생각을 하였다. 『상록수』를 영화화하기 위한 계획은 일제의 방해로 끝내 실현하지는 못했다. 1936년은 심훈의 인생에서 의미있는 해였다. 8월에는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소식을 듣고 신문 호외 뒷면에 즉흥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 마라톤에 우승한 손 남 양 군에게」를 썼다. 그 해 9월16일 『상록수』를 출판하는 일로 노력하던 차에 장티푸스에 걸려 경성제국대학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36세였으니 너무나도 짧은 인생이었고, 아까운 죽음이었다.

지금까지 심훈의 또 다른 이름 심대섭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글을 통해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알려진 독립운동가 심대섭을 만날 수 있었다. 심대섭이 태어났던 1901년의 조선은 사실상 일제의 통치하에 있던 식민지에 다름 아니었다. 심대섭은 경성고보에 들어가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자각할 나이가 되었을 때, 3.1혁명이라는 대사건을 맞았다.

식민지 조선의 청년으로 살고 있던 그는 시대적 요구이자 역사적 사명과도 같은 3.1혁명을 외면하지 않았다. 심대섭은 3.1혁명에 참여하여 당당하게 조선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 댓가는 어린 그에게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혹했지만 결코 비굴하지 않았다. 이런 심대섭을 보면서 자주독립국가 쟁취를 위해 희생하고자 했던 청년의 기상을 느낄 수 있었다.

심대섭은 뛰어난 글 솜씨를 바탕으로 암울했던 식민지 조선에 희망을 주었다. 수많은 식민지 조선인이 그의 글을 통해 위안을 얻었고 깨우쳤다. 그는 붓 한 자루로 구습을 타파하고 자주독립과 평등사회 실현을 위해 노력하였고, 뛰어난 문장으로 대중을 계몽하는데 이바지 하였다. 또한 심대섭은 시대를 앞선 삶을 살았던 선각자였으며,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재주와 외모로 문화예술의 새로운 장을 펼쳤다. 하지만 이런 심대섭의 삶과 업적은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나 재주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그가 3.1혁명을 통해 경험했던 시대정신과 철학적 의식 형성이 그의 재주를 통해 발휘되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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